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신신학의 에큐메니칼적 과제

장신신학의 에큐메니칼적 과제

[ 6월특집 ] 장신신학의 현주소를 말하다

김성진 기자 ksj@pckworld.com
2018년 06월 11일(월) 10:00
금주섭 총무
장신신학의 현주소를 말하다.

3. 변혁적 제자도로의 부르심



지난 호에 이어 금주섭 총무(WCC/CWMW)의 '장신신학의 에큐메니칼적 과제와 방향' 제하의 발제를 요약 정리한다.



1985년 장신대 교수회가 발표한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성명'과 2002년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교육 성명의 신학적 전제들을 재해석하는 방법을 통해 장신신학의 미래적이고 에큐메니칼적인 방향을 논하고자 한다. 그리고 현재 세계교회의 가장 중요한 주제로 떠오르는 '변혁적 제자도'를 소개하고 세계질서의 대전환기적 소용돌이 속에서 '세계속의 장신신학'의 하나의 방향으로 제시하고자 한다.



개혁전통과 '중심에 서는 신학'

1985년 신학성명은 신학의 전제, 개혁주의 신학 전통과 에큐메니칼 신학, 신학과 교회, 신학의 선교적 기능과 사회적 기능, 신학의 자리와 방향, 신학의 한계와 신학의 대화적 측면을 중심 주제로 발표했다. 신옥수 교수는 1981년 고 김이태 교수가 제안한 '중심에 서는 신학'을 장신신학의 개념적 틀거리로 삼았다고 주장한다. 윤철호 교수도 중심에 서는 신학은 양쪽의 상반된 입장을 적당히 타협하고 절충하는 중간의 회색신학이 결코 아니라, 항상 양 극의 역동적이고 변증법적인 상호 비판적이고 변혁적인 대화의 관계성과 과정 속에 존재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따라서 우리의 '중심에 서는 신학'은 쯔빙글리의 '좌'와 루터의 '우'를 넘어서서 칼빈의 '중심에 서는 신학'에 뿌리를 두고 있다. 칼빈에게 개혁의 중심에 선다는 의미는 왕의 권력이나 혁명의 총칼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을 선포하며 교육을 통해 조직된 시민의 힘을 통한 평화적이면서도 완전한 개혁을 이루는 것을 의미했다. 따라서 우리가 중심에 서는 신학을 주창하려면 그 신학적 주제가 한국사회와 교회의 개혁의 과제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중심에 서는 신학'은 중심에 서 있는 사람들이 변혁을 위한 저항과 대안 제시의 선구적 역할을 다할 때 진정성을 획득할 수 있는 신학이며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하는 신학이다.

또한 중심에 서는 신학은 주변부에 서서 그곳을 중심으로 세우는 신학이다. 2013년 제10차 WCC 부산 총회에서는 '성령의 선교'에 대한 신학적 조명과 '주변부로부터의 선교' 개념이 가장 창의적인 것으로 평과받고 있다. 이제껏 선교는 중심으로부터 주변으로 힘있는 자가 약한 자에게, 부자가 가난한 자에게, 특권층으로부터 소외된 자에게, 서구가 남반구를 향해 움직이는 운동이라고 여겨왔다. 그러나 이제는 주변화된 사람들이 선교의 대리자로서 자신들의 핵심 역할을 요구하고 있으며 선교를 변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만일 장신신학이 '중심에서 주변을 향하는 신학'에서 '주변에 서서 그곳을 중심이 되게 하는 다 중심적 신학'으로 개념 전환이 일어난다면 우리는 포스트모더니즘과 다원주의 시대에 적절한 신학적 방법론을 구상할 수 있을 것이다.

중심에 서는 신학은 상황적 신학이다. 에큐메니칼 신학의 대명제는 '다양성 속의 일치'이다. 이를 신학적으로 표현하면 '모든 신학은 상황적 신학'이라는 것이다. 장신신학의 연구방법론이 서구의 신학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점검해 봐야 한다. 서구의 현대신학 연구의 업적들을 비판적으로 수용하는 동시에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의 신학적 연구들과 '함께 호흡하며' 연구 성과를 교류하며 공동으로 연구하는 학문적 리더십을 강화해야 한다. 이미 2002년 성명은 이를 강조하고 있다. 장신신학이 다양한 관점의 이종교배를 통해 창조적인 신학적 주체, 관점과 방법론을 발전시키고 진정한 세계기독교와 신학의 발전에 기여하는 중심에 서 있다.



에큐메니칼과 에반젤리칼 선교신학의 지평융합

1985년 신학성명의 두 번째 큰 주제는 에발젤리칼과 에큐메니칼 신학의 새로운 관계설정과 분열의 극복이다. 이 성명의 진정성은 바로 이 문제를 피해가지 않고 복음적 에큐메니즘이라는 통전적 융합을 시도한데 있다.

1910년 에든버러 세계선교대회는 현대 에큐메니칼 운동의 출발이었다. 에든버러대회는 서구에서 이미 복음화의 과제가 달성됐다고 봤다. 그러나 1928년 예루살렘 세계선교대회에서는 새로운 질적인 선교개념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제시됐다. 예루살렘 이래로 에반젤리칼과 에큐메니칼이라는 분열의 토대가 됐다. 1952년 독일 빌링겐에서 열린 제5차 세계선교대회에는 새로운 선교개념이 출현했다. 선교가 우선적으로 하나님 자신의 활동에 의존된다는 것을 재발견했다. 빌링겐 대회로부터 발전된 하나님의 선교신학은 현대 선교신학 역사에 있어 가장 창조적인 개념이었다.

한편 한국적 상황에서는 하나님의 선교에 대한 여러 오해가 있었다. 첫재, 하나님의 선교가 '사회복음'과 동일한 개념으로 이해됐는데 하나님의 선교의 신학적 차원보다는 윤리적 측면에 집중한데 그 원인이 있다. 둘째, 하나님의 선교는 교회의 선교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잘못 알려져 왔다. 이러한 오해는 한국의 진보적 기독교계가 군사독재 정권에 저항하며 민주화와 인권운동, 산업선교를 전개할 때 그 선교 신학적 뒷받침이 필요했고 하나님의 선교 개념에서 그 근거를 찾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한국신학계는 하나님의 선교를 하나의 정치적 선교신학으로 오해했다.

이러한 신학적 무지의 광풍에 저항하고 화해와 통합의 신학을 추구한 것이 바로 1985년의 '복음적 에큐메니즘'의 구상과 시도라고 평가할 수 있다. 이 성명이야말로 당시 세계기독교 어느 곳에서도 들을 수 없었던 예언자적이며 독창적인 제안이었다. 서구 기독교가 제3세계에 짐지운 분열을 우리의 신학적 작업을 통해 극복하고 세계교회의 발전을 위해 기여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였음에도 불구하고 성명으로 그치고 장기적이고 공동의 연구 프로젝트로 발전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복음과 문화 그리고 대화

1985년 성명에서 가장 신학적 작업이 더딘 부분이 "우리의 신학은 대화적이다"라는 선언이라고 생각한다. 대화의 주제와 대화의 상대, 대화의 목적, 대화의 태도에 대한 분명한 진술을 발견할 수 없다. 20세기 마지막 세계선교대회는 1966년 브라질의 살바도르 드 바히아에서 개최됐고 복음과 문화의 관계성에 대해 집중적으로 논의했다. 기독교의 본질적인 특징 중의 하나는 문화에 대한 개방성이다. 복음이 서로 다른 상황들 속에 뿌리를 내리려면 선교지 사람들과 그들의 문화적이고 상징적인 삶의 세계들을 존중해야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본다면 우리가 우리보다 먼저 한민족의 삶과 문화에 뿌리내린 종교와 철학, 세계관과 이데올로기들과 대화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장신의 기독교윤리가 사회윤리와 봉사를 포함하고 '기독교와 문화'로 발전한 것은 매우 유의미한 진보이다.

많은 복음주의자들은 WCC가 그 선교 정책에 있어 다른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는 종교다원주의를 수용하고 있다고 오해했다. 종교 간의 대화를 모두 종교다원주의로만 이해하는 것은 매우 편협한 이해이다. 우리가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과 대화적 관계를 맺지 않으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할 수 있는가? 서구의 종교 신학자들의 해석학적 가설인 배타주의, 보편주의, 다원주의의 틀에 포로가 돼 선택을 강요당하는 현재의 종교 간의 대화의 지나친 관념론적 틀을 박차고 나와 우리가 필요하고 주도하는 대화의 신학을 만들어가야 한다. 우리가 지금껏 강조해 왔던 장신신학의 '대화'의 영역이 문화, 이데올로기, 세계관, 타종교, 세속사회에 열려 있다면 필연적으로 현대과학의 통찰력을 수용하고 열린 대화를 진행해야 한다.



세계 속의 변혁적 제자도

지금까지 에큐메니칼 관점에서 1985년 이래로 발전해온 장신신학을 성찰하면서 '개혁신학의 재해석', '주변부로부터의 선교', '상황적 신학', '융합과 대화의 신학과 방법론'을 '중심에 서는 신학'의 과제로 제시했다. 이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변혁적 제자도'로 표현할 수 있다. 변혁적 제자도는 그리스도의 길을 따라 우리의 고백의 현장을 주변부로부터 재설정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삼위를 하나의 공동체로 묶고 성자를 파송하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코이노니아적 관계안의 사랑의 힘으로 이 시대에 만연한 분열과 공포와 욕망의 영들을 이겨내고 새로운 대안과 공동체를 건설하는 복음의 능력을 회복하는 것이 변혁적 제자도있다. 이를 위해 장신 공동체는 변혁을 위한 희망의 증인이 돼야 한다. 절망과 비탄과 혼동 속에서도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 가운데 이미 도래한 하나님 나라를 제자도와 공동체를 통해 이 땅 위에서 하나님 나라를 미리 맛보는 신학과 역사를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그 일치의 신학과 공동의 증언을 세계 속에 나누고 세계교회를 섬기는 것이 장신신학의 세계화의 사명이다.


정리 / 김성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