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비주류 주민자치위원이다

나는 비주류 주민자치위원이다

[ 목양칼럼 ]

이수부 목사
2018년 06월 08일(금) 13:35
새해 들어서면서 우리교회는 소위 '세상 속으로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마을목회를 꾀하고 있다. 필자는 그 일환으로 마을과 소통하기 위해 우리 동의 주민자치위원을 지원하여 2월부터 활동하고 있다. 필자는 목사이지만 위원회에 갈 때마다 목사로서의 냄새를 가능한 드러내지 않으려고 애쓴다. 회의에 참석할 때면 매던 넥타이도 풀고, 머리 맵시도 내지 않는다. 회의 시작 시간보다 일찍 가서 자리를 잡고 다른 위원에게 먼저 가서 이름을 부르며 악수를 청한다. 세인들이 목사라고 하면 어딘가 모르게 고루하고 권위적이며 꼰대(?)같다는 선입견을 갖고 있을 수도 있다. 목사들이 평소 세인들과 어울리지 않아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사람, 세상물정 모르는 갑갑한 인물로 비칠지도 모를 일이다. 이는 필자만의 자격지심일까?

지난 4월 세 번째 목요일 오후에 정기회의가 시작되었다. 회의가 시작되자 말자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명품마을 만들기' 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임원 내부에서 알력이 생겼던 모양이다. 사회를 보던 간사와 두 임원들이 위원장의 소통에 불만의 표하며 임원을 사퇴하겠단다. 그 말을 듣고 있던 위원장도 얼굴이 불거졌다. 얼마 동안 그들 간에 설왕설래가 있었다. 이분들은 모두 여성이다. 이를 지켜보던 위원들 중에 어떤 이는 "열심히들 하시는데 우리가 제대로 도와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라는 자아비판과 함께 그들을 달랜다. 또, "우리가 잘 도와드릴 터이니 함께 열심히 해봅시다"라며 몇몇 위원들이 거들었다. 그렇지만 좀처럼 싸늘한 분위기가 가라앉지 않았다. 동장도 얼굴에 난감한 빛을 감추지 못했다. 결국 밥을 먹으며 의논하자고 하여 사태를 임시로 수습하고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우리의 저녁식사자리는 평소처럼 두 부류로 나눠졌다. 술을 마시는 주류(酒流)파와 마시지 않는 비주류(非酒流)파다. 주류파에서는 술을 한잔씩 들이키면서 음성이 올라가고 흥이 돋는다. 회의시간에 언쟁했던 이들은 시무룩해져 있다. 몇몇 위원들이 술을 따라주며 달래려고 애를 쓴다. 쉬 감정들이 잘 풀려지지 않는 모양이다. 그것을 보고 있던 필자가 조정에 나섰다. '앞장서서 일한다는 것이 보통일이 아닙니다. 함께 맞추는 것도 어렵고요…. 위원장님도 수고하셨고 임원 모두 애썼습니다.' 제가 여러분의 쓸쓸한 마음들을 노래 한곡으로 위로해드리겠습니다. 말이 끝나자 위원들이 의아해하면서도 박수가 쏟아졌다. 도대체 목사인 비주류 위원이 무슨 노래를 할까 호기심으로 바라보았다. 필자의 노래가 시작되었다. 독일 성탄 캐롤 중 하나. <소나무야, O Tannenbaum>. "소나무야.....언제나 푸른 네 빛, 쓸쓸한 가을날에도, 눈 오는 겨울날에도...." 주흥(酒興)이 아니라 주흥(主興)으로! 모인 이들이 박수치며 호응한다. 필자는 노래를 끝내고 한마디를 덧붙였다. "오늘은 싸우지 말라고 노래 한곡 불러드렸는데, 요 다음에 싸우지 않으면 또 한곡 불러드리겠습니다." 또 박수가 쏟아졌다. 간사가 식사 후에 필자에게 "위원님 좋지 못한 꼴 보여드려 죄송합니다"라고 했다. 필자는 괜찮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며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한 달 뒤 회의가 모였는데 그날의 갈등상황이 잘 풀린 모양이다. 회의 전에 남성 위원 한분이 필자를 반색하며 문제의 그 노래 첫 마디를 불렀다. '소나무야…' 그날 이후 어떤 이는 "위원님 멋있었어요, 그날 노래 때문에 분위기가 좋아졌습니다." 또 "목사님이 위원으로 오셔서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날 역할을 제대로 해주셔서 너무 감사했어요" 라며 조정역할을 기대하겠단다. 필자는 자치위원회 활동을 통해 목사로서의 물은 빼고 위원으로서 그들과 소통하며 마을을 섬기는 길을 닦아가고자 한다. 나는 주류들 속의 별종의 비주류다.



이수부 목사/안산평강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