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8~23일

6월 18~23일

2018년 06월 15일(금) 17:37
월-여호와의 이름이면
본문: 삼상 17:45~47
찬송가: 356장

사람들은 취미나 성향에 따라 끼리끼리 모이고 긍정적인 사람들끼리, 부정적인 사람들끼리 모인다. 이것을 '무리의 법칙'이라고 한다.
 
어떤 부인이 말끝마다 '당신이 뭘 알아요?'라며 남편을 늘 구박했다. 어느 날 병원에서 전화가 왔는데 남편이 교통사고를 당해 중환자실에 있다는 내용이었다. 부인은 허겁지겁 병원으로 달려갔으나 남편은 이미 하얀 천에 덮여 있었다. 부인은 남편을 부여잡고 하염없이 울었다. 그 때 남편이 슬그머니 천을 내리면서 말했다. "여보, 나 아직 안 죽었어." 그러자 깜짝 놀란 부인이 눈물을 훔치면서 남편에게 소리쳤다. "당신이 뭘 알아요? 의사가 죽었다는데!"
 
부정적인 사고방식에 고착되면 감사보다는 불평과 원망으로 살아야 하고 실패자의 삶을 살 수밖에 없다. 이런 사람은 대부분 자신이 실패자라는 패배주의 사상을 가지고 있어 아무리 애를 써도 절망의 늪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부정적 성향은 자신의 생각을 바꾸지 않는 한 거기서 벗어날 수 없다. 성경은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 4:23)고 했고 또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눅 6:45)고 했다.
 
중고등학생들에게 가장 큰 스트레스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엉뚱하게도 '엄마'라고 한다. 그것은 엄마의 잔소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엄마의 잔소리가 우리 아이들을 살게 하고 있지 않는가? 교회에서 무엇이 가장 큰 스트레스냐고 물었더니 많은 사람들이 '목사'란다. "기도해라, 전도해라, 십일조해라, 주일성수 잘해라." 잔소리가 듣기 싫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잔소리가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게 하는 원동력 아니던가? 생각을 바꾸자. 사울 왕이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적장 골리앗이 너무 커서 도무지 쓰러뜨릴 수 없다고 생각할 때 다윗은 그가 너무 크기 때문에 물맷돌이 빗나갈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나님을 모욕하고 베틀 채 같은 창을 휘두르며 호령하는 이방인을 모두가 당할 수 없다고 물러 설 때 다윗은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자세로 이스라엘에게 승리를 안겼다. 그는 골리앗에게 나아갈 때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아간다고 했다. 다윗은 여호와의 이름이면 족했다.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나아오는 골리앗을 향하여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아가 승리했다. 그리스도인의 삶속에 여호와의 이름이면 족하다. 그 이름이면 가정도 사회도 국가도 개인의 건강과 행복도 모두 족하다.
 
오늘의 기도
여호와의 이름이면 족하다는 긍정적 사고로 승리하는 삶을 살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용일 목사/서초반석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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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무엇을 믿습니까?
본문: 행 1:6~11
찬송가: 171장

우리 교회는 매주일 예배시간 마다 목사와 회중이 묻고 답하는 것이 있다. "우리는 무엇을 믿습니까?" 물으면, "예수님이 지금 내 안에 있는 것을 믿습니다!"라고 답하는 것이다. 스웨덴의 스톡홀름을 방문했을 때 주일에 가까운 교회에서 예배드릴 때 나누던 것을 적용하고 있다. 과연 우리는 무엇을 믿고 있는가? 본문을 보면 제자들이 3년 동안 믿고 따르던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처참하고 허망하게 죽으시고 부활하셨다가 승천하셨다. 이에 제자들은 혼란 상태에 빠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룟 유다를 제외하고 맛디아를 포함한 제자들이 골방에 숨어 있다가 문을 박차고 나와서 여전히 조롱과 체포와 생명의 위협 가운데서도 사도행전 2장 14절에 보면 목숨을 걸고 소리를 높여 설교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몇 가지 확신 때문이었다.
 
부정할 수 없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체험했고, 승천을 목도했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어떻게 믿고 확신하는가? 본문 사도행전의 앞뒤를 읽게 되면 낙심하고 좌절했던 제자들이 180도 변화된 행동을 취하는 것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을 의심 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 기독교 신앙에는 창조와 홍해사건, 성육신과 오병이어처럼 믿어야 할 것이 있는가 하면, 부활과 승천같이 성경을 자세히 읽어 보아서 배우고 확신해야 할 것이 있다.
 
우리에게도 사도들과 같은 '흔들리지 않는 몇 가지 확신'이 필요하다.
 
첫째가 구원의 확신이다. 구원은 성경의 사건들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나의 사건이 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내 안에 들어오는 사건을 통해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다. 둘째가 부활의 확신이다.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주님의 부활은 곧 성도의 부활을 확증하는 것이다. 이것은 절망 중에 있던 '제자들의 희망'이기도 했다. 셋째가 재림의 확신이다. 예수님 재림의 약속과 소망은 제자들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아서 순교까지 가능하게 했다. 사람은 내가 이 일을 위해서라면 목숨을 바칠 수도 있고, 일생을 드릴 수도 있다고 하는 '그 무엇'이 있어야 한다. '그 무엇'이 주님이 되어야 할 것이다. 넷째가 성령임재(내주)의 확신이다.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난 후 10일째 되는 날에 성령 충만해진 제자들이 선포한 말씀이 2장 21절이다. 우리의 믿음과 구원의 근거는 느낌이나 감정이 아니다. 천지는 없어져도 일점일획도 없어지지 않는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에 그 근거를 두어야 한다.
 
오늘의 기도
구원의 확신과 부활의 확신과 재림의 확신과 성령의 내주하심을 확신하는 믿음 위에 굳게 서서 살아가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조성원 목사/은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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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나는 그리스도의 종
본문: 롬 1:1
찬송가: 440장

로마서는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말씀을 담고 있는 가장 이론적이고 신학적인 책이다. 로마서를 기록한 사도 바울은 그 신학적인 말씀을 불붙는 마음으로 전했고, 이를 들었던 많은 신앙인들이 뜨거움을 경험했다. 로마서의 첫 말씀은 "나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다"라는 선언이다. 종은 주인이 시키는 대로 하고 주인을 위해서 충성을 다한다. 그래서 종에게는 생각도 없고, 소유도 없다. 바울이 자신을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서두부터 밝히는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인간의 종이 되거나, 어떤 다른 우상의 종이 되거나, 아니면 탐욕과 이념의 종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확실히 기억해야 할 사실은 인간은 주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인간은 무엇인가의 종으로 살아야 한다. 그렇다면 차라리 노예임을 인정하고 더 좋은 주인을 찾는 것이 현명하다. 더 좋은 주인은 나를 더 발전시키고 내 생명을 풍성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인류의 역사는 하나님의 종이 되는 것을 거부하고 자유를 얻으려는 과정이었다. 첫 사람 아담과 하와가 그랬고, 집 나간 탕자가 그랬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우리를 죄인으로 몰아붙이는 이유도 자신 안에 희망이 없음을 깨닫고 하나님께로 행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자신에게 철저히 절망하는 자가 진정으로 희망을 안을 수 있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는 자가 진정 그 이름이 높아진다.
 
교회와 성도들은 세상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자답게 세상의 빛이 되어 주의 진리를 비추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예민한 후각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 시대에 예민한 코를 들이박고 지금 우리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교회가 제대로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지 연신 킁킁거려야 한다. 후각을 잃거나, 자기 본분을 잊어버린 교회가 되어서는 안된다.
 
그렇다면 종이 종의 사명을 망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세상에 취했기 때문이다. 일을 맡겼는데 그 일의 주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종의 가장 악한 짓은 주인의 자리나 소유를 탐하는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교회'에 주인이 되려고 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무익한 종이다. 열심히 일하고도 주인 행세를 하지 않는 것이 종의 자세이다.
 
'나'라는 인생의 주인도 내가 아닌 그리스도이다. 그러므로 우리 인생은 내가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그저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면 된다. 복음은 '나보다 하나님이 내 인생에 더 관심이 많고, 내가 잘 되기를 더 바라고, 끝까지 내 인생을 책임지신다'고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다. 성공과 실패는 주님의 몫이고 최선을 다했다면 종으로서 우리 모두는 성공한 신앙이다.
 
오늘의 기도
우리 인생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 주님임을 기억하고, 주님의 종된 삶을 힘써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희진 목사/한사랑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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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하나님의 아들
본문: 마 14:22~33
찬송가: 288장

오늘 예수님께서는 오병이어의 사건 이후 제자들을 재촉하시어 배를 타고 먼저 갈릴리 호수 건너편으로 가게 하셨다. 이유는 무리들이 예수님을 임금 삼으려는 줄 아셨기 때문이다. 오병이어를 경험한 무리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들의 임금으로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무리들이 하려는 행동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과 다르기에 그들을 피하기 위해 산으로 가셨다. 예수님은 무리들을 보내고 기도하러 산으로 올라가셨다. 하나님과 교제하기 위해서이다. 혼자 기도하실 때 제자들이 탄 배는 이미 육지를 떠나 십 여리쯤 멀리 갔다. 갈릴리 호수는 헐몬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의 급격한 기류변화로 인해 풍랑이 일어나곤 했다. 이때 예수님이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고 계셨다. 밤 사경이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새벽 3~6시 사이에 물 위로 걸어오는 것을 보고 제자들은 유령이라며 놀란다. 무서워 소리 지르는 제자들을 향하여 예수님께서는 3가지의 말씀으로 반응하셨다.
 
첫째, "안심하라." 이 말씀은 "너희들은 지금부터 계속 즐거워하라"는 뜻이다. 이유는 이제 제자들 곁에는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예수님과 함께하면 어떤 상황도 즐거워할 수 있다.
 
둘째, "나니…" 이 말씀은 제자들에게 예수님 자신을 소개하는 장면이다. 이는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할 수 없는 일들을 하는 것을 제자들이 경험했다. 12해를 혈루병으로 앓던 여인을 고치시고, 38년된 병자가 일어나는 기적, 오병이어의 기적이 그것이다. "나다"라는 말은 내가 너희와 함께 있다는 뜻이다.
 
셋째, "두려워하지 말라." 이 말씀은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요구하는 말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할 때 비로소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3가지의 말씀을 들은 베드로는 즉각 반응한다. 예수님을 바라보며 물위를 걷는다. 그러나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진다. 무서움을 느끼고 물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베드로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무엇을 바라보고, 무엇을 따라 가느냐에 따라 삶의 모습도 달라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주님을 바라보고 말씀만 붙잡고 살아가자.
 
33절은 배에 있던 제자들의 고백이다. '절하다'라는 표현은 제자들에게 처음 사용된 단어이다. 지금까지 자신들과 함께 계신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어렴풋이 이해하다가 오늘 일어난 사건을 통하여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는 뜻이다. 이어서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라는 고백을 한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예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예수님과 함께하면 안전하다. 말씀 없이 사는 인생은 예수님을 유령이라 부르며 무서워 할 수 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한 것이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한다.
 
오늘의 기도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살아가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정귀희 목사/만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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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광야 길을 걷게 하신 이유
본문: 신 8:1~18
찬송가: 344장

6월은 호국보훈의 달로 민족상잔의 비극인 6.25 기념일이 있는 달이다. 왜 하나님이 우리민족에게 이런 아픔을 주셨을까? 다시 한번 깊이 깨닫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서 출애굽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은 거리 상으로 약 300Km이다. 차로는 4시간, 걸으면 1주일 정도면 갈 수 있는 거리이다. 그러나 무려 40년이나 걸리게 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도 위험한 불뱀과 전갈, 낮에는 뜨거운 햇살과 밤에는 살인적인 추위, 물을 찾아봐도 찾을 수 없는 건조한 거친 광야를 사랑하는 당신의 백성들에게 걷게 하셨을까? 누구나 할 것 없이 크고 작은 광야 길을 걷게 되는데 그 광야 길을 걷게 하신 하나님의 숨은 뜻은 무엇일까?
 
첫째, 우리를 낮추시기 위함이다. 2절에서 "40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고"라고 했다. 우리는 본성적으로 교만한 존재로 태어났다. 자신을 겸손으로 포장해도 그 속을 깊이 파고 들어가 보면 '그래도 당신보다는 내가 낫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인간의 마음인 것이다. 교만한 마음을 갖고 가나안 땅에 입성할 수 없다. 영적으로 교만은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죄이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위이다.
 
둘째, 우리를 시험하사 말씀을 지키는지, 안 지키는지를 시험하기 위함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시험하신다. 100세에 낳은 아들 이삭을 번제로 바칠 수 있느냐며 아브라함을 시험하셨고, 아브라함은 결국 그 시험문제를 풀었다. 그 때 하나님이 이제야 네가 나를 경외하는 줄을 알게 되었다고 하신다.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하신 명령을 지키지 않고 말씀을 어기므로 모든 세대에게 저주가 임했다. 물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심으로 저주가 풀리고 이제는 하나님 안에서 안식과 평안 축복을 누리게 되었다.
 
광야를 다 마친 후에는 축복의 선물이 기다리고 있다. 광야생활이 다 나쁜 것은 아니다. 광야길을 많이 걷다보면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겸손해지게 되고, 자신을 의지하던 삶이 하나님 한분만 의지하게 된다. 또 광야길을 걸으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실천하고 있는지를 볼 수 있게 된다. 먹을 것이 많지 않아도 감사를 유지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 먹을 수 있는 여유 있는 사람이 된다면 하나님께서 높이 들어 쓰실 것이다. 혹시 지금 광야길을 걷고 있는가? 그 광야길이 큰 유익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고난의 길을 걷고 있는가? 고난 때문에 우리가 더 빨리 사명의 길을 갈 수 있다. 도리어 평안하고 안정될 때 교회가 타락하고 사회가 더 타락하는 것을 보게 된다. 광야길을 다 마치고 마침내 복 주시는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하자.
 
오늘의 기도
광야 길을 걸을 때 지치지 않도록 피할 길을 주시고, 일으켜 주사 마지막까지 사명을 잘 감당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한성호 목사/부산 대흥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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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크고 은밀한 일을 보이리라
본문: 렘 33:1~3
찬송가: 302장

하나님은 일을 행하시는 분이요, 그 일을 성취하시며 완성시키시는 분이시다. 처음부터 완성되는 그 시간까지 우리 곁에서 우리를 도우시고 인도해 주시는 분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에게 임한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며, 기도하며, 당당하게 삶의 도상을 힘있게 그리고 묵직하게 걸어가는 것뿐이다. 그렇게 할 때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확연하게 보여주시는 은혜가 있다. 그것이 바로 3절 말씀이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기도하라고 말씀하신다. 단순히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부르짖으라고 요청하신다. 부르짖는다는 것은 단지 소리를 크게 내는 것이 아니라, 창자가 끊어지듯이, 간이 땅에 떨어지듯이 기도하라는 말씀이다. 그리하면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보여주시겠다고 약속하신다.
 
'크다(가돌)'는 규모만이 아니라 그 내용까지 포함하는 단어이다. 그리고 '은밀한(바차르)'은 '도달할 수 없는 것'을 가리키는 단어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역사를 의미한다. 그러니까 비록 예레미야가 시위대의 뜰에 갇혀 있어 아무 것도 할 수 없을지라도, 그곳에서 소망을 품고 간절히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생각할 수도 없는 방법으로 엄청난 일을 하시겠다는 말씀이다.
 
그렇다면 예레미야에게 있어서 '크고 은밀한 일'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죄를 범함으로 인해 70년 동안 바벨론으로 끌려가 노예생활을 하는데서 다시금 그들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정결하게 하셔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회복시켜 주시겠다는 약속이다. 이것이 바로 크고 은밀한 하나님의 일이다. 그 누구도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위대한 회복의 역사가 임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상상하지 못할 '크고 은밀한 일'을 확연하게 보여주실 줄 믿는다. 주님께서는 분명하게 말씀하신다.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을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임이라(사 5:59)." 그렇다.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보다 더 크고, 하나님의 길은 우리 길보다 훨씬 높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일은 '크고 은밀한 일'이다.
 
비록 우리의 삶에 좌절과 절망, 난관에 봉착하는 일이 있다할지라도 우리를 위해 크고 은밀한 일로 우리 인생을 추동하시는 그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를 경험하길 소망한다. 그리고 바라기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크고 은밀한 비밀을 차곡차곡 여러분의 은혜의 창고에 쌓아 가기 바란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감사'로 응답할 수 있길 원한다.
 
오늘의 기도
매 순간순간마다 하나님의 도우심의 손길이 있게 하시고, 하나님의 크고 은밀한 일로 인해 기쁨이 넘치게 하소서. 그리하여 하나님의 향한 감사 찬양이 끊이지 않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유재환 목사청주북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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