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마음을 아니?

네 마음을 아니?

[ 교육칼럼 ] 마음근력키우기<6>

하혜숙 교수
2018년 06월 12일(화) 10:00
학생 여러분, 이번 기말시험에서 여러분의 성공과 실패를 예언할 수 있다면 어떠하겠는가? 여러분이 아래의 질문에 답을 해준다면 이번 기말고사의 성패를 미리 알 수 있다. 먼저, 지난 중간시험을 잘 봤다고 생각하는 학생들에게 묻겠다. "지난 중간고사를 잘 봤다면 무엇 때문에 잘 봤다고 생각하는가?" 다음으로 중간시험을 망친 학생들에게 묻겠다. "시험을 못 봤다면 어째서 그랬다고 생각하고 있는가?"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일들을 겪는다. 짜릿한 성공경험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쓴맛의 실패를 경험하기도 한다. 인생을 총체적으로 볼 때, 처음부터 어떤 사람은 성공만 경험하고 또 다른 사람은 실패만 경험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면 왜 어떤 사람은 계속 성공하고 또 다른 사람은 실패를 거듭하는 것일까?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어떤 일을 겪을 때, 그것의 원인을 찾으려고 하는 인지적 습성이 있다. 그것이 성공이든 실패든 무엇 때문에 그렇게 되었는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고 나름대로의 결론을 내리려고 하는데 이러한 것을 '귀인(attribution)'이라고 한다. 귀인이론을 발전시킨 대표적인 교육 심리학자 중의 한 사람인 와이너(Weiner)는 귀인의 통제소재(locus of control), 안정성(stability), 통제가능성(controllability) 등의 세 가지 차원으로 귀인을 설명했다.

첫 번째, 여기서 말하는 통제소재 차원은 어떤 일의 원인을 내부 특성과 관련된 것인가, 아니면 외부적 원인 때문인가를 구분하는 것이다. 성공이나 실패를 내적요인의 탓으로 돌리면 성공할 경우에는 자부심을 느끼게 되고 실패할 때는 수치감을 느끼게 된다. 또한 성공이나 실패를 외적 요인의 탓으로 돌리면 성공은 감사의 결과를 수반하지만 실패는 분노의 결과를 수반하게 된다.

두 번째, 안정성 차원은 원인이 시간이나 상황이 바뀌어도 쉽게 변하지 않는 안정적 요인인가 혹은 수시로 변할 수 있는 불안정한 요인인가로 분류하는 것으로 주로 미래에 대한 기대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따라서 성공이나 실패를 '능력'때문이라고 보았다면 안정적 요인에 귀인한 것이고, '노력' 때문이라고 보았다면 불안정한 요인에 귀인 한 것이다.

세 번째, 통제 가능성에 따른 구분은 원인이 자신의 의지에 의해 통제 가능한 요인인가 혹은 불가능한 요인인가와 관련된다. 예를 들어, '노력'은 자신의 의지에 따라 조절할 수 있기 때문에 통제 가능한 요인이라고 볼 수 있지만, '능력'은 자신이 조절하기가 비교적 어렵기 때문에 통제 불가능한 요인이다. 이러한 통제 가능성 차원은 자신감과 미래에 대한 기대를 좌우한다. 이처럼 와이너 귀인모델의 기본적인 입장에 따르면, 학생들은 과제에서의 성공과 실패를 세 가지 차원의 서로 다른 원인에 귀인하게 되는데 그 귀인양식에 따른 각기 다른 정서적 반응이 수반되고 미래의 성공과 실패에 대한 기대를 갖게 되어 학습행동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처럼 사람들이 자신이 겪은 일의 원인을 찾을 때 일정한 경향성을 가진다. 어떤 이는 성공이나 실패에 대해 자신의 능력(내적, 안정, 통제 불가능)탓을 하고 또 다른 이는 자신의 노력(내적, 불안정, 통제 가능)탓을 한다. 만약, 중간고사를 잘 치른 학생이 그 이유를 자신이 열심히 공부했기 때문이라고 한다면 이 학생은 기말 고사에도 열심히 노력할 것이고 기말고사 역시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중간고사의 결과에 대해 자신이 머리가 좋아서, 또는 운이 좋아서(외적, 불안정, 통제 불가능) 시험을 잘 치렀다고 생각한다면 이 학생은 다음 시험을 위해 노력하지 않을 것이고 아마도 다음 시험을 망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이 원리는 실패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삶에서 경험하는 성공이나 실패에 대해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가?

자신이 '스스로에게 하고 있는 말'을 바꾸는 것으로 우리는 실패를 벗어나 성공으로 갈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향해 하는 말은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적어도 우리 스스로에게 어떤 말을 해 줄 것인지는 선택할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세상 사람들과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가 이미 주어졌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도래했다. 우리는 세상의 법칙에 지배를 받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자들이다. 우리의 미래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얼마든지 변화될 수 있다.

하혜숙 교수 /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청소년교육과
카드 뉴스
많이 보는 기사
오늘의 가정예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