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상처에서 벗어나기

마음의 상처에서 벗어나기

[ 교육칼럼 ] 마음근력키우기<5>

하혜숙 교수
2018년 06월 05일(화) 09:52
우리는 살아가면서 사소한 일로 인해 '상처'를 받는다. 만일 지금 당신이 이 글을 전혀 읽지도 않은 채로 신문을 덮고 옆으로 치워놓았는데, 마침 곁에 있다가 그걸 보았다면 나는 아마 마음이 상할 수도 있다. 내 글이 읽을 만한 가치가 없어 보여서 읽지 않았나 보다 생각하면서 상심하고 도대체 왜 읽지 않았을까 생각하느라 하루 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수도 있다. 당신은 나의 글에 관심이 없었을 수도 있고 당신은 그저 이러한 제목의 글을 아주 싫어하는지도 모른다.

만약 내가 쉽게 상심하는 사람이라면, 당신의 이러한 거부감을 나 자신에 대한, 내 존재에 대한 거부감으로까지 자동적으로 연결시킬 위험이 있다. 그렇게 될 때, 나는 자존감에 상처를 입고 너무나 마음이 상한 나머지 내 글을 읽지 않는 당신에게서 이유를 찾아보거나 물어 보려는 생각은 아예 하지도 못할 것이다. 사실은, 이유가 당신에게 있을 수 있는 데도 말이다. 당신이 상담 분야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일 수도 있고, 신문의 칼럼 같은 글은 전혀 읽지 않는 사람일 수도 있고, 마음의 상처라는 제목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지도 모르고 주제를 생각하는 것조차도 당신에게는 고통스러운 것이어서 읽어볼 엄두를 내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마음이 상한 나는 그런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한 채 나에게서 원인을 찾기 시작하고 어쩌면 마음을 다친 분노 때문에 당신을 마구 깎아 내릴지도 모른다. 내 글을 읽지 않은 대가로 당신을 무식한 사람으로 단정해 버리거나 또 어쩌면, 복수심에서 집에 가는 길에 코앞에서 지하철을 놓쳐버리라고 악담을 할지도 모른다.

이 모든 일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다. 지금 당신은 이 글을 읽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설정한 상황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마음상함'이라는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베르벨 바르데츠키(Barbel Wardetzki)라는 상담심리학자가 '따귀맞은 영혼'이라는 책에서 설정한 방식을 그대로 적용해 본 것이다. 그녀의 설명에 의하면, '마음상함'이란 심리적으로 상처를 입는 것을 이르는 것인데, 이러한 경험은 열등감이나 개인적인 모욕감을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상처는 우리의 자존감을 직접 건드리기 때문에, 인정받지 못하고, 받아들여지지 않고 이해받지 못한다고 느끼게 만든다. 이것은 마치 '마음에 따귀를 맞는 것'처럼 우리 마음에 깊은 아픔을 준다.

스마트폰 메신저의 나의 글을 오랫동안 읽지 않거나 읽고도 한동안 답이 없는 사소한 것에서부터 충격적인 거절에 이르기까지 삶을 살아갈 때 마음 상함을 일으키는 원인은 다양하다. 나를 향해 공격한다고 느껴지는 이러한 일들은 삶의 여정에서 수도 없이 다가온다. 물론 누군가가 우리 마음을 상하게 하려고 하는 의도적인 것들도 분명 있다. 하지만 그러한 경우에 조차도 우리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있다. 상대방이 우리를 깎아 내리고 마음을 다치게 하도록 가만히 있을 것인가, 아니면 자신을 지켜낼 것인가 하는 것은 내가 결정할 수 있다.

예를 들자면, 앞의 예에서 나의 글을 읽도록 모든 사람을 설득할 수는 없지만 이 칼럼을 읽는 다른 독자들을 생각하며 힘을 낸다면 나의 시각은 바뀔 것이다. 시각을 바꾸게 되면, 똑같은 사건이 지금까지와는 달리 새로운 의미를 가지게 된다. 마음을 쉽게 상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일을 겪게 되면 모욕감을 느끼면서 지레 물러나 버린다. 현실을 마주하고 실패를 직면하고 사태를 건설적으로 이끌어 가려고 노력하기 보다는 차라리 혼자 괴로워하는 쪽을 택한다. '마음상함'은 우리 삶의 일부이기 때문에 완벽하게 차단할 수는 없지만, 똑같이 마음을 다치더라도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대처하고 덜 파괴적인 방법으로 대응해 나갈 수 있다.

어쩌면 행복한 삶이란,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수많은 일들과 인간관계가 우리의 영혼을 상하게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녀로서의 정체성, 그 진리의 반석 위에 굳게 서서, 오히려 사건과 상황을 보는 나 자신의 시각을 변화시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의미를 발견해 내는 것이 아닐까. 세상을 나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 도래한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하혜숙 교수 /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청소년교육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