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8일~6월 2일

5월 28일~6월 2일

한국기독공보
2018년 05월 28일(월) 19:36
월-절망, 희망의 시작
본문 : 출 2:1~10
찬송 : 263장

하나님은 멸망할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아브라함 가문을 택해 구원사역을 펼치신다. 출애굽기에서는 한 가문을 넘어 이스라엘을 제사장 나라로 삼는다. 이스라엘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열망과 손길을 보여주셨다. 신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약에 예언된 것의 실체를 보게 된다.
 
우리는 복된 신약시대에 살고 있다. 최종적인 완성은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미루어져 있지만 우리는 신약시대에 살아 하나님의 구원의 내용과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풍성하게 알고 있다.
 
하나님은 모세의 출생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의 구원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인간은 모두 죄인으로 태어났고 땅에 속한 자였는데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셔서 하나님의 손길 속에 펼쳐지는 인생이 되었다. 우리가 구원받았다는 것은 인간 스스로 펼치는 인생에서 하나님의 손길 속에서 펼쳐지는 인생이 되었다는 것이다. 하나님과 내가 자리를 바꾼 것이다. 하나님을 인생의 왕좌에 모신 것이다.
 
모세의 출생 반전은 우리 인생에 큰 반향을 일으킨다. 인간의 뜻과 방법대로 되지 않았다고 하나님의 일하심이 하나도 손해가 되지 않았다는 것이 출애굽이 주는 성경적 시각이다. 기억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은 온 천하를 주관하시고, 그 약속을 성취하시며, 우리가 측량할 수 없는 지혜와 능력으로 성도들을 만족케 하시며 세상과 역사를 의롭고 자비롭게 이끌어 가신다는 사실이다. 갈대상자 이야기는 모세의 이야기요 이스라엘 역사이야기요 인간의 구원 이야기이다. 갈대상자는 선장도 노도 돛대도 방향키도 없이 망망대해를 향하여 떠가지만 하나님이 직접 선장이 되셔서 목적지를 향해서 항해하게 하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은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향하고 계시며 필요한 때 언제나 개입하시어 우리 인생을 장악하신다. 여기에 기독교의 소망이 있다. 인간의 절망은 하나님의 희망의 시작이다. 인간의 시간표가 끝나는 순간 하나님의 시간표는 시작된다. 인간이 포기하는 순간에도 하나님은 여전히 사랑과 열심을 동원하여 우리의 삶을 인도하신다.
 
하나님의 인간 구원의 방법은 인간이 가진 조건으로 인간을 구원하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죄와 사망의 한 복판에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어 십자가에서 죽이셔서 구원하셨다. 우리의 구원은 죄와 사망이라는 악조건에서 시작되어 이루셨기에 우리가 가진 조건의 열악함과 모자람으로 인해서 실패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하늘의 천군천사를 동원하여 실패함이 없는 구원에 이르도록 하실 것이다.
 
오늘의 기도
 
사망 가운데 거하던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해주셨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베푸시어 하나님의 구원의 영광과 풍요함을 나타내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황의성 목사
맑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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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장 귀한 선물은 믿음
본문 : 삼상 2:11~21
찬송 : 558장

얼마 전 영국의 bbc방송국의 레이미첼 할아버지의 사연이 많은 감동을 주었다. 올해 93세인 그는 치매를 앓고 있다. 자식들도 몰라보고, 과거에 대한 기억은 다 잊어버렸는데, 단 하나의 기억만 남아있다. 사랑하는 아내에 대한 기억이다. 빛 바랜 사진 속의 아내를 바라보며 눈물 흘리며 세상 떠난 아내를 그리워하는 그의 모습에 많은 감동을 받았다. '내 자녀에게 단 하나의 것만 남겨줄 수 있다면 어떤 것을 남겨주어야 할까?'생각했다. 우리는 자녀들에게 믿음을 남겨줘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한 교육자가 말했다. "우리나라에는 기독교, 불교, 유교보다 더 강력한 종교가 있다. 이 종교 앞에서는 모든 종교가 힘을 잃는다. 그 종교는 다름 아닌 '대학교'이다."
 
종교가 아니지만 이미 종교와 같이 주인 노릇 하고 있는 것이 한국의 대학교라는 그의 일침은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한국인의 교육열에 대해 비판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그것만을 추구하면서 가장 소중한 신앙이 길을 잃어버린 것 같아 안타깝다.
 
본문에는 가정 안에서 자녀의 신앙교육에 실패한 사람이 나온다. 그 사람은 엘리대제사장이다. 엘리가 두 아들의 신앙교육에 실패했다는 것은 자녀들의 모습 속에서 나타난다. 두 아들은 하나님의 제사를 멸시했다. 두 아들은 회막문에서 수종 드는 여인들과 동침했다. 눈이 어두워진 아버지를 대신해서 그들은 하나님의 처소를 지키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여호와를 알지 못했다"고 성경은 증언한다. 이 말이 충격적이다. 아버지가 대제사장이고, 자신들 역시 성전에서 제사장 노릇을 했는데도 여호와를 알지 못했다고 한다. 그들이 여호와를 알지 못했다는 말은 '여호와를 개인적으로, 인격적으로, 체험적으로 깊이 알지 못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것은 우리 삶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목사의 자녀들이 하나님을 모를 수 있고, 항존직분자의 자녀들이 하나님을 모를 수 있다. 주일마다 예배를 드리지만 우리 자녀들이 하나님을 모를 수 있다. 개인적으로, 인격적으로, 깊이 하나님을 모를 수 있다.
 
부모인 내가 아무리 깊고, 놀라운 하나님을 체험했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내 자녀의 하나님은 아니다. 내 자녀가 자기 스스로, 자기 자신의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고 경험해야 한다. 우리는 자녀에게 이것을 가르쳐야 하고, 이것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이 기도이다.
 
엘리와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 엘리의 두 아들과 사무엘을 비교해보면, 두드러지게 차이가 나는 것이 기도다. 자녀교육에 실패한 가정에는 기도가 없고, 가정 안에서 아름다운 신앙을 유산으로 물려준 가정에는 기도가 가득하다. 하나님이 주신 가장 귀한 선물인 자녀에게 믿음을 선물로 남겨 주자.
 
오늘의 기도
 
내 자녀가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인격적으로, 깊이 체험하고 아는 자녀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양수 목사
광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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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부부행복의 원리를 알라
본문 : 엡 5:21~33
찬송 : 299장

요즘 교회마당에 저절로 피어나는 야생화들이 활짝 피어 기쁨을 더해준다. 하얀색의 구절초와 매발톱이 보랏빛을 띠고 분홍색의 낮달맞이가 피어나기 시작했고, 어느덧 우체통에 새집을 짓더니 어미새가 알을 품어 새가 되어 날아가버리고 빈집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다. 자연의 조화를 바라보며 참으로 신기하고 감사할 뿐이다. 이번 주간에 부부의 날이 있어 말씀을 묵상하며 부부의 중요함과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첫째, 결혼은 부부가 하나되는 것이다. 첫 번째 원칙은 두 사람이 하나되어 하나님의 형상을 온전히 이루어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 하나됨의 결혼원칙을 더욱 강화시켜 말씀하시고, 사도바울도 하나님이 세우신 결혼원칙을 31절에 강조하고 있다.
 
둘째, 결혼은 부부가 주님께 순종해야 한다. 두 번째 원칙은 결혼은 두 당사자간의 문제가 아니라 결혼 중심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있음으로 예수님과 남편과 아내 삼각관계이다. 요즘은 결혼식에서 부모도, 주례도 생략되는 약식결혼식을 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되어 걱정이 되기도 한다.
 
셋째, 결혼의 모델은 주님과 교회의 관계이다. 행복한 부부관계의 세 번째 원칙은 가정의 부부관계를 주님과 교회의 관계로 승화시키는 것이다. 아내는 남편에게 교회가 머리되신 그리스도에게 하듯 무조건 순종해야 된다는 것이고, 남편들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하여 희생적으로 자신을 내어 주심같이 아내를 사랑하고 보호하고 양육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넷째, 아내는 남편에게 무조건 존경해야 한다. 남녀는 틀린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본질적인 것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여자와 남자는 동등한 인격과 자유를 가지고 있지만 성향과 기호와 말에 서로 다른 차이점이 있음을 인정해야 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다섯째, 남편은 아내를 무조건 사랑해야 한다. 아내의 마음을 열고 소통하게 하는 사랑의 언어를 사용하고 사랑의 태도로 대하고 사랑으로 채워주며 사랑으로 감싸주라는 것이다.
 
남편은 본능적으로 존경받고 싶어하고 아내는 본능적으로 사랑받고 싶어하는 부분을 서로 채워주어야 활력이 생긴다. 요즘시대에 너무 동떨어진 소리라고 하며 무시할 수도 있겠으나 사랑하고 존경하는 말 한마디가 중요하고 서로 말씀대로 순종하면 가정에 기적이 찾아오고, 부부사이에 행복이 넘칠 것이다. 둘이 하나되는 부부의 날에도 큰 감동을 주는 날이 되길 바란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이 짝지어주어 부부로 만나게 해주심을 감사드립니다. 가정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고 축복의 통로가 되길 기도합니다. 날마다 서로를 감동케하는 날이 되어 더욱 더 행복한 날이 되길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서정우 목사
한우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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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본문 : 요 16:16~24
찬송 : 293장

소유로 인한 만족과 기쁨은 일시적 기쁨이요, 한 순간의 기쁨이요, 금방 잃어버리는 기쁨이다. 소유로 인한 만족과 기쁨은 인간의 욕심과 직결되어 있다.
 
더 심각한 것은 이러한 기쁨에 빠져 살다보면 중독적으로 욕심의 노예로 전락하는 삶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이 기본적으로 가지는 소유적이고 세상적인 기쁨을 죄악시해서는 안된다. 세상과 단절하고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기쁨마저도 포기하며 살아가는 수도원적 영성이나 천국의 보상설도 역시 결코 성경적이지 않다.  그렇다면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하면 참된 기쁨을 소유할 수 있을까?
 
첫째, 영적인 깨달음이 있어야 한다. 요한복음 16장 말씀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 이후, 예수님께서 보내시는 성령님이 제자들에게 임하실 때에 일어날 일을 예언적으로 말씀하신다. 그러나 제자들은 영적인 무지함으로 인해 말씀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혼돈스러워했고 근심했다.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 즉, 이후에 성령님이 임하고 성령 충만함을 얻었을 때 비로소 말씀을 깨닫고 기뻐할 수 있을 것이라 말씀하신다. 참된 기쁨을 소유하는 비결은 성령님께서 주시는 영적인 깨달음이 있을 때이다.
 
열왕기하 6장에 보면, 아람군대가 엘리사를 붙잡으려고 엘리사가 있는 도단성을 에워쌓다. 아침에 일어나 엘리사의 사환이 나가서 보니 수많은 아람 군사들과 말과 병거들이 성을 둘러싸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심히 두려워한다. 그러나 엘리사의 기도가 끝나자 사환은 영적인 눈을 뜨게 된다. 하나님의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오히려 아람군대를 포위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이처럼 영적인 눈을 뜨게 되면 현실 너머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영적인 깨달음, 영적인 각성, 영적인 눈이 뜨이는 것이 무엇으로 가능할까? 성령님으로 가능하다. 성령이 충만하면 늘 생활이 기쁘고 즐겁다. 사도행전 2장을 보면 초대교회의 특징을 몇 가지로 살펴볼 수 있다. 모이는 기쁨이 있었고 음식을 나누는 기쁨이 있었고 예배드리는 기쁨이 있었고 기도에 응답이 있는 기쁨이 있었고 양적인 성장을 하며 부흥하게 되는 기쁨이 있었다. 성령님이 활동하시는 교회는 당연히 기쁨이 있는 것이다. 특히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기쁨의 길은 이웃사랑에 있다. '긍정의 심리학'으로 유명한 마틴 셀리그만은 인간은 기쁨의 삶, 선한 삶, 의미있는 삶을 살아갈 때 참된 인간의 행복을 느낄 수 있다고 가르친다.
 
기쁨의 근원이 되는 성령 충만과 나누어주고 베풀어주는 삶이 우리 일생의 삶이 되어서 항상 기뻐하시는 삶이 되길 바란다.
 
오늘의 기도
 
기쁨의 근원이 되시는 성령의 충만함이 있게 하시고 나누고 베푸는 이웃 사랑을 통하여 참된 기쁨을 누리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만준 목사
덕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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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아빠는 왜?
본문 : 엡 6:1~3
찬송 : 364장

오래 전 초등학교 2학년 아이의 시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제목은 '아빠는 왜?'이다. "엄마가 있어 좋다/나를 예뻐해 줘서/냉장고가 있어 좋다/나에게 먹을 것을 줘서/강아지가 있어 좋다/나랑 놀아 줘서/그런데…아빠는 왜 있는지 모르겠다"
 
이 글에 달린 댓글들은 조금 더 흥분된 어조이다. "오냐 오냐 키우니 저 모양이지. 좀 두들겨 패면서 키우쇼." "아빠는 왜 있냐고? 너에게 냉장고와 먹을 것과 강아지를 사 준 사람이 아빠다. 이 XX야." '아빠는 왜?'라는 한 초등학생의 글을 일반화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아빠에 대한 우리 사회의 분위기를 어느 정도 알게 하는 내용이기는 하다.
 
기러기라는 동요가 있다. "깊어가는 가을밤에 낯설은 타향에/외로운 맘 그지없이 나 홀로 서러워/그리워라 나 살던 곳/사랑하는 부모 형제/꿈길에도 방황하는 내 정든 옛 고향" 외로움이 절절히 흐르는 노래이다. 이 땅의 아버지들이 이런 외로움을 타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이 땅의 아버지들은 마치 깊어가는 가을밤에 아는 사람 하나 없는 타향에서 혼자 서럽고 힘들고 고달프고 외로워서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사는 것 같다.
 
애들이 점점 커가면서 "아빠는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아, 세대 차이 나요, 기성세대"라는 얘기를 듣는다. 설상가상으로 엄마와 자녀가 한 편이 되어 어느덧 이방인으로 취급한다. 아버지의 현실은 녹녹치 않다. 경쟁으로 늘 치열하다. 자존심을 꺾어가면서 머리를 숙인다. 가족을 위해서이다. 몇 번이고 사직서를 내고 싶지만 꾹 참는 것은 애들이 눈에 밟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버지에게는 가족의 응원이 필요하다.
 
아버지는 온통 가족에 대한 생각뿐이다. 아들, 딸이 밤 늦게 돌아올 때 어머니는 열 번 걱정하는 말을 하지만 아버지는 말없이 열 번 넘게 현관문을 쳐다본다. 아버지의 사랑이 결코 무관심한 사람이 아니다. 그 보이지 않는 마음에는 부인과 자녀에 대한 생각이 가득 차 있다. 어머니의 가슴은 봄과 여름을 왔다 갔다 하지만, 아버지의 가슴은 가을과 겨울을 오고 간다. 그리고 아버지의 마음은 강한 것 같지만 잘 깨어지기도 하고, 쉽게 상처를 받기도 한다.
 
가족들은 아버지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고, 해줘야 하는 신과 같은 존재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아버지는 인간이기에 점점 나이가 들고 아이들이 자랄수록 작아진다. 그래서 아버지는 힘들고 서글프고 외롭다. 부모 공경은 하나님의 명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버지에게 존경과 감사와 따뜻한 말 한마디가 절실히 필요한 시기이다. 오늘 남편에게 아버지에게 존경과 감사와 사랑을 전하는 한 마디의 표현은 전해보면 어떨까?

오늘의 기도
 
아버지를 향한 존경과 감사가 회복되도록 하소서. 더 나아가 하나님 명령으로서 부모 공경을 삶에서 작은 한 마디 표현으로부터 실천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정지태 목사
평화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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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세상 속 견고한 그리스도인
본문 : 시 11:1~7, 12:5~6
찬송 : 70장

이 시의 배경에 대해서는 다윗이 사울에게 박해를 받던 시기로 이해하기도 하고, 다윗의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고통받던 시기로 해석하는 학자도 있다.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절박한 상황 속에서 친구들이 권하는 피난처를 마다하고 하나님을 안전한 지대로 선택한 다윗의 신앙을 보여준다. 모든 가치가 흔들리는 세상에서 성도는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로, 세상의 피난처는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내가 여호와께 피하였거늘 너희가 내 영혼더러 새같이 네 산으로 도망하라함은 어찜인고." 다윗을 위하는 주변 사람들은 다윗에게 네 산으로 도망하라고 말한다. 엔게디 광야 굴에서, 그 뒤 십 광야에서 다윗이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그런 상황에서 다윗의 친구들은 사울을 죽이라고 한다.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라고, 그러면 다윗은 안전할 것이고 고생은 끝이라는 의미다. 그러나 다윗은 세상 사람들이 선택하는 그런 안전지대를 만들려 하지 않았다. 자기의 목숨을 하나님께 맡긴다. 세상의 피난처는 가장 안전할 것 같고 가장 힘이 있을 것 같고 가장 지혜로운 것 같다. 그러나 세상의 것으로 피난처를 삼는 사람은 패망할 뿐이다. 이 세상에 견고한 것, 영원한 것, 확실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둘째로 그렇다면 의인들의 선택은 어떠해야 하는가? 세상 사람들은 "터가 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을 할꼬?"라며 의인들을 비웃는다. 공동번역을 보면 "기초가 송두리째 무너지는 이 마당에, 의롭다는 게 무슨 소용이냐?"라고 번역되어 있다. 흔들리는 세상에 소망을 두고 사는 사람들의 가치관이다. 사도행전 4장에 관리들과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제자들에게 경고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하니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고 말한다. 세상의 평안과 안전이 아무리 보장된다 하더라도 진리를 버리는 것은 생명을 잃는 것이다. 터가 무너져도 믿음 안에 있다면 하나님의 능력의 손은 우리를 붙들고 계신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곳이 우리의 가장 안전한 피난처이다.
 
셋째로 어떻게 다윗은 이 상황에서 이런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이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부터 기인됨을 알 수 있다. "여호와의 말씀에 가련한 자들의 눌림과 궁핍한 자들의 탄식으로 말미암아 내가 이제 일어나 그를 그가 원하는 안전한 지대에 두리라 하시도다.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함이여 흙도가니에 일곱 번 단련한 은 같도다."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순결한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는 자는 가장 안전한 지대에 있는 사람이며 그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오늘의 기도
 
날 위해 십자가 못 박히시고 날 구원해 주신 사랑의 예수 그리스도를 오늘도 의지합니다. 나의 산성이시오, 피난처이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주미 목사
새들원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