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화하지만 정의롭게 살았던 조원곤 목사

온화하지만 정의롭게 살았던 조원곤 목사

[ 특별기획 ] 총회장 시절, 앞장서서 호소문과 입장문 발표

김성진 기자 ksj@pckworld.com
2018년 06월 25일(월) 10:16
광주 양림교회 고등부 시절, 처음 조원곤 목사를 만났던 송인동 교수(호남신대)는 고 조원곤 목사님은 온화한 분으로 메시지 속에는 드러나지는 않지만 언제나 정의가 담겨 있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그는 양림교회를 목회하던 시기에 10·26사태와 5·18 민주화운동이 발생해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실제로 5·18 때 교회 청년 1명과 중학생 1명이 사망하고 청년 7~8명이 연행되거나 수배되는 등 목회자로서 힘든 시기를 보냈다. 이러한 현실을 직면한 그는 유신정권 초기에 광주교회협의회장을 맡아 구국기도회를 개최했고 1980년 1월에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장으로서 '80년대를 향한 교단의 입장'을 발표하고, "군은 국방을 위한 본연의 자세에 충실할 것"을 촉구했다.

또한 5월 17일과 19일 전국교회가 광주를 위해 기도하도록 하고 본교단의 위로 대표단을 현지에 파송할 것 등의 내용을 담은 두차례의 호소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5월 26일에는 광주기독교비상구호대책위원회를 조직해 사망자와 부상자 구속자를 위한 모금과 구호를 펼치기도 했다. 조 목사는 어느 누구도 쉽게 하지 못했던 일을 앞장서서 감당했다.

송 교수는 당시 신구부가 예배 시간에도 찾아와 압박했는데 설교 때 "우리 교회에 독사가 들어와서"라는 얘기를 하곤 했다고 말한 것만 봐도 당시에 조 목사가 얼마나 고초를 당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고초를 당했지만 조 목사는 밖으로 드러내지 않고 혼자 짊어졌다. 그리고 1983년 모든 것을 내려놓고 교회를 사임한 후, 가족들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안경점을 운영했다고 한다.


김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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