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만찬에 예수 그리스도는 어떻게 임재하는가?

성만찬에 예수 그리스도는 어떻게 임재하는가?

[ 논쟁을통해본교회사이야기 ] <15>성만찬 논쟁

박경수 교수
2020년 06월 24일(수) 10:20
마르부르크회담(1529). 오거스트 낙의 'Religionsgesprach zu Marburg'
성만찬은 세례와 더불어 그리스도교 신앙에서 매우 중요한 성례이다. 성만찬을 통해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와 연합하고 형제자매들과 하나됨을 경험한다. 그러나 참으로 역설적이게도 이 연합과 일치의 성례가 역사적으로는 오히려 심각한 분열과 다툼의 원인이 되어 왔다. 특히 종교개혁자들을 갈라놓은 주제 또한 바로 성만찬이었다.


#화체설 vs 공체설 vs 상징설

루터와 츠빙글리를 비롯한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은 로마가톨릭의 성만찬 이론인 화체설(化體說)을 배격하였다. 제4차 라테란공의회(1215년)에서 공식적으로 채택된 화체설 교리는 사제가 빵과 포도주를 하나님께 봉헌하는 바로 그 순간에, 빵과 포도주의 외양, 즉 모양, 색깔, 맛 등은 그대로 있지만, 그 실체는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변한다는 가르침이다. 눈으로 보고, 코로 냄새를 맡고, 입으로 맛볼 때에는 분명 빵과 포도주 그대로이지만, 그 속의 보이지 않는 실체는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변화된다는 것이다.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자들은 이와 같은 화체설은 미신에 불과한 것이라고 비판하였다.

그렇다면 과연 예수 그리스도는 성만찬에 어떻게 임재하는 것인가 묻게 된다. 이에 대해서 루터와 츠빙글리는 입장을 달리했다. 루터는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변화되는 것은 아니지만, 성만찬의 빵과 포도주와 함께(with), 그 안에(in), 그 아래에(under) 그리스도께서 실체적으로 임재하신다고 주장하였다. 실체가 빵과 포도주와 함께 한다는 의미로 이 이론을 공체설(共體說) 혹은 육체적 임재설이라 부른다. 반면 츠빙글리는 로마가톨릭의 화체설과 루터의 공체설 모두를 거부하였다. 그는 성만찬 때 빵이 그리스도의 몸으로 변화된다든지, 빵과 함께 그리스도의 육체가 실체적으로 임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성만찬의 빵과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기억하게 하는 상징일 뿐이고, 이를 통해 우리는 그리스도를 기념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츠빙글리의 성만찬 이론을 상징설 혹은 기념설이라고 한다.


#1529년 마르부르크 회담

종교개혁 시기 성만찬에 관한 가장 열띤 논쟁이 마르부르크 회담에서 이루어졌다. 이 회담은 프로테스탄트 정치지도자인 헤센의 필립이 개신교 진영의 일치를 위해 루터파와 개혁파 교회개혁자들을 마르부르크 성으로 초대해 개최한 것으로, 1529년 10월 1일부터 4일까지 이어졌다. 루터, 멜란히톤, 츠빙글리, 외콜람파디우스, 부처와 같은 종교개혁 운동의 대표적 지도자들은 15개항으로 구성된 '마르부르크 조항'에 서명하였다.

'마르부르크 조항'에서 양측은 14개항에는 의견의 일치를 이루었지만 성만찬을 다루는 15번째 조항에서는 끝내 합의에 이르지 못하였다. 1~4조항은 보편 교회의 공통된 가르침에 관한 것으로 창조, 삼위일체,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죽음과 부활, 원죄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고, 5~11조항은 복음주의적인 프로테스탄트의 가르침에 관한 것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을 통한 구원, 하나님의 선물로서의 믿음, 하나님 앞에서의 의로움으로서의 믿음, 복음 설교를 통한 성령의 역사, 세례, 성령의 역사를 통한 선행, 신앙고백 등을 다루고 있으며, 12~14조항은 국가, 인간의 전통, 유아세례 등의 주제를 다룬다. 이런 광범위한 주제들에 대해서 마르부르크에 모인 개혁자들은 아무런 이견이 없었다. 심지어 성만찬에 대해 다룬 마지막 15번째 조항에서도 많은 부분 의견의 일치를 이루었다. 개혁자들은 모두 화체설과 희생제사로서의 미사를 배격하였고, 빵만이 아니라 빵과 포도주 모두를 성도들에게 나누어주어야 한다는 점에서도 한목소리를 내었다. 단지 성만찬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육체적으로 임재하는가 아니면 상징적으로 임재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만은 끝까지 합의하지 못하고 그대로 남겨놓았다.

15번째 조항의 마지막 문장은 다음과 같다. "비록 우리가 현재로서는 그리스도의 참된 살과 피가 빵과 포도주 안에 육체적으로 임재하는지 아닌지에 대해서 합의할 수 없지만, 양측은 서로에 대해 양심이 허용하는 한 그리스도인의 사랑을 보여주어야만 한다. 또한 양측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우리를 올바른 깨달음에 이르게 해달라고 전심으로 기도해야만 한다. 아멘." 다행인 것은 비록 성만찬에서 그리스도의 임재 방식에 대해 합의하지는 못했지만, 서로에 대해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이면서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간절히 기도하며 노력하기로 했다는 점이다.

오늘날 마르부르크를 방문해 성 안에 걸려있는 그림을 보게 되면 당시 개혁자들의 회담 모습을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내 몸이다"라는 성만찬 제정의 말씀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이는 루터는 탁자 위에 적힌 글자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성만찬 때에 빵과 포도주에 그리스도께서 육체적으로 임재하신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츠빙글리는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부활하신 주님은 지금 육체적으로는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다고 말하고 있다. 츠빙글리는 "이것이 내 몸이다"는 말씀을 상징적으로 받아들여,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상징한다고 주장한다. 양측의 주장은 팽팽하였고 결국 그 간격을 좁히지 못하였다.


#일치와 연합의 성만찬을 지향하며

루터와 츠빙글리로 대표되는 프로테스탄트 개혁자들이 마르부르크 성에 함께 모였지만 모두가 참여하는 성만찬 예배를 드리지 못한 점은 지금 생각해도 너무 아쉽다. 루터를 추종하는 루터교회와 츠빙글리를 따르는 개혁교회는 마르부르크의 결렬 이후에 1973년에 와서야 로이엔베르크 협약(Leuenberg Concord)을 통해 서로를 말씀과 성례 안에서의 교제에 받아들이게 되었으니, 그 간격을 극복하는 데 무려 444년이 걸린 셈이다. 지금은 로이엔베르크 협약에 기초한 교제와 연합을 지향하는 30여 개 나라의 100여 개 루터교회, 개혁교회, 감리교회들이 '유럽프로테스탄트교회연합'(Community Protestant Churches in Europe)을 구성하여 함께 활동하고 있다(https://www.leuenberg.eu 참조). 더 이상 성만찬이 토머스 크랜머의 표현처럼 "불화의 사과"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제는 성만찬이 본래의 의미인 일치와 연합의 성례가 되어야만 한다.

박경수 교수 / 장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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