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폭력 실태, 몇번의 조사만으론 확인 불가

가정폭력 실태, 몇번의 조사만으론 확인 불가

[ 여전도회 ] 여전도회 연재 '널다리골'

신동하 기자 sdh@pckworld.com
2018년 06월 07일(목) 10:00
3. 가정폭력

1) 입법현황

가정폭력에 대해서는 여성발전기본법이 제25조에서 그 예방 및 피해자보호에 대해 규정하고 있고, 가정폭력을 규율하는 법으로 '가정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과 '가정폭력방지및피해자보호등에관한법률'이 1997.12.13. 제정되고 1998.7.1. 시행되었다. 그러나 이 법의 시행에도 불구하고 가정폭력의 발생은 줄어들지 않고 있으며, 가정보호라는 입법목적으로 도입한 경미한 제재수단인 보호처분이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지속적으로 뒤따르고 있다.

처벌과 피해자보호로 이원화된 두 개의 특별법은 전자는 법무부, 후자는 여성가족부 소관으로 되어있고, 제정 이후 거의 매년 개정을 했을 정도로 수정 보완을 해왔다. 또한 변화하는 가족, 사회 환경 등을 반영하여 피해자 지원 체계가 2013년 기준으로 가정폭력상담소 228개소, 보호시설 66개소, 주거지원 156호 등으로 확대되어 왔다. 피해자지원 인프라의 확대와 더불어 잦은 법개정을 통한 제도적 정비는 가정폭력방지와 피해자보호 대책에 그만큼 고심을 기울여 왔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현실적으로 가정폭력이 줄고 점차 상황이 개선되어 왔다고 평가되고 있지 않다. 가정폭력에 대한 미온적 대처에 대해서는 사회적 질타가 계속되고 있고, 급기야 가정폭력은 2013년 대통령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 '4대 사회악'의 하나로 다루어질 정도로 심각성이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2) 가정폭력에 대한 제재의 문제점

가정폭력특례법은 가정폭력에 대한 기존의 사법처리 방식인 형사처벌 외에 보호처분을 부과할 수 있도록 이원적 방식을 취하지만, 형사처벌이든, 보호처분이든 모두 형사적 제재이며, 이것이 가정폭력의 주된 대응책이 되어 있다. 가정폭력관련법이 형사특별법으로 자리 잡게 된 데에는 가정폭력을 범죄로 규정하여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함으로써 가정폭력을 방지하고 피해자를 효과적으로 구제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입법자의 기대가 있었을 것이다.

가정폭력에 대한 대응에는 가정폭력특례법의 형사제재가 중심적인 기능을 하므로, 가정폭력과 관련 논의도 대체로 이 법에 집중되어 형사법적 관점에서 이루어졌다. 앞에서 본 비판과 개선방안도 대체로 형사제재와 처벌에 모아지고 있었다. 물론 제재의 확보를 위해 민사적 방법이 동원되지만 그것은 부수적인 것으로 다루어지고, 가정폭력 대응은 형사법적이지 않으면 안 될 것이라는 정도의 믿음까지 생겨 더 강력해지는 주장을 볼 수 있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의 2011년 상담사례에 의하면 가정폭력에서 위험한 흉기를 사용한 정도가 그 전 해에 비해 두 배정도가 되었다. 그리고 여성가족부의 가정폭력실태조사에 의하면 부부폭력이 2010년 53.8%로 2007년 40.3%보다 13.5% 증가를 보였다. 가정폭력관련 정책에 대한 인식으로는 우리나라 기혼 남녀의 85.8%가 가정폭력방지정책의 실효성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보였다. 폭력을 당하고도 외부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 경우가 62.7%나 되었다. 경찰에 신고한 경우에도 경찰이 가정폭력을 집안일로 치부하고 도움을 주지 않았다는 답을 한 사람이 68.2%나 되었다. 여성가족부, 2010년 가정폭력실태조사 : 가정폭력정책에 대한 인식은 '가정폭력을 감소시키지 못함'이 40.4%, '잘 모르겠음'이 45.4%, '가정폭력을 감소시키고 있음'이 14.2%이다. 경찰신고에 대한 대응내용으로 '출동은 하였으나 집안일이니 서로 잘 해결하라며 돌아감' 50.5%, '집안일이니 둘이서 잘 해결하라며 출동하지 않음' 17.7%, '즉시 출동하여 모든 상황을 기록하고 접수함' 14%, '보호시설이나 병원으로 인도함' 2.4%의 순이었다.

간헐적인 몇 번의 조사만으로 실체를 파악하기에는 한계가 있지만, 가정폭력의 참담한 결말들에 대한 연이은 보도는 결코 사태가 나아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한다. 2012년 4월초 일어난 경기도 수원 살인사건의 경우 가정폭력을 '집안 문제'로 보거나 '폭력이 아닌 부부싸움' 정도로 가볍게 여기는 인식 때문에, 당시 112센터 근무경찰관은 공포를 호소하는 피해자의 목소리를 듣고서도 "부부싸움인 것 같은데..."라며 소극적으로 대처하여 신고자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비난을 받았고, 주민들도 마찬가지로 당시 범인이 피해자를 끌고 집 안에 들어가는 장면을 목격 하고도, 밤새 폭행하는 소리를 들었어도 "부부싸움인 줄 알았다"며 경찰에 즉시 신고하지 않았다고 한다.

가정폭력관련법의 시행 역사를 뒤돌아보면 가정폭력에 대한 형사법 중심의 대응은 한계를 보이고 있다고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 가정폭력을 범죄로 규정하고 대응하는 과정에서 피해자들의 상황은 가해자의 체포, 기소 및 처벌에 의하여 개선될 수도 있지만 더 나빠질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가정폭력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경찰이 개입하면 폭력행위 등을 제지하는 것을 통하여 피해자를 즉각적으로 보호할 수 있지만, 경찰의 체포와 검찰에의 송치 등 형사절차의 진행은 피해자의 의사에 반할 수도 있다. 또 가해자의 입장에서 보면 형사절차가 진행됨에 따라 피해자에 대한 반감과 증오심만 키워 더 심각한 후속적 폭력을 자행할 가능성도 있다.

● 가정폭력특례법에 규정된 보호처분의 대부분도 재범의 위험성에 대한 지속적이고 효과적인 개입을 보장해 주지 못하고 있으며, 오히려 단순히 징역형 등에 의한 가정파탄을 회피하기 위한 경미한 형사제재 정도로 인식되고 있는 상황이다.

● 가정폭력에 대한 형사법적 개입의 한계는 가정폭력사건의 처리기간이 너무 길다는 데에도 있다. 법원의 실무 관행상 가정폭력사건 발생후 법원에서 심리기일에 들어가기까지에는 통상 5~6개월이 소요되기 때문에 가정보호사건으로 송치된 사건 중 상당한 수가 사건의 즉시성을 상실하여 법정에 출석한 가해자와 피해자가 이미 이혼을 하여 가족관계가 청산되었거나, 서로 화해하여 가정생활을 원만하게 영위하고 있는 등 보호처분이 불필요한 경우가 생긴다. 그런데 실제로 문제가 되는 것은 사건의 처리기간이 길어지면서 그 사이에 가정폭력이 지속적으로 진행된다는 점이다.

● 가정폭력에 대한 우리 사회의 미흡한 대처는 다문화가정에서 가정폭력을 증폭시키고 이주여성의 인권을 짓밟고 있다. 폭력남편에 의해 이주여성이 살해된 사건만 해도 최근 여러 건이나 되는 것은 매우 심각한 사태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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