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점화된 낙태 논란, 'When'에서 'How'로

재점화된 낙태 논란, 'When'에서 'How'로

[ 시론 ] 기독교 내에서 공공신학적 소통 필요

문시영 교수
2018년 06월 11일(월) 10:00
문시영 교수
2012년, 헌재는 공개변론에서 재판관 4:4의견으로 위헌판결 정족수 6명에 미달되어 낙태죄 합헌 결정을 내렸다. 2018년, 헌재에 쏠린 관심에는 '이번에는 확실히 다를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낙태 비범죄화를 위한 국민청원으로 촉발된 사회적 공론화가 여의치 않게 되자 헌재에 결정을 맡긴 셈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낙태에 관한 기독교윤리학적 의견을 제시하는 과정에 분명히 해 둘 것이 있다. 하나님의 생명주권에 대한 신앙고백을 기초로, '하나님 노릇하기'(playing God)를 금해야 한다는 원칙에는 흔들림이 없다.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풀어내고 소통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의료용어상 '인공임신중절'이라 불리고 법률 및 일상언어에서는 '낙태'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보편화되어 있는 이 문제만큼 오래된 것도 없다. 낙태에 관한 '생명옹호론'(pro-life)과 '선택옹호론'(pro-choice) 사이의 찬반논변은 생명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되었으며 첨예한 대립을 보이고 있다. 2018년 한국의 맥락에서, 낙태문제는 '낙태 비범죄화' 혹은 '낙태죄 폐지' 논란으로 재점화되고 있다.

찬성하는 쪽에서는 낙태죄가 '과잉 도덕화' 되어 있다고 주장하면서 현실적으로 사문화된 정황을 비범죄화 혹은 폐지의 근거로 삼는다. 특히, 낙태죄 규정이 지나치게 처벌일변도라고 지적하면서 여성과 의료진에게만 책임을 묻는 불합리한 구조를 문제 삼는다. 무엇보다도, 낙태를 여성의 권리라고 주장하면서 남성지배구조로부터의 해방과 연관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젠더적 접근은 낙태와 관련된 최근의 논란에서 가장 중요한 입장이라 하겠다. 참고로, 현행 기준을 변경하여 임신 12주내의 낙태를 비범죄화하고 비혼모에 대한 사회·경제적 지원, 입양문화의 활성화 등 비형법적 정책을 병행하자는 의견도 있다.

낙태죄 폐지를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태아의 생명권'을 근거로 삼는다.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태아의 생명권 사이의 대립을 넘어 생명존엄의 관점에서 낙태문제에 접근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한 찬성론자들이 낙태죄 사문화 정황을 근거로 삼는 것과 달리, 반대론에서는 낙태죄 처벌 조항이야말로 태아의 생명권을 보호하는 유일한 법적 안전장치라고 말한다. 나아가, 형법에 낙태죄 규정을 존속시켜야 낙태가 죄라는 사실을 국민들에게 인식시킬 수 있으며 심리적 경각심을 불어넣어 도덕적 억제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말한다. 수태되는 순간부터 생명이라는 기독교의 생명주권 원칙을 직설적으로 표현하기보다 법률의 차원에서 설득적으로 풀어낸 시도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어 보인다.

문제는 찬성과 반대의 입장들에 대한 분석이 아니라, 기독교의 대응전략이다. 과연, 기독교는 합리적이고 일관된 대응전략을 가지고 있을까? 안타깝지만, 충분히 준비되어 있지 못한 듯싶다. 솔직히, 이 문제에 대해 기독교가 지닌 보수적인 관점 때문에 사회로부터 시대착오적인 집단이라고 외면당할 것에 대한 우려보다 기독교 안에 지나치게 다양한 의견들이 있고 그것을 조정할 기능은 전혀 없다는 사실에 더 큰 안타까움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가 수행해 온 공공신학적 책무를 포기할 수는 없다. 다만, 접근방식에서 중요한 전환이 필요하다. 낙태를 둘러싼 비범죄화 혹은 폐지에 관한 논란에서, '시점의 문제'('When' question)에 집착하기보다 '해법의 모색'('How' question)에 관심해야 한다. 낙태 문제에 대한 수많은 토론에도 불구하고 낙태의 도덕적 지위에 관한 논의는 교착상태에 빠져있다. '시점에 문제'에 집착해왔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기독교만 시점에 대한 관심하는 것은 아닌 듯싶다. 낙태 비범죄화론을 주장하는 일부에서 현행 임신 24주 기준을 12주로 변경하자는 것 역시 범죄가 되지 않은 면책시점에 집착하고 있다.

기독교는 주도적으로 관점을 전환시켜 해법의 모색에 주목해야 한다. 두 가지 원칙을 제언 하고 싶다. 그 하나는 낙태의 비범죄화 혹은 폐지가 유일한 출구인 것은 아니라고 말해줄 '합리적 반론'의 마련이다. 다른 하나는 태아의 생명(life)에 대한 강조와 여성의 삶(life)에 대한 관심을 아우르는 '설득적 전략'의 모색이다. 그리고 이러한 두 원칙에 기반하여 기독교 내부의 전문가 토론이 필요하다. 시민적 소통 이전에 기독교 내부에서 공공신학적 소통을 이루자는 뜻이다. 의료, 복지, 법률, 그리고 신학을 비롯한 관련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기독교의 내부토론을 통해 해법 모색에 주력해야 한다.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공공정책의 모색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교회다운 방향성을 찾아야 한다. 낙태 문제에 대해 '예수 내러티브의 다음 세대를 환영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던 하우어워스의 주장에 관심이 가는 이유이다. 하우어워스에 따르면, 그리스도인은 자녀를 세상에 받아들이고 환영하기를 즐거워하는 백성이 되어야 하며 낙태를 반대한다면 그것은 새 생명이 기독교 공동체에 들어오는 것을 환영하는 적극적 위탁의 소극적 표현이어야 한다. 교회다운 해법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뜻일 듯싶다.



문시영 교수(남서울대/새세대윤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