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롭게 음미하는 쉼이 독서"

"여유롭게 음미하는 쉼이 독서"

[ 특집 ] 기독교인과 쉼 ⑤ 쉼과 독서

노종문 목사
2019년 08월 02일(금) 00:00
잘 쉬기 위해서는 일상의 공간을 벗어나서 일과는 상관없는 새로운 것, 즐거운 것을 해야 한다. 일과 상관없는 새롭고 즐거운 것에는 아마도, 친구를 만나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 등산을 하거나 스포츠를 즐기는 것, 음악 콘서트나 미술관에 가서 아름다운 작품을 감상하는 것, 여행을 떠나 이국의 정취나 자연을 즐기는 것 등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여유로운 마음으로 책을 읽는 것이다.

독서가 다 같은 독서는 아니다. 책을 읽는 것에는 여러가지 다양한 목적과 방법이 있다. 어떤 독서는 직업적으로 꼭 필요한 활동이므로 쉼이 아니라 또 다른 '일'이 된다. 어떤 독서는 시험을 통과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하는 공부라서 긴장과 집중과 노력이 투입된다. 또 어떤 독서는 교양을 쌓거나 지식이나 정보를 얻어 자기를 계발하는 수단이 된다. 그런데 '쉼'이 되는 독서가 있다. 좋은 쉼이 되는 독서는 어떤 독서일까?

이 질문을 생각해보기 위해 한 가지 더 근본적인 질문을 생각해보자. 독서란 무엇일까? 독서는 문자 그대로 '글을 읽는 것'인데, 그 중에서도 남의 글을 읽는 것이다. 글은 본래는 음성을 담아 놓는 매체였다. 고대 그리스 로마 세계에서 편지를 쓸 때는 이렇게 했다고 한다. 주인이 말을 하면 노예가 그 말을 그대로 서판에 받아 적었다. 긴 편지는 여러 개의 서판이 필요했다. 처음에는 하고 싶은 말을 좀 두서없이 하더라도 서판에 적어 두고 나중에 지우고 고쳐 쓸 수 있었다. 할 말을 다 했다고 생각하면 여러 개의 서판을 적절한 순서대로 놓아 보고 말을 다듬는다. 그러고 나서 종이에 옮겨 적었다. 이런 일을 담당한 노예가 편지를 다 써 놓으면 주인은 맨 마지막에 자기 손으로 크게 한마디 인사말을 적곤 했다(살후 3:17). 이제 그 편지가 수신자에게 도착하면, 정확히 그 반대의 일이 벌어진다. 수신자는 글을 읽어 주는 노예를 불러서 그 편지를 읽게 한다. 글은 다시 음성이 되어 수신자에게 전달이 되는 것이다. 노예가 읽어주는 음성을 들을 때, 주인은 편지를 보낸 사람을 떠올리며 그의 목소리를 듣듯이 귀를 기울였다. 이처럼 고대 그리스 로마 세계에서 글은 오늘날의 녹음기 같은 역할을 했다. 그래서 그들은 모든 글을 소리 내어 읽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묵독의 습관이 생긴 것은 14세기 르네상스 시대부터였다고 한다.

이처럼 글이 말을 담아 놓은 것이고, 책은 타인의 말을 담아 놓은 녹음기라고 상상해보자. 당신에게 쉼이 되는 독서가 무엇인지가 더 분명해질 것이다. 일하는 시간이 아니라 쉬는 시간이라면, 나는 내가 듣고 싶은 사람의 목소리를 들을 것이다. 아마도 사랑하거나 존경하는 사람, 꼭 만나보고 싶은 사람의 말을 천천히 여유있게 들으며 음미하고 싶을 것이다. 이런 경우 책을 끝까지 다 읽고 정복하는 것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읽는 순간의 기쁨을 주고, 재미와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 더 중요할 것이다. 그러니 오히려 그 책을 아껴서 조금씩 읽고 오래 음미하고 싶을 것이다. 이런 독서는 일에 도움이 될 정보 수집의 독서나, 치열하게 공부해서 마스터하려고 하는 독서와는 완전히 다른 독서다. 그러므로 이런 독서를 위한 책은 고를 때부터 다른 기준이 작용한다.

그러므로 쉼을 위한 독서는 다음과 같은 기준으로 책을 골라야 할 것이다. 첫째는, 내 일과 상관이 없는 내용의 책이어야 한다. 일을 벗어나야만 쉼이 오기 때문이다. 둘째는 내가 평소에 흥미를 느끼던 이야기나 주제가 담긴 책이어야 한다. 셋째는 내가 존경하거나 애정을 가지고 귀를 기울일 수 있는 저자의 책이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항상 확인 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독자들의 좋은 평이 있는 검증을 받은 책이면 더욱 좋을 것이다.

휴가를 떠나 쉼을 누리면서 읽을 책을 고르려고 한다면, 미리 서점에 몇 번 나가서 이 코너 저 코너를 다니며 책을 만져보는 것이 좋다. 여행을 떠나기 몇 달 전, 숙소나 교통편을 예약하듯이 책도 여유를 두고 골라서 미리 예약해 두는 것이다. 만나보고 싶은 저자, 흥미를 끄는 주제, 애정을 느끼게 하는 표지, 꼭 읽어보고 싶은 이야기, 전혀 가보지 못한 세계로 나를 안내해 줄 책이 있는지 살펴보자. 낯선 여행지에서 경험할 만한 우연하면서도 기막힌 만남을 기대해 보자. 시간을 아끼기 위해 인터넷으로 '효율적으로' 검색하여 책을 골라야겠다는 생각을 잠시 내려놓고 나의 퀄리티 있는 쉼을 위해 시간을 투자하자. 일부러라도 시간을 내어 서점에 들러 벌써 휴가를 떠나온 것처럼 느릿느릿 다니며 책들을 만나보자.

쉼의 목표는 산란하고 조각난 마음을 모으고, 일상의 익숙했던 관계와 사물의 의미를 재발견하고,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에 대해 감사하며 기뻐하는 것이다. 이런 쉼을 위해서는 책을 읽으면서 떠오르는 생각들과 발견들, 깨달음, 감정들을 적어두는 것이 좋다. 책장에 밑줄을 긋고 빼곡히 메모도 하자. 책을 읽다가 잠시 멈춰 서서 이렇게 적다보면 나와 내 주변 이웃의 삶을 성찰할 수 있다. 먼 나라에 여행을 떠난 사람이 고향의 일들을 생각하는 것처럼, 일상 속에서는 얻을 수 없었던 새로운 깨달음이 생기고 또 다른 생각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런 것들을 일기처럼 적어두고 이런 생각들 안에서 성령님은 내게 무슨 말씀을 들려주시는지도 귀 기울여 보자. 쉼이 돌아갈 일상을 위한 것만은 아니지만, 잘 쉬면 새로운 눈과 마음을 얻게 되어 일상을 다시 신선하게 살아갈 원동력이 생긴다.

노종문 목사/기윤실 좋은나무 편집주간, 전 IVP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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