종교적 자유와 공동선

종교적 자유와 공동선

[ 논설위원칼럼 ]

김선욱 교수
2020년 09월 14일(월) 10:52
'정의란 무엇인가'를 쓴 마이클 샌델 교수는 지난 6월에 있었던 한 TV와의 인터뷰에서 지금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공동선(the common good)을 발견하고 그것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종교적 신앙과 공동선의 관계에 대해 최초로 명확하게 설명했던 것은 1982년에 출간된 그의 최초의 저서인 '자유주의와 정의의 한계'라는 책의 2판 서문에 나오는 "종교적 자유의 권리"라는 소제목을 단 글에서였다.

그 글에서 샌델은 우리가 도대체 어떤 근거에서 종교적 자유를 옹호할 수 있는지를 꼼꼼히 따진다. 그는 종교적 자유가 존중되어야 하는 것은 개인의 자율적인 선택권이 소중하기 때문인지, 아니면 종교 자체가 존중받을 만하기 때문인지를 묻는다. 만일 전자가 이유라면, 그래서 개인의 자율이 보장되어야 하고, 우리에게는 자신을 위해 가치 있는 것을 선택할 수 있도록 허용되어야 하며, 그런 선택을 하는 개인은 존중되어야 한다는 이유에서 종교적 자유의 권리가 옹호되어야 한다고 하면, 그런 입장은 자유주의적 주장이라고 명명한다. 이것이 자유주의인 이유는 권리의 근거가 개인의 자유로운 결정에 기초를 두기 때문이다.

이런 자유주의적인 종교적 자유 주장은 신앙의 본질을 잘못 이해한 것이라고 샌델은 비판한다. 이런 입장은 종교 자체의 도덕적 중요성에 대한 내용적 판단을 완전히 배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헌법은 종교 행사에 대해 보호조정을 할 수 있도록 하는데 자유주의 입장에 서게 되면 그런 보호조정의 취지가 불명료하게 된다. 집단 자살을 시도하는 사이비 종교를 자발적으로 선택한 이들을 어떤 근거로 말릴 수 있겠는가. 뿐만 아니라 자유주의적 입장에 따르게 되면, 개인이 선택하는 여타의 다양한 관심사와 종교적 신앙을 동일시할 수밖에 없다. 모두 개인의 선택에 의한 것이므로 모두 동일한 존중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만일 선택 행위 자체만이 중요하다면 종교 행사를 위해 주일을 쉬어야 한다는 주장과 축구를 보기 위해 쉬어야 한다는 주장 사이에 차이가 없게 된다.

개인이 선택하는 여타의 관심사가 종교와 동일 수준에 놓일 수 없다. 종교적 신앙이 차별화되는 것은 좋은 삶을 위해 종교적 신앙이 차지하는 지위, 신앙이 증진시키는 인간의 품성, 개인으로 하여금 좋은 시민이 되도록 하는 종교의 특성 때문이다. 따라서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려면 그가 믿는 종교가 어떤 것인지를 공동선의 관점에서 잘 살펴보고 판단해 보아야 한다고 샌델은 지적한다.

지난 3월에 신천지로 인해 코로나19가 급속도로 전파되었을 때 정부는 신속한 조치를 위해 신도들의 명단을 제출하라고 요구했고, 신도들에게는 자신의 행적을 진실 되게 말하라고 요청했다. 이후의 그들의 태도는 공동선의 관점에서 평가되었다. 그리고 그때 많은 기독교 신자들은 공동선의 관점에서 볼 때 건전한 믿음과 이단 신앙이 명확하게 구분된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에서 공공신학이 중요하다고도 했다. 그런데 지난 광복절 이후로 기독교가 오히려 공동선의 재판정에서 서버렸다.

공동선이라는 말은 성서의 어휘는 아니다. 그러나 외부의 시선으로 본 기독교는 공동선과 일치한다. 원래 공동선이라는 말 자체가 중세기 기독교가 추구해 왔던 사회적 가치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필자는 오랫동안 마이클 샌델의 사상에 대해 강의했고, 그의 저서 번역에도 적잖은 공을 기울여 왔다. 대중강연을 할 때는 샌델 자신의 예를 많이 활용한다. 종교적 자유의 예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이 예는 다른 예들에 비해 가장 인기가 없어서 대중강연에서는 잘 다루지도 않았다. 그런데 지난주에 있었던 인천 시민 대상의 강의에 이 예를 활용했을 때 갑자기 필자 자신과 청중들 사이에 강한 긴장감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그 긴장의 본질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김선욱 교수/숭실대 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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