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그리고 나

그녀 그리고 나

[ 땅끝에서온편지 ] 베트남 강영미 선교사(3)

강영미 목사
2018년 07월 03일(화) 10:00
우리는 늘 도움이 필요한 여학생들과 함께 살았다. 때로는 7명의 자매과 함께 산적도 있었다. 그들은 집에서 집안일을 돕는 동시에 미용, 옷만들기, 간호학교에 다녔는데, 우리는 월급과 함께 따로 학비를 지급했다.

그들 중에는 부지런하고, 착하고, 똑똑한 자매들이 많았다. 지금은 목사 사모로, 교회 집사로, 가정주부로, 회사원으로 각자의 자리에서 잘 살고 있지만, 당시엔 서로 부딪히고 갈등했다. 그리고 사랑했다. 이들과 나는 문화 차이 뿐 아니라 세대차이도 있었기에 이중 삼중의 갈등이 우리들 안에는 있었다.

가장 오래 함께 했던 한 자매의 이야기를 하면, 그녀의 이름은 하(Ha)였는데 베트남 전도사 가정의 둘째 딸이었다. 하의 아버지는 둘째와 셋째도 우리 집에 맡겼다. 당시 19세와 16였다. 언니는 야간학교에 동생은 정규 고등학교를 다녔다. 셋째는 공부도 잘하고 자기 관리를 잘했다. 우리는 똑똑한 셋째에게는 싱가폴 유학을 권했다. 언니와 동생 사이에 낀 하는 심성이 곱고, 똑똑하지는 않아도 성실했다.

우리의 안식년을 앞두고 하가 탁아소를 개원하기를 원했다. 우리는 탁아소를 여는 자금을 보조해 주었고, 그 돈을 순익이 발생하는 날부터 갚으라고 했다. 어느 정도 지나서 하는 소위 빚을 갚고자 우리를 방문했다. 하는 돈을 갚고자 열심히 일을 했던 것이다. 나는 기특하고 감동스러웠다. 하는 우리 공동체의 열매였다. 우리는 이미 다 받은 것과 다름이 없으니 탁아소를 확장하는 일에 쓰라고 권면하고 돌려보냈다. 그녀의 눈에 눈물이 고이는 것을 보고, 나는 그녀가 진짜 갚으려고 왔음을 알 수 있었다.

하의 탁아소는 번창하였고, 우리는 안식년 귀국 길에 올랐다. 그 후 그녀는 목사와 결혼해서 교회와 탁아소를 함께 섬겼다. 하의 탁아소에서는 우리 아들 딸이 갖고 놀던 인형들조차 유용하게 쓰이고 있었다.

그 후 잘 살고 있으려니 했던 하의 가정이 여러 이유로 미국에 망명을 신청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태국을 통하여 미국으로 갔다는 소식이 들렸다. 똑같이 생긴 딸을 하나 데리고 미국에 간 하의 생각이 문득문득 나고는 했다. 그런데 최근 필자의 페이스북에 하가 친구신청을 한 것이다. 알고 보니 하는 미국에 가서 베트남 디아스포라를 위한 베트남인 교회를 섬기고 있었다. 그녀의 페이스북에는 그녀가 만든 베트남 요리 뿐 아니라 한국 김치, 김밥 등 교인을 섬기는 그녀의 솜씨가 아름답게 나열돼 있었다. 나는 그녀의 모든 사역에 '좋아요'를 누르면서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하의 삶을 보면서 주님이 우리를 얼마나 정성스럽게 양육하고 계시는지, 얼마나 안전하게 보호하시는지, 영육 간에 모두 형통하기를 얼마나 원하시고, 우리를 기뻐하시는지, 새롭게 아버지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 아버지는 항상 우리를 응원하시고 각종 격려를 아끼지 않으시는 좋으신 하나님이시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키우고 계신다는 안정감이 몰려온다. 그 녀 그리고 나, 우리 모두를 말이다.



강영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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