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5~30일

6월 25~30일

2018년 06월 22일(금) 17:35
월-기쁘신 뜻을 위해
본문: 빌 2:12~16
찬송가: 425장

하나님께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큰 뜻을 품고 계신다. 어떤 때는 스스로 "도대체 나는 무엇 때문에 이 세상에 태어났지?" 하고 방황하기도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어디에 쓰일 것인가를 잘 알고 계신다. 사도바울은 이 사실에 대해 13절에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라고 고백하고 있다.
 
당시 사도바울의 상황은 어떠한가? 쇠사슬에 묶인 채 로마의 지하 감옥에 갇혀 있는 처참한 상황이다. 지금까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왔을 뿐인데, 어찌 이렇게 되었단 말인가? 좌절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바울은 그 암울한 지하 감방에서 분명한 하나님의 뜻을 발견했다. 비록 감옥 안에 있지만, 하나님께서 자신의 마음속에서 활동하고 계실 뿐만 아니라, 이미 자신에게 기쁘신 뜻을 가지고 계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자 그는 그 뜻을 자신들이 사랑하는 빌립보 교인들에게 나누고자 편지를 쓴다.
 
우리는 여기에서 참으로 중요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기쁘신 뜻을 위해 우리를 동역자로 삼으시고, 함께 동역하시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신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행하는 모든 사역들 속에는 하나님의 기쁘신 뜻이 깃들여 있음을 발견해야 한다.
 
우리가 행하는 작은 일 하나하나 속에 하나님의 소원을 담겨져 있음을 확신하기 바란다. 우리가 이 사실을 깨닫는다면 우리에게는 원망과 시비란 있을 수가 없다. 하나님께서 나를 향한 소원을 가지고 계심을 인식하는 사람은 반드시 상대방 또한 하나님의 기쁘신 소원을 일구는 사람임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비록 나의 마음에 들지 않고, 평상시 못마땅하게 여겨지는 사람일지라도, 그 사람 또한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성도임을 알기에 원망과 시비를 갖지 않게 된다.
 
문제는 서로의 다름이 원망과 시비로 드러날 때 상대방 속에 담겨져 있는 하나님의 소원을 볼 수가 없다는 것이다. 오직 상대의 단점만 보이기 때문에 조화를 이룰 수 없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서로의 다양함을 헤아리면서 원망과 시비 없이 하나님의 소원을 기쁨으로 이루어가라고 당부한다. 지금 내 옆에 있는 성도야말로 주님의 사역을 위해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최고의 선물이다. 그러니 원망과 시비가 없이 서로 상대방의 일을 돕고, 격려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뜻을 위해 함께 협력해서 선을 이루어 가시길 소망한다.
 
오늘의 기도
모든 사역 속에 그리고 함께 더불어 일구어 가는 공동체의 사역 속에 하나님의 소원이 담겨져 있음을 깨닫게 하시고, 원망과 시비 없이 기쁨과 감사로 감당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유재환 목사
청주북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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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지켜 행하라
본문: 수 23:6~8
찬송가: 435장

모세가 죽자 하나님은 모세 후계자로 여호수아를 세우셨다. 가나안땅을 정복한 후 그도 나이 많아 세상을 떠날 날이 되었다. 그래서 백성의 지도자들을 다 불러 모아놓고 유언처럼 전하는 말씀이 본문 말씀이다. 특별히 하나님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복되게 살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치고 있다. 이 말씀을 따라 복 받는 나라, 복 받는 가정이 되기를 소망한다.
 
첫째, 하나님 말씀을 붙잡고 살아야 한다. 본문 6절에 '힘써'라는 말은 꽉 붙들고 매달리는 상태를 말한다. 거기에다 강조의 의미를 지닌 '크게'라는 부사가 붙은 것을 감안할 때 '힘써'라는 의미를 더욱 고조시키고 있다. 여호수아는 일평생 고락간에 이 말씀을 지키면서 살았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함으로 지켜 행하지 아니하고 방자히 행하다가 하나님의 징벌을 받았음을 알고 있었다. 가나안 정복이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이스라엘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의 언약을 굳게 믿었다. 여호수아의 생애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는 가운데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하게 된 것이다. 주시는 말씀을 잘 듣고 잘 지켜 행하면 어떻게 될까?
 
첫째, 안녕(安寧)이 온다. 우리나라 말의 '안녕'은 히브리 말로 샬롬, 곧 평안이다. 그 안녕이 있을 때 우리가 건강함을 누리는 것이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으면 국가도 하나님이 지켜주셔서 안전하게 하시고 개인과 가정도 하나님의 보호로 안전하게 된다.
 
둘째, 우상을 섬기지 않아야 한다. 가지 말라, 부르지 말라, 맹세하지 말라, 절하지 말라는 것은 적극적으로 우상을 배격하고 타협하지 말라는 것이다. 우상이 무엇인가? 우상은 헛것이다. 아무 것도 아니다. 오늘 우리의 우상은 무엇인가? 하나님보다 더 소중하다고 여기고 그것들 때문에 하나님을 소홀히 한다면 그것이 우상이다. 어떤 것이든 하나님보다 우선하면 다 우상이다.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만을 잘 섬기는 나라와 가정이 되기를 소망한다.
 
셋째, 하나님을 가까이 해야 한다. 하나님 여호와를 가까이 해야 한다. 가까이 하라는 말은 적당히 거리를 두고 섬기라는 것이 아니다. 바싹 달라붙어 힘써서 가까이 하라는 것이다. 포도나무에 붙은 가지는 꼭 붙어있어야 한다. 그래야 수분과 영양을 공급받고 살 수 있다. 하나님을 떠나도 잠깐 동안은 잘 먹고 잘 살고 행복한 것처럼 꾸미고 살 수 있다. 그러나 잠깐으로 끝난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자. 친근히 하자. 하나님께 붙어 있자.
 
오늘의 기도
오로지 유일하신 하나님만 섬기며 말씀에 순종하며 주님과 가까이 하는 민족과 가정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정귀희 목사
만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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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6.25를 잊지 말자
본문: 신 8:1~4
찬송가: 582장

우리는 오늘 6.25를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했다. 요셉이 꿈을 해석해 준 술 맡은 관원장이 복직했지만 모든 것을 잊어버린것 처럼 말이다. 그러나 결코 잊어서는 안될 것이 있다.
 
본문의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이 40년의 광야 생활을 마치고 이제 요단강을 건너면 꿈에도 그리던 가난안 땅으로 들어가게 된다. 여기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지난 40년 동안 고난길을 기억하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왜 고난을 주셨는지를 말해주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고난의 때를 기억하라고 하신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처참했던 6.25를 다시 기억하라고 말씀하신다.
 첫째, 6.25는 하나님께 범죄한 민족에게 깨달음을 주기 위함 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후 시내산에서 율법을 주시어 하나님을 섬기는 훈련을 시킨후 곧바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 위하여 가데스바네아로 인도했다. 하나님을 믿고 바로 들어가면 되는 데 이들은 먼저 그 땅을 탐지하자고 12명의 정탐꾼들을 보내어 40일 동안 정탐을 하도록 했다. 문제는 정탐꾼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고 도리어 들어가면 죽는다고 하면서 불평하므로 모든 백성들이 그들의 말을 듣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것이다. 그 결과 40년동안 광야를 헤매게 되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40년의 고난을 겪은 것은 죄로 인함이었다.
 
둘째, 고난 중에도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었다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6.25때에 북괴군이 파죽지세로 내려와 마산,부산,대구를 남겨놓고 다 점령을 당하고 나라의 운명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그러나 유엔군이 급파되고 밀리기만 한 국군이 낙동강 전선에서 전열을 재정비했고, 인천 상륙작전을 통하여 전세를 뒤집게 되었다. 연합군이 파송될 때 하나님의 손길이 있었다. 안전보장 이사회의 상임이사국(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 중국) 중 한 나라라도 거부하면 연합군 파송이 안 되었다. 이 회의에 소련의 대표는 유엔군 파송을 반대하기 위해 유엔본부로 향하여 가고 있었다. 그런데 가는 도중에 갑자기 차의 시동이 꺼지기를 반복해 소련 대표가 참석했을 때에는 이미 한국에 유엔군을 파송하자는 결의는 통과된 후였다. 이처럼 하나님은 무서운 징계를 내리는 가운데서도 우리 민족을 사랑하시고 보호해 주셨다.
 
셋째,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우리는 하루도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임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으로 무장을 하고 항상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으면서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오늘의 기도
6.25 전쟁기념주일을 보내면서 결코 잊지 말게 하소서! 이 민족이 이스라엘 백성처럼 하나님을 원망하고 범죄하는 자리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한성호 목사
부산 대흥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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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주님의 나라를 사는 성도
본문: 마 20:20~28
찬송가: 438장

주님께서 이 땅에 계시던 시대에는 율법을 지키기 위해 애쓰던 사람들이 참 많았다. 그들 중에 대표적인 부류의 사람들이 바로 바리새인들이었다. 그들은 율법의 말씀을 문자 그대로 지키기 위해 힘썼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았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그런 바리새인들을 늘 책망하곤 하셨다.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의 사람처럼 살지 않고, 세상 나라의 사람들처럼 살았기 때문이다. 세상 나라는 힘이 다스리는 나라이다. 힘을 가진 사람이 힘이 없는 사람을 부리고, 다른 사람들이 알아줄만한 일, 기억할만한 일, 인정해줄만한 일에 더 열심을 낸다. 그래서 힘을 얻게 되면 그 힘으로 다른 사람들 위에 군림하거나 남들이 갖지 못하는 혜택을 받으려고 한다. 그것을 특권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당시의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지키는 일을 자신을 높이고 인정받게 하는 도구로 사용했다. 심지어 그 분이 메시야라 할지라도 자신보다 더 높은 자리를 내 줄 수는 없었다.
 
본문에는 세베대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와서 앞으로 이루어질 주님의 나라에 자신의 아들들을 좌우편에 앉게 해 달라고 청탁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이 여인도 예수님의 나라에 대하여 오해했다. 예수님의 나라가 세상의 나라와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신의 아들들들 더 높은 곳에 오르게 하려고 했다. 이러한 마음은 다른 제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3년 동안 예수님과 동행했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의 능력을 경험했다. 그럼에도 예수님의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몰랐다. 그들은 주님의 나라와 세상의 나라를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신의 자리를 다른 제자들에게 양보할 수 없었다.
 
우리가 꿈꾸는 나라는 어떤 나라인가? 세상의 나라에서 성공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지는 않은가?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벌어야 하고, 다른 사람보다 더 성공해야 하고, 내 자식이 다른 사람의 자식보다 더 공부 잘 하고 취업도 잘 해야 내 믿음이 인정받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렇다면 우리도 예수님께서 비난하시던 바리새인과 같은 사람들이다. 우리도 예수님께 엉뚱한 영광을 구하던 제자들과 다르지 않다. 주님의 나라에서 살고 있는 주님의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겸손해질 수 있다. 그래야 하나님의 뜻을 나의 뜻보다 귀하게 여길 수 있다. 그래야 하나님을 위해 나의 손해를 감수할 수 있다.
 
주님의 나라의 자녀답게 주님의 나라의 소중함을 위해 이 땅의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진정한 겸손함을 실천할 수 있기를 바란다.
 
 오늘의 기도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여전히 세상의 높음을 위해 살아가던 우리의 모습을 벗어버리고, 오직 주님의 나라의 가치를 귀히 여기고 겸손하게 주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희진 목사
한사랑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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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내일
본문: 렘 29:11~13
찬송가: 488장

메뚜기와 하루살이가 함께 놀다 저녁 때가 되어 헤어지면서 메뚜기가 말한다. "하루살이야 오늘 참 즐거웠단다. 내일 다시 보자." 하루살이는 "내일이 뭐야?"라고 물었다. 메뚜기는 "어두운 밤이 지나고 태양이 뜨는 아침이 되면 그때가 내일이란다"라고 설명을 하였다. 그러나 하루살이는 메뚜기의 설명에도 내일을 이해할 수 없었다.
 
얼마 후 메뚜기가 개구리를 만나 며칠을 즐겁게 놀았다. 개구리가 말했다. "메뚜기야, 날씨가 쌀쌀해졌지? 우리 내년에 다시 만나자" 메뚜기가 물었다. "개구리야, 내년이 뭐야?" 개구리가 "내년은 추운 겨울이 지나고 따뜻한 봄이 오는 때를 말한단다"라고 설명을 했다. 메뚜기는 이해를 하지 못했다. 영생을 부인하는 어리석은 인간이 하루살이와 메뚜기의 모습이 아닐까. 자신이 경험하지 못해서 믿을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것이다. 내일이 있고 내년도 있으며 영생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인간이 삶의 목적을 모를 때에는 내일이 없다. 자신의 삶의 목적을 알 때에 희망이 있고 자신의 삶의 의미를 알 때 내일이 있다.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삶의 목적을 알 수 있을까?
 
먼저 삶의 의미를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나를 선택하셔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신 것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다. 그것을 모르고 사는 사람은 내일이 없다. 하나님이 나를 만드신 목적을 발견할 때 비로소 나에게 내일이 있다. 모든 일에 즐거워야 한다. 영생을 소유하고 살아가는 신자는 언제나 즐거워야 한다. 삶이 즐거운가? 교회에 오는 즐거움이 있는가? 찬양에 기쁨을 가지고 찬양하는가? 기도에 즐거움이 있는가? 영생을 소유한 자로서 즐거움이 넘쳐야 한다.
 
나아가 희망을 가져야 한다. 나의 미래는 창대하게 되리라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희망이 없으면 노력도 없고 살아가고자 하는 의미도 없다. 지금 불안하고 답답하다고 낙망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에게 생명이 있는 한 희망이 있고 영생이 있는 한 내일이 있다. 실망하고 좌절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한 번의 실패로 인생을 포기하는 사람은 또 얼마나 많이 있는가? 이런 사람들의 행동은 내일을 모르기 때문이다. 내일을 바라보고 미래가 있는 사람은 오늘의 실패 때문에 좌절하지 않고 희망으로 바라본다. 비록 오늘 내가 실패를 했다 하더라도 희망찬 내일이 있다.

오늘밤만 견디어 내면 내일의 태양이 떠오르듯이 우리에게도 내일의 태양이 기다리고 있다. 내일이 있는 사람은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삶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고 내일이 있기 때문이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저희에게 내일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영생을 소유한 자로서 삶의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살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용일 목사
서초반석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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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면류관을 사모하자
본문: 딤후 4:7~8
찬송가: 360장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그 기도의 응답을 받는 것만큼 큰 기쁨은 없다. 그러나 우리가 그 보다 더 기대하고 기뻐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마지막 날에 우리에게 수여 하실 면류관을 사모하는 것이다. 성경에서 일반적으로 강조하는 면류관은 6가지인데, 여기서는 3가지 면류관을 살펴보고자 한다. '면류관'은 본래 왕이나 왕비, 제사장 그리고 올림픽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마라톤의 승리자에게 주는 것이다. 그래서 '면류관'은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뜻한다. 그리고 이 '면류관'은 철저히 우리가 행한 대로 갚아 주는 것이다.
 
첫째 면류관은, 생명의 면류관이다. 야고보서 1장 12절에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유혹'은 마귀가 우리에게 주는 악한 것이고, '시험'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유익하게 하려고 주시는 것이다. 때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물질과 건강과 환경의 시험과 시련을 주시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음을 믿고 참고 인내하심으로 생명의 면류관 받기를 사모해야 한다.
 
둘째 면류관은, 의의 면류관이다. 디모데후서 4장 8절에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 도니라"고 했다. '의의 면류관'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 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킨 사람들'을 위해 예비되어 있다고 했다. 마라톤을 하는 선수가 힘들다고 코스를 벗어나서 지름길로 가버리면 월계관을 받을 수 없는 것과 같이 신앙생활 하는 것이 때로 힘들다 해서 젊어서 잘 믿다가 노년에 믿음에서 떠나버리면 나중에 받을 상급이 없다. 특별히 의의 면류관은 주의 재림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 주겠다고 했다. 주의 오심을 사모하는 사람은 함부로 살지 않는 것이다.

세 번째 면류관은, 자랑의 면류관이다. 데살로니가전서 2장 19절과 20절에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가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했다. 2장 4절에 '복음을 위탁 받았으니'라는 말씀이 나온다. '위탁 받았다'는 것은 '전할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나 때문에 예수 믿고 구원 받은 사람이 몇 명이나 되는지 손으로 헤아려 볼 필요가 있다.
 
여러분에게 자랑의 면류관인 전도의 열매가 많아지기를 바란다.
 
오늘의 기도
우리를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우리도 그 사랑에 감격하여 충성스럽게 섬기다가 주님 재림하시는 날에 잘했다 칭찬 받게 하시고 상급과 면류관 받아쓰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조성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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