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

'진실'

[ 이슈앤이슈 ]

박만서 기자 mspark@pckworld.com
2018년 06월 05일(화) 10:00
지난 5월에 5ㆍ18 광주민중항쟁(光州民衆抗爭)이 발생한지 38주년을 보냈다. 1980년 5월 18일부터 5월 27일까지 신군부 세력에 저항하며 일어난 민주화 운동이기에 5ㆍ18광주민주화운동(光州民主化運動)이라고 부른다. 광주시민과 전라남도민이 중심이 되어 일어난 이 민주화운동은 서울의 봄이라고 불릴 정도로 새로운 시대를 기대했던 당시, 권력에 맞서서 싸운 민주화 운동으로 기록되었다.

이 광주민주화운동은 열흘간에 진행되었지만 철저하게 통제되면서 광주를 벗어난 다른 지역에서는 쉽게 알 수가 없었다. 그저 소문에 소문으로 전해질 뿐이었다.

이러한 가운데도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에서는 5월 18일 광주민주화운동을 전후해서 민주화와 관련된 성명서를 발표하는 등 민주화를 위한 열망을 높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한국교회에서는 광주의 상황에 보다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며 광주기독교비상구호대책위원회를 꾸려 사망자와 그 부상자 구속자를 돕기 위한 초교파적 활동을 광주에서 이어갔다.

이렇듯 광주 민주화운동에 있어서 기독교의 역할은 중요했으며, 이후에도 광주에서 벌어진 일들에 대해 증언하는 일에 교회 관계자들이 앞장 섰던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주의 민주화 열망은 오래가지 못했다. 새로운 군사정권은 더이상 광주의 민주화 목소리를 기억조차 못하게 했으며, 사실 마져도 왜곡한 채 역사 속에 묻어 버리려 했다.

다행이도 늦게남아 진실을 확인하는 활동들이 하나둘 진행되고 있다. 당시 진압과정에서 있었던 과혹한 행위들이 들어나고, 묻혀져 있던 진실들이 밝혀지고 있는 것이다.

당시 한국교회의 모습을 다시 생각해 보자. 민주화를 열망했던 예장 총회를 비롯해 한국교회의 당시 활약상도 크게 부강되지 못했다. "왜 일까?"라는 질문에 대해, 1980년 8월에 열린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위한 조찬 기도회'를 떠올리게 된다. 국보위 위원장을 위한 조찬기도회로 불리는 이 기도회에는 당시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지도자들이 대거 참여했으며, 기도를 통해 "이 어려운 시기에 막중한 직책을 맡아서 …"라고 당시 최고 권력을 장악한 국보위 위원장을 위해 기도했다. 당시 기도회에 참석했던 명단도 이미 다 공개됐다.

교회 지도자로 지칭된 이들은 이후에서 여전히 지도자의 자리를 유지할 수 있었으며,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또한 이들은 한국 기독교를 대표하는 교회에서 목회를 하거나, 선교단체를 운영하다가 은퇴했다. 당시를 회상하거나 행동에 대해 입장을 발표한 일도 기억되지 않는다. 기도회를 주관하고 참여했던 교회 지도자들과 맥을 함께하며, 여전한 한국교회의 지도자로 자리하고 있는 그룹은 아이러니 하게도 '정교분리'를 말한다.

5ㆍ18광주민주화운동에서 교회의 역할은 중요했다. 그러나 이러한 교회의 역할은 민주화의 소망을 짓밟고 출범한 정권를 비호했던 교회 지도자들에게 묻혀 버렸다. 전자는 광주민주화운동과 함께 역사의 깊숙한 곳에 묻혀 있었고, 후자는 지금도 한국 교회를 대표하는 중요한 위치에 올라 있다.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실이 밝혀지듯이, 한국교회의 참 모습도 밝혀져야 하지 않을까.

박만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