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삼자의 공동과제 : 편견과 차별에 맞서 싸우는 일

입양삼자의 공동과제 : 편견과 차별에 맞서 싸우는 일

[ 현장칼럼 ]

김도현 목사
2018년 06월 11일(월) 08:55
편견과 차별에 맞서 싸우는 일

입양삼자의 공동과제



입양아동(입양인)과 친생부모, 입양부모가 어우러진 입양의 삶의 여정을 걷는 동안, 이 입양삼자는 각각의 삶의 자리에서 '편견과 차별'이라는 괴물을 만난다. 편견과 차별은 '배제와 박탈'의 서식지이다. 그 사회의 미성숙과 패악성을 드러내는 지표이다.

두어 달 전, 뿌리의집에 머물렀던 프랑스 입양인 L양의 이야기다. 몇 해 전 한국의 친생가족을 만났는데, 한국의 아버지가 위독하다고 해서 한국을 다시 찾았다. 아버지는 대구의 한 병원에 누워계셨고, L양은 대구로 내려가 병실에서 밤을 새우며 병간을 하고 올라오는 날도 있었다. 직장 사정도 있고 해서 막 프랑스로 떠나려는 참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프랑스로 가는 대신, 대구로 가는 기차표를 끊었다. 길을 막 나서려는 순간, 언니가 전화를 했다. 장례식에 참석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조문객들 대부분이 친척들과 동네 사람들인데, 상복을 입고 조문객을 맞는 낯선 사람 하나가 서 있는 것을 보면, 저 여성은 누구냐고 물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고인이 마지막 가는 길에 불명예가 된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이틀 동안 자신에게 몸을 나눠준 아버지의 마지막 가는 길에 함께 할 수 없는 비참과 애도에 젖었다.

아버지의 장례가 있던 그날, 그녀는 애도의 자리로부터 배제당한 쓰라린 마음과 스스로 바꿀 수 없는 아시아인의 몸을 프랑스행 비행기에 실었다. 자신의 존재가 불명예로 간주된다는 사실과 자신이 지닌 아시아인의 몸이 백인 정체성에 손상이 된다고 여겨져 온 일이 묘하게 겹쳐지는 것을 느끼면서….

해외입양인만 이런 편견과 차별, 배제와 박탈을 겪는 것은 아니다. 국내입양아동도 다르지 않다.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거나 수군대거나 손가락질하는 이웃들로 인해 아픔과 혼란을 겪어야 한다. 친생부모(종종 미혼부모)는 입양 보낸 일을 비밀로 끌어안고 홀로 내면의 근원적 분열을 야기하는 트라우마에 시달려야 한다. 입양부모들은 아이가 차별받는 것을 견디다 못해 원치 않는 이사를 하는 경우도 있고, 어떤 입양부모들은 입양이 자신의 연약함의 증거라도 될까봐 전전긍긍한다.

그러나 오늘날 해외입양인들은 인종주의적 편견과 소소한 일상의 차별(micro discrimina- tions)들에 침묵하지 않고 맞서 싸운다. 국내입양아동들은 편견과 차별에 대항하여, 가족다양성에 대한 믿음을 가꾼다. 입양부모들은 공개입양운동과 반차별 교육활동을 벌인다. 친생부모들은 산업적 성격을 지닌 해외입양제도에 깃든 편견과 차별이 제도의 층위에서 어떻게 작동했는지를 알아채고 비판한다. 입양삼자가 겪는 차별의 뿌리는 하나다. 차별은 이웃 인간을 낮추어 보는 비인간적이고 미성숙한 삶의 태도로부터 흘러나온다. 미혼모를 차별하는 바로 그 사람이 입양아동도 차별한다. 편견과 차별에 맞서 싸우는 일은 입양삼자의 공동의 과제이다. 편견과 차별은 입양삼자가 손을 맞잡고 해체에 나서야 하는 괴물이다. 바로 여기가 입양에 가장 능동적으로 참여한 입양부모의 연대정신과 성숙한 리더십이 꽃필 자리다.

복음은 우리에게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빌 2:3하)'고 권하고 있다. 인종과 피부색이 다르다고, 결혼하지 않은 여성에게서 출생했다고, 혹은 입양되었다는 이유로 누군가에게 차별적 태도를 지닌다면, 이는 복음에 반하는 일이다. 복음에는 편견과 차별, 배제와 박탈의 횡횡하는 미성숙 혹은 야만으로부터 그 사회를 구원해내는 권능이 있다.



김도현 목사/뿌리의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