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도회 연재 '널다리골'

여전도회 연재 '널다리골'

[ 여전도회 ]

한국기독공보
2018년 07월 05일(목) 10:00
1. 여전도회의 선교활동: 역사적 이해, 파송과 참여를 중심으로

여전도회의 선교활동은 하나님 나라의 위대한 믿음의 이야기를 가슴 속에 품은 사람들에 의해 시작되었다. 여전도의 선교활동은 한국교회 선교활동과 시대적 맥을 같이 한다. 복음전도에 헌신하는 여전도회의 초기 역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안겨준다. 한국교회의 전도와 부흥 그리고 성장과정에는 여성 그리스도인의 역할이 지대함을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아직 여성의 사회적 활동이 적극적으로 인정되지 않았던 시대에 교회에는 이미 복음을 전문적으로 전하는 "전도부인"(Bible Woman)의 활동이 있었다. 이들은 때로는 지역에서 사경회를 인도하기도 하며, 문맹자들에게는 한글도 가르쳐주면서 복음전파에 매진하였다.

특히 한국교회 초기시절에 "전도부인"이라는 명칭을 얻으며 전도활동을 전개했던 여성 그리스도인의 역할을 한국교회 전도역사에서 분명한 위치를 차지한다. 전도부인의 호칭은 본래 초기에 남자 권서처럼 성경을 판매하러 다니면서 복음을 전한 "여성 권서"에서 출발하였다. 이 여인들은 외국선교사들에게는 "Bible Woman"(여성 권서나 선교조력자) 호칭되었다. 이들은 기독교 선교를 위해 일하는 여성이란 뜻이다. 이러한 전통은 다른 나라의 선교활동에서도 볼 수 있다. 전도부인은 성서공회 및 선교단체들의 지원을 받아 처음에는 성경을 판매하면서 전도를 하다가 나중에는 본격적이며 전문적인 한국교회 여성 지도자로 발돋음하게 된다. 이들은 성경을 판매할 뿐 아니라 문맹자에게 한글을 가르치기도 하며, 교회에서 성경읽기를 인도하고 사경회에서 지도적 역할을 수행하였으며 교회 안에서 실질적인 전도사의 역할도 수행하였다. 한국교회에서 활동하던 전도부인의 숫자는 '한국 교회 전도부인 자료집' 통계에 따르면 1895년부터 1945년 사이에 공식적인 숫자로 1,215명에 이른다. 감리교 소속은 717명, 장로교 소속은 209명, 성결교 소속은 138명, 기타 교단 소속이 151명으로 기록되었다.

전도부인은 본래 내외가 심한 한국 땅에서 남존여비와 가부장적 구습으로 인해 짓눌려 살고 있던 여성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졌다. 기독교가 전파되기 이전에 여성들은 사회생활이 박탈당하고 뒷전에 머물러 있어야만 했던 상황에서 이러한 여성들에게 관심을 가진 선교사들의 순회전도를 도와 함께 활동한 사람들이다. 특히 젊은 여자들보다 혼자 사는 나이 많은 기혼부인들이 전도부인으로 활동하였는데 이들은 사람들을 접촉하고 전도여행을 하는데 어려움이 없었기 때문이다. 전도부인은 후에 한국교회 안에서 여전도회를 설립하여 활동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을 뿐 아니라 여성들이 목회자로 활동할 수 있도록 한국교회 여성목회자 제도에 초석을 놓았다.

여전도회의 복음전도를 향한 눈물겨운 헌신과 열정은 다양한 방식으로 실천되었다. 특히 한국교회성도의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과 헌신의 정도를 보여주는 제도로서 "날연보제도"가 있었다. 날연보제도란 경제적 어려움으로 헌금을 할 수 없는 성도들이 전도를 위해 일주일 중 하루나 며칠을 연보하여 직접 시간과 몸을 바쳐 전도에 참여하는 제도를 가리킨다. 아마도 이런 제도는 한국교회에서만 볼 수 있는 초기교회의 아름다운 전통이었을 것이다.

이 제도와 함께 초기한국교회 여성활동에서 기억해야 할 것은 성미제도였다. 성미운동은 한국 교회여성에 의해 만들어진 특유한 신앙운동이다. 이연옥에 따르면, 1903년 마산 문창교회에서 각 가정에서 매끼 다섯 숫가락씩 떠내어 모은 쌀을 팔아서 건축에 보태는 운동을 하면서 시작되어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한국교회는 목회자의 사례비를 충당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교인들은 매끼 밥을 짓기 전에 먼저 식구 수대로 한 숟갈씩 떠서 성미 주머니에 넣어 둔 후 어느 정도 모이면 교회에 헌물하면서 목회자의 부족한 사례비를 충당하거나 교회 안에 가난한 성도들을 구제하는 일에 사용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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