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 위드유, 샬롬을 향하여

미투 · 위드유, 샬롬을 향하여

[ 현장칼럼 ]

채수지 소장
2018년 07월 16일(월) 10:03
지난 7월 5일, '개혁을위한종교인네트워크' 주최로 '미투·위드유 너머, 우리의 믿음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주제의 토론회가 열렸고 나는 개신교 발제자로 참여하였다. 그 자리에서 천주교, 불교, 개신교의 발제자와 토론자들 모두 각 종교의 남성중심 가부장적 시각 때문에 "여전히 미투하기 어렵다"는 한계를 공유하고 각 종교의 구조와 문화가 변화하지 않으면 종교 권력에서 나오는 성폭력을 막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하였다.

이 토론회는 종교의 본질을 묻는 동시에 '기독교(개신교)의 정체성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져주었다. 우리는 종교개혁의 후예인 프로테스탄트, 즉 출애굽 공동체가 아닌가. 하지만 여성을 배제한 종교개혁은 교회 공동체 내부의 성차별과 성폭력을 용인함으로써 안에서부터 실패하는 결과로 치닫고 말았다. 미투로 드러난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폭로된 사건들은 교회가 여성에 대해 저질러왔던 폭력 중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고통을 참다못한 여성들의 폭로와 아직도 숨죽이고 있을 수밖에 없는 여성들의 침묵에도, 교회가 그들을 '없는 사람' 취급하는 것은 정의롭지 않다.

교회 성폭력 피해자들은 인간에 대한 신뢰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상실하고 존재의 위기 상태로 내던져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시정 조치를 요구하는 이유는 아직도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에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진심으로 원하는 것은 가해자와 교회의 진정한 사과와 회개, 더 나아가 애도와 화해이다. 그런즉 미투, 위드유는 관계 회복 운동이다.

또한 미투, 위드유는 출애굽 사건이며 제2의 종교개혁이 될 수 있다. 하나님은 '성 평등한 민주적 공동체로서의 교회'라는 가나안 땅을 이미 약속하셨다. 여기서 '성 평등'한 상태는 성경에서 말하는 '샬롬'이다. 샬롬이란 단지 폭력이 없는 좁은 의미의 평화가 아니라, 자기 자신, 이웃, 하나님, 나아가 자연과 함께 더불어 누리는 평화이며 각자 자신이 가진 능력과 자질과 은사를 한껏 발휘하는 상태이다. 이러한 샬롬의 비전은 혐오와 차별, 폭력에 대한 철저한 회개와 거듭남을 기초로 만들어진다.

지금까지의 왜곡된 관계들을 치유하기 위해서 가장 긴급히 요청되는 일은, 교회가 피해자를 지원하고 가해자를 선도하는 법과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다. 가해자 선도라는 다소 불편한 주제를 이야기하는 이유는 가해자가 사실을 인정하고 사죄하는 것이 피해자의 인권회복과 치유에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토론회의 천주교 발제자인 김선실 상임대표(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는 제 2의 미투 운동으로 '나도 가해자다'를 고백하게 하는 운동을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그러자 한 토론자는 남아공 만델라 정권이 과거 흑인 탄압에 대해 일정 기간 자수를 하게 하고 그 기간 경과 후 적발되거나 새로운 행위 발생시 엄격한 처벌을 한다는 방침이 있었다며 개별 종교계 차원에서 이러한 신고를 전담할 수 있는 기구를 설치하면 좋겠다고 응답하였다.

이러한 제안들이 실현 불가능하다고 포기하기 전에, 샬롬을 향해 함께 가자는 하나님의 설득에 귀기울여 볼만 하지 않은가. 샬롬이라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려면 누군가의 희생으로 얻어졌던 애굽에서의 거짓평화를 깨뜨리는 길고 긴 광야의 시간이 소요되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광야에서의 무수한 시행착오를 거치는 동안에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므로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이야말로 당신과 나의 영원한 '위드유'이시다.



채수지 소장/기독교여성상담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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