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뿌리는 희망의 씨앗

다시 뿌리는 희망의 씨앗

[ 논설위원칼럼 ]

정명철 목사
2018년 06월 11일(월) 10:00
4.27과 5.26 판문점에서의 남북정상회담이 있었고 앞으로 북미정상회담이 예정되어 있다.

군사분계선을 넘어온 김 위원장이 문 대통령의 손을 잡고 되넘어가는 장면을 보며 모든 절차와 형식을 생략하고 두 정상이 손을 잡고 웃음을 짓는 모습에서 정말 아무 것도 아닌데 너무 긴 시간이 지나갔다는 아픔이 서려왔다. 두 정상의 판문점 '도보다리산책' 장면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친근해 보여 세계를 놀라게 했다. 겉보기와 다르게 심각하고 비상한 대화였으리라는 추측에도, 그러면 어떠하리, 보는 국민의 마음을 적셨을 뿐 아니라, 회담결과도 긍정적이었으니 말이다. 곧 이어질 북미정상회담에 이어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등을 생각하며 꿈을 꾸어본다. 이미 정치이념이 주도하던 세계에서 또 다른 경제이념이 주도하는 세계로 바뀌어진지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남과 북의 분쟁과 증오의 프레임 속에 갇혀 살아왔다. 북한이 핵무기로 남한은 물론, 미국까지 불바다를 만들겠다던 기세가 아직도 생생하기에 북한은 절대로 핵을 포기하지 않을것이라는 두려움과 경제논리에 따라 북한도 변화될 수밖에 없다는 인식의 차이가 있다

이러한 인식의 문제를 차치하고라도 분단 이후 70년의 역사는 남과 북에게 고통의 역사요,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을 방해하는 마치 이스라엘 민족앞에 넘실거리고 있던 홍해였다.

이런 역사적 현상에서 또 깨우치는 건, 세상에서 만나지 못할 상대는 없다는 것이다. 꼭 정치가 아니어도 세상에는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원수도 없다는 것이 진리이다.

그런데 정작 우리의 시선을 교회로 돌리면 갑자기 답답해진다. 함께 부름 받은 하나님의 백성, 예수를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는 하나의 성도, 하나의 교회라는 공간에서 형제자매로 자리매김하였지만, 때때로 서로 등 돌리며, 원수 대하듯 미워하는 상대가 있다. 이 배경에는 또 하나의 내가 주도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권력욕이 있다. 그러면 다시 생각해보자. 그리스도인에게 '원수'란 무엇인가? 그건 교회 밖에서 교회 안으로 침투하는 마귀의 세력이 아닌가? 성경 요한계시록에 마귀를 일컬어 '옛 뱀'이라 명했다. 아담과 하와를 에덴동산에서 속이고 물 먹였던 사탄,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고 하나님의 나라를 파괴하려던 그 마귀가 우리의 진짜 원수 아닌가? 그런데 우리는 같은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는 그리스도의 일꾼이지만 작은 생각의 차이나 주장의 다름을 놓고 서로를 마귀 보듯 한다. 비난하고 미워하고 원수처럼 대한다. 더러 목사와 교인, 교인과 교인 사이의 작은 다름과 대립은 때론 교회를 갈라지게도 하는 진짜 원수관계로 발전한다.

한국교회사에 등장하는 교단분열의 과정은 더욱 심하다. 교권다툼으로 시작하여 성경해석과 신학적 차이를 빚어내더니 급기야 험담에 이어 오물까지 끼얹고, 상대방 교단은 천당에 못 간다고 욕하지 않았나? 그 사이에 얼마나 달라졌을까? 하나 되자고 만나서 예배드리고 회의하기를 수도 없이 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늘어난 고무줄 원위치로 돌아가듯, 그렇게 수십 년이 지났다.

목사와 장로, 성도와 성도가 조건 없이 만나 손잡고 함박웃음 짓는 게 '남과 북'보다 더 힘든 일인가? 무슨 회담이나 정치적 밀담도 아니고, 예배자로 만나면서도 그게 안 되는 우리는 도대체 누구인가? 하나님의 택함 받은 거룩한 백성?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 오늘의 교회 안에 제사장으로 세움 받은 우리들에게 그게 그토록 불가능하게 여겨지는 것일까?

이 글을 쓰는 나도 이 시대의 목사로 살아가는 게 어렵고 힘들기만 하다. 그래도 남과 북의 드라마틱한 역사 앞에서 오늘의 교회와 성도들은 이 땅에 거룩한 희망의 씨앗을 또 뿌려야겠다.



정명철 목사/도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