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만 볼 수 있다면

사흘만 볼 수 있다면

[ 공감책방 ] 헬렌 켈러 자서전 '사흘만 볼 수 있다면'

최아론 목사
2020년 08월 28일(금) 08:24
# 이 나라 한 켠에도 그녀가 다녀간 흔적이

1937년 헬렌 켈러는 일주일의 일정으로 조선을 방문했다. 대구, 서울, 평양 등에서 연설했던 사진과 내용들이 남아있다. 그녀의 나이 58세 때다. 부산에 도착해서 가는 곳마다 헬렌 켈러는 환영을 받았고, 개성에서는 기차역에 모인 사람들에게 정차 중에 '이 세상을 향상시키는 것은 오로지 사랑뿐이라는' 연설을 했다. 보고 듣지 못하는 사람의 명연설에 기차는 정차 시간을 한참이나 지나쳤었다.

조선 방문 몇 해 전 1933년에 헬렌 켈러는 '사흘만 볼 수 있다면'이라는 수필을 발표했다. 20세기 최고의 수필중 하나라 불리는 '사흘만 볼 수 있다면'은 이렇게 시작한다.


내가 만일 사흘만이라도 볼 수 있다면 무엇을 가장 보고 싶은가 상상해 봅니다. 첫째 날에는 다정함과 친절함과 우정으로 내 삶을 가치 있게 만들어준 사람들을 볼 겁니다. 둘째 날에는 인류의 역사와 예술을 통해 인간의 영혼을 탐구하고자 합니다. 만져서 알게 된 것을 이제 보려고 합니다. 셋째 날에는 하루하루 살아가는 평범한 삶을 살펴보고 싶습니다.


감사라는 말이 쉽지 않은 시절 속에서 이런 글을 읽다 보면 눈을 뜨는 것,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시간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생각해 볼 수 있다. 사흘이라는 날들 속에서 삶의 진정한 가치를 이야기한 헬렌 켈러의 어린 시절의 이야기는 '내가 살아온 이야기'라는 헬렌 켈러가 23살에 기록한 글에서 살펴 볼 수 있다. 1880년 미국 앨라배마에서 태어난 헬렌 켈러는 태어난 지 19개월 만에 열병을 앓고 난 후 시력과 청력을 잃었다. 그리고 알려진 대로 설리반 선생님을 만났고, 대학 교육을 받았고,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장애인들을 위한 헌신의 삶을 살았다.

'내가 살아온 이야기'에서 헬렌 켈러는 '워터(Water)'라는 단어와의 만남을 이렇게 표현한다. '나는 이 차가운 물줄기가 '물'이라는 것의 정체임을 알았다. 살아 숨쉬는 낱말의 입맞춤을 받은 내 영혼은 긴 잠에서 깨어나 그것이 가져다 준 빛과 희망과 기쁨을 맛보았다. 나는 비로소 자유를 찾았다. 모든 사물은 이름을 갖고 있으며, 각각의 이름은 새로운 생각을 불러왔다. 집에 돌아오자 만지는 모든 것에서 생명의 떨림이 느껴졌다.'

# 나태했던 우리의 시간 돌아보게 하는 삶

추후 교육을 받으면서 1800년대 후반 헬렌 켈러의 배움에 대해서 읽는 것은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손바닥에 써주는 단어를 연결해서 글을 읽기 시작했고, 점자를 익혔으며, 15세 경에는 프랑스어 독일어를 사용 할 수 있었다. 대학 입학을 위한 시험에서 그리스어, 라틴어, 기하, 대수 등을 테스트했다. 그녀에게 문제는 공부해야 할 과목에 점자로 된 책이 없는 것과 교수의 강의를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 손바닥에 적어주는 일의 어려움이었다. 장애를 넘어선 경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요한복음 9장에서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말한다 "나는 이 세상을 심판하러 왔다. 못 보는 사람은 보게 하고, 보는 사람은 못 보게 하려는 것이다." 헬렌 켈러가 위로받은 말씀은 고린도후서 4장의 말씀이다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합니다."

단어 하나를 향한 존중과 경의에서 시작해서 배움에 대한 경의, 그리고 인간과 삶에 대한 경의로 변화된 그녀의 이야기는 우리는 진정 보고 있는지 돌아보게 한다. 그리고 이 나라 한 켠에도 그녀가 다녀갔던 흔적들과 떨리는 목소리가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며, 간과하고 보았던 우리 주변의 사물들, 그리고 그것들을 명명한 이름들과, 좀 더 치열하지 못하고 나태했던 수많은 텍스트를 향한 나의 시간들을 돌아보게 된다.

최아론 목사 / 옥수서재
카드 뉴스
많이 보는 기사
지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