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존재의 부끄러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부끄러움

[ 교육칼럼 ] 마음근력키우기<4>

하혜숙 교수
2018년 05월 29일(화) 15:19
교육 대학원 수업 중에 있었던 일이다. 교육대학원에 다니는 학생들은 낮에는 교사로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일과를 마치면 대학원 학생으로서 공부를 한다. 그날의 수업에 지각을 한 교사가 자신의 수업시간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이 교사는 중학교 수학교사인데, 수업시간에 자신이 칠판에 수식을 적고 있었다고 한다. 한참을 쓰고 있는데, 한 학생이 "저기요, 선생님. 거기 틀렸는데요"라고 큰 소리로 말했다는 것이다. 순간 이 교사는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면서 너무 당황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고 한다. 너무 창피해서 아무 생각도 나지 않고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어서 책을 덮고 황급히 교실을 빠져 나왔다고 한다. 자기가 왜 그렇게 교실을 나왔는지 어떻게 걸어왔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교무실에 와서 한참이 지난 뒤에 조금씩 정신이 들면서 너무 창피하다는 생각이 들다가, 또 잠시 후에는 자신을 지적한 그 녀석이 너무나 밉고 원망스럽고 화가 나더라는 것이다.

이 교사는 왜 이런 반응을 보인 것일까? 일반적으로 이 교사와 같은 행동을 '수치반응(shame response)'이라고 한다. 수치정체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무슨 잘못을 하거나 실수했을 때 그것에 대해 수치반응을 보인다. 수치반응과 구분되는 것을 '유죄반응(guilty response)'이라고 하는데, 실수나 잘못을 하게 되면 잘못한 특정행위에 제한하여 상대에 대해 미안한 마음으로 사과하고 적절한 피해보상을 해줌으로써 문제 상황을 해결하는 것이다. 그런데, 수치반응은 실수 행위를 자신의 존재 전체로 확장함으로써 자기함몰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이로 인해 결국 자신에게 모든 신경을 쓰느라 주변 상황이나 상대방을 공감할 심리적 여유를 가질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이러한 사람들은 실수를 하게 되면 감추거나 변명을 하게 된다. 때로는 추궁당할 때 자신이 잘못해놓고도 도리어 화를 내고 상대방을 공격하기도 한다. 이런 사람들은 절대로 실수하거나 실패해서는 안 된다는 완벽주의적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실상은 어느 한 부분은 허술해서 자신의 모습을 자기 스스로 보지 못한다. 그래서 사람들 앞에서 완벽한 체 해야 하므로 항상 긴장하면서 자신의 실수를 들키지 않으려고 가면을 쓰고 살게 된다.

사람들이 이러한 수치반응을 보이게 되는 이유는 수치 정체감 때문이다. 정체감은 자신을 스스로 규정하는 것인데, 수치정체감(shame identity)은 자기 자신에 대해 "나는 수치스럽다, 오점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이 수치정체감을 갖게 되는 것일까? 수치정체감의 원인은 학대(abuse)이다.

학대는 크게 두 가지 형태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먼저, 능동적(의도적) 학대는 언어, 정서, 신체에 의도적으로 고통을 가하는 것이다. 이 의도적 학대는 학대하는 사람이나 학대당하는 사람 모두 학대라는 것을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수동적(비의도적) 학대는 부모는 의도하지 않았는데 자녀들은 외상을 경험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생계문제로 아이들을 적절히 보살필 수 없어서 방치하게 되면, 부모의 의도와 상관없이 아이들은 깊은 상처를 받게 된다. 이러한 학대 환경 속에서 성장하게 될 때 수치정체감을 형성하게 된다. 그런데 이처럼 '수치 정체감'을 갖게 되면 다음 단계로 따라오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두려움(fear)'이다. 수치정체감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에 대해 오점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에겐 남들에게 말 못할 부끄러운 비밀이 있다. 나는 오점과 흠이 있는 사람이다." 등과 같은 자아상을 갖기 때문에 이러한 오점이 알려지면 사람들이 자신을 싫어할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고, 자신이 노출되는 것을 두려워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두려움은 '통제(control)의 문제'를 낳게 된다. "나는 나 자신의 진짜 모습을 숨겨야 한다. 나는 더욱 완벽해져야 한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의 부끄러운 진짜 모습을 숨기기 위해 감추고 통제하게 된다.

아이들은 정서적 자양분이 필요하다. 정서적 친밀감과 소속감을 느끼게 해줄 부모가 필요하다. 자신을 깊이 사랑하고 보호해주고 한계에는 함께 울어주고 무섭고 두려울 때 안정을 주고 보해해줄 수 있는 부모가 필요하다. 이처럼 아이들은 부모에게 의존적일 수밖에 없는데 여러 가지 이유로 기본적인 정서적 필요들이 제대로 공급되지 못할 때 아이들은 부모의 의도와 관계없이 큰 고통을 경험하게 된다.

육신의 부모의 사랑과 보살핌은 완벽하지 못했다할지라도 하나님 아버지는 좋으신 분이고 나를 사랑하시고 전지전능하고 믿을 만한 분이시다. 그렇기에 우리는 더 이상 자신의 경험과 과거의 기억들에 매여 고통 받지 않아도 된다. 이제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난 하나님 자녀로서의 새로운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이 진리이기 때문이다.

하혜숙 교수 /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청소년교육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