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버지에 그 아들

그 아버지에 그 아들

[ 교육칼럼 ] 마음근력 키우기<10>

하혜숙 교수
2018년 07월 10일(화) 10:15
어릴 적 살던 동네에, 일명 '술 취한 사람'이라고 부르는 아저씨가 있었다. 그 아저씨는 해질 녘이 되면 어김없이 동네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술을 달라고 행패를 부렸다. 어린 나로서는 매번 집에 와서 술을 달라고 주정을 하는 그 아저씨가 너무 싫고 무서웠다. 사실 그 아저씨는 나와 같은 학교 상급생의 아버지였다. 그 상급생 오빠는 학교와 교회에서 회장이었고 잘 생기고, 공부도 잘해서 모든 여학생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 아저씨가 매일같이 동네를 다니며 술에 취해 행패를 부리면 동네 사람들이 집에 연락했고, 그러면 그 오빠가 와서 술취한 자기 아버지를 데려가곤 했다.

어느 날 교회모임에서 그 오빠가 하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자신은 어른이 되더라도 절대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술이 이 세상에서 제일 싫다고 했다. 어린 마음에도 그런 말을 할 수밖에 없는 심정이 이해되었다. 그런데 얼마 전 시골집에 갔다가 우연히 듣게 된 것은 그 오빠도 알콜 중독자가 되었다는 소식이었다. 어린 시절, 술이 제일 혐오스럽다던 그 오빠의 모습이 떠올랐다. 왜 그 아들은 그렇게도 싫어하고 진저리를 치며 절대로 닮지 않겠다고 맹세하던 그 아버지의 모습을 그대로 닮아 있는 걸까.

머레이 보웬(Murray Bowen) 이라는 학자는 '다세대 가족치료 이론'을 주장했다. 다세대 가족치료 이론은 이전 세대의 문제가 다음 세대에 그대로 전수된다는 주장이다. 보웬의 연구 가설은 불안정한 자기를 가진 어머니가 아이를 낳게 되면, 그 자녀를 자기 자신과 융합하여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고, 출산 후에도 정서적으로 아기와 자신을 분화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머니와 아기 사이에 정서적으로 밀착되고 공생적인 감정이 많을수록 이후에 정신분열증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모자공생'(Mother-child symbiosis) 가설을 주장한다. 현대 이론에서는 병리적 문제의 원인을 어머니에게 일방적으로 전가하는 이러한 모자공생 개념이 비판적으로 논의되고 있지만, 가족을 하나의 정서적 단위, 상호 연관된 관계망, 세대를 넘어 가족 문제를 조망함으로써 가족치료 이론 발달에 기여한 면이 인정되고 있다. 보웬 이론은 그토록 경멸하고 싫어하던 아빠의 모습을, 엄마의 모습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수많은 아들, 딸들의 모습을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절대 아빠 같은 사람과는 결혼하지 않겠다, 절대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 내가 아버지처럼 사나 봐라 했던, 그러나 어딘가 모르게 그 엄마 아빠의 모습을 그대로 닮아 있는 어른이 되어버린 그 아들, 딸들, 즉 우리들 말이다.

보웬은 미분화된 부모가 출생순위와 상관없이 자녀들 중에 가장 유아적인 자녀를 투사대상으로 선택하게 되는데 이 현상을 가족투사과정(Family projection process)이라고 불렀다. 왜 집집마다 문제아가 한 명씩 있지 않은가. 우리는 종종 "우리집은 큰 오빠만 정신차리면 되는데…, 우리집은 막내만 잘 하면 아무문제 없는데…" 등의 넋두리를 듣게 된다.

가족투사과정의 강도는 두 가지 요인과 관련되어 있는데 한 가지는 부모의 미분화정도이고 다른 한 가지는 가족이 경험하는 스트레스나 불안의 수준이다. 정서적으로 단절된 부부는 심한 거리감을 느끼고 온통 자녀에게 관심을 쏟으며 자녀들에게 과도하게 밀착하게 된다. 이것은 따뜻한 무조건적 사랑과 관심이 아니라 불안하고 속박적인 관심이다. 결국 자녀들에 대한 과잉관여로 부부간의 거리감은 더욱 심화되고 자신의 불안 때문에 자녀에게 더욱 매달리고 자신의 불안을 자녀에게 투사함으로 인해서 자녀 세대는 정서적 장애를 일으키게 된다.

가족 내에서 대대로 전수되는 이러한 문제로부터 본질적으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우리의 본질적 태생을 아는 것이다. 평생을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로 인해 고통받으며 그것을 피하려고 또는 극복해보려고 했던 시도는 오히려 동일한 문제 속으로 우리를 가두었다. 세대를 이어 반복되는 그 악순환을 벗어나는 진정한 해결책은,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새로운 가정, 온전한 하나님의 가정에서 선하고 온전하신 아버지로부터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으며 진정 내가 누구인지를 깨닫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죄 사함을 받고 성령님과 함께 과거를 직면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삶을 새롭게 조망함으로써 나의 삶의 태도와 반응을 실질적으로 바꾸는 것이다. 육신의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상처와 쓴 뿌리를 그대로 심는 것이 아니라, 진짜 나를 낳아주신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받은 사랑을 나의 삶에 심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새 삶을 배우는 것이다.

하혜숙 교수 /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청소년교육과
우리교회
가정예배
지면보기
인기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