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교회, 섬김으로 통일 앞당겨"

"독일 교회, 섬김으로 통일 앞당겨"

'독일통일에서 교회 역할' 세미나, 베르너 크레첼 박사 강연

표현모 기자 hmpyo@pckworld.com
2018년 06월 11일(월) 11:00
'독일통일에서 교회 역할' 제하의 세미나 모습.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전까지 서독의 교회들은 동독지역의 교회들을 재정적, 물질적, 정신적, 영적으로 지원했습니다. 1950년대에는 서독의 많은 젊은 신학자, 목회자들이 무신론에 맞서 싸우기 위해 동독으로 갔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은 서독의 지원에서 이득을 보았기 때문에 서독 교회의 물질적 지원을 허락했고, 동독의 교회들은 정부로부터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 7일 양재 온누리교회에서 열린 '독일통일에서 교회 역할' 제하의 세미나에서 동독 출신의 목사로서 독일 통일에 기여한 베르너 크레첼 박사는 독일 통일에 있어 통일 이전, 통일 과정, 통일 이후 각각의 과정에 있었던 교회의 역할을 소개하며, 최근 그 어느 때보다 기대감이 높아진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 있어 한국교회의 역할이 중요함을 강조했다.

기독교학술원(원장:김영한)과 온누리교회(이재훈 목사 시무)가 공동으로 주최한 이번 세미나에서 크레첼 박사는 독일 통일 전 서독교회가 동독교회를 지원한 점을 강조하며, 당시 동독교회의 필요한 자금 중 약 50%가 서독에서 들어와 교회가 유지되고 목회자들이 봉급을 받을 수 있었던 사실을 밝혔다. 또한, 동독의 목회자들이 서독을 여행할 수는 없었지만 서독교회에서는 자매결연을 맺은 동독교회와 성도들을 방문해 이 접촉이 통일 이후 완전히 다른 사회임에도 불구하고 함께 성장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말했다.

크레첼 박사는 특히 통일 과정에서 교회의 역할에 대해 "결정적"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1989년 동독 민중의 힘을 결집시킨 라이프치히 성니콜라이교회의 월요 평화기도회의 이야기를 전개하며, '칼을 쳐서 보습으로' 등의 교회의 구호가적힌 시위 사진 등을 공개하기도 했다. 월요 평화기도회는 처음 몇년간 50~120명 정도가 참여하다가 1989년 동독 공산당의 관제집회 중 시위를 계기로 몇 1000명으로 늘어났고, 몇 개월만에 다시 몇 만 명으로 늘어나 베를린 자유왕래의 기초를 제공한 것으로 유명하다.

크레첼 박사는 "베를린 장벽의 붕괴 이후 혼란에 빠진 동독사회를 안정과 침착함을 잃지 않도록 한 것도 교회의 역할 때문이었다"며, "개신교 교회 목사들이 원탁회의를 주재해 정치적 공백상태를 막고, 지역의 주요한 결정들을 이끌어 나갔다"고 밝혔다. 그는 "교회는 독재자가 분노에 찬 국민들의 손에 넘겨져 무단 처형되는 것을 막고, 과거의 광적인 간부들에 의한 쿠데타를 막으며, 약탈 및 경쟁 집단간의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당시 독일 교회의 역할을 소개했다.

통일 이후의 역할에 대해서는 크레첼 박사는 "교회가 동독 사람들의 어려운 상태를 위로하고, 영적 공급을 통해 새로운 삶의 가치를 찾도록 하는 일이 중요해졌다"며, "또한, 압제적 상황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신앙으로 살아갈 수 있었는지 그들의 경험과 통찰력을 경청하고 관심을 갖는 일도 중요한 일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세미나에서는 김영한 박사와 황의서 교수(서울시립대)가 개회사를 했으며, 정일웅 박사(전 총신대 총장), 지형은 박사 목사(성락성결교회), 주도홍 박사(백석대 대학원 부총장) 등이 토론에 참여했다.

표현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