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30일~5월 5일

4월 30일~5월 5일

[가정예배]

2018년 05월 03일(목) 10:50
월-길갈
본문 : 수 5:1~9
찬송 : 261장

누구도 예외 없이 우리 안에는 부끄러움과 수치심이라는 쓴 뿌리가 자리하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드디어 광야길 마지막 관문인 요단강을 건넜다. 요단 서쪽 아모리 사람의 모든 왕들이 여호와께서 요단 물을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말리시고 건너가게 하셨음을 듣고 마음이 녹았고 정신을 잃을 정도였다.
 
그 때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다시 할례를 행하라고 명하셨다. 뜻밖이었지만 그들은 순종한다. 여호수아가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할례를 행한다. 할례 후 회복을 기다리는 중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 말씀하시기를 내가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떠나가게 하였다 하셨으므로 그곳 이름을 길갈이라 하였다. 길갈은 '굴러간다. 떠나보낸다'는 뜻이다. "애굽의 모든 수치를 굴려 떠나가게 하였느니라." 오늘 우리에게도 굴려 보내야 할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것들이 있다.
 
악한 성품
 
애굽에서 430년 종살이 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내면에는 떠나보내야 할 악한 성품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소극적이고 이기적인 부정적인 성품과 늘 거역하는 역리적인 성품은 타인에게 상처를 안겨줄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는 갈등과 절망, 좌절 분노, 그리고 심각한 열등감(메뚜기의식)을 안겨주는 악한 노예근성이 자리하고 있었다.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려면 이러한 성품 대신 온유하고 겸손하신 주님의 마음이 풍성하게 부어져야 한다.
 
악한 습관
 
습관은 반복적인 행위다. 성품이 행동을 낳고 행동은 습관을 낳으며 그 습관이 사람의 인격이 된다. 성품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인생이 바뀐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애굽의 수치스러운 악한 습관들이 있었다. 악평, 비판, 불평 원망 등이다. 이것들을 떠나보내고, 그 자리에 기도, 열정, 섬김, 경청, 공감, 배려, 칭찬 등 예수님의 거룩한 습관으로 채워져야 한다.
 
악한 영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악한 영에 이끌린 부끄러운 우상들이 있었다. 오늘 우리에게도 무형의 우상들이 있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곧 탐심의 우상이다. 모든 영역의 중독 배후에는 악한 영의 역사가 있다. 그 모든 악한 영을 떠나보내고 거룩한 성령으로 충만히 부음 받아야 할 것이다. 이 모든 수치스러운 것들을 굴려 보낸 '길갈'은 제사장 나라 백성들의 새로운 출발지이다. 거기에 기억해야 할 열두 기념돌이 세워져 있고, 그곳에서 저들은 약속의 땅 최초로 유월절 제사를 드렸으며, 그곳은 가나안 정복 전쟁을 위한 전초기지였다. 이들은 언제나 길갈에서 전열을 정비해 출전하고 승전했다. 길갈은 사울의 즉위 장소, 선지자 엘리야가 승천할 때 출발지점이기도 하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나라 백성인 우리 안에 모든 악한 성품과 습관, 악한 영이라는 수치스러운 사슬들은 온전히 끊어 떠나보내 주시고 주의 성품과 습관, 주의 영으로 충만히 채워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명철 목사
서광교회
-----------------------------------------------------------------------
화-마음을 같이하여
본문 : 벧전 3:8~12
찬송 : 327장

십자가는 하나님의 용서로 우리가 구원 받고, 우리 기도가 응답될 수 있고, 하늘과 땅이 하나 되는 3가지 은혜를 허락했다. 이 은혜를 얻은 자가 할 일은 하나 되는 일이다. "나를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말씀은 주님과 하나 되지 않고는 자신도, 가족도, 이웃도 온전히 하나 될 수 없다. 성령은 예수를 시인하게 하고 그리고 하나 되게 하는 영이다. 구체적으로 마음을 같이하므로 하나 되게 하는 일은 무엇인가.
 
첫째,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다.
 
동정은 같은 감정을 말하는데, 사이코패스는 공감능력이 없는 반사회적 인격 장애다. 우리의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지 않는다(히 4:15). 그는 이 일로 한결같이 시험 받는다고 했다. 그러므로 신앙에서 불쌍히 여김이 큰 은혜인 것은 아버지 마음과 아버지 뜻 그리고 아버지를 닮기 때문이다. 더 큰 이유는 서로 친절하고, 불쌍히 여기고, 서로 용서해야 하는 것은 주 안에서 우리가 용서함을 받기 때문이다. 같은 마음, 같은 감정 곧 불쌍히 여기는 자체가 겸손이다. 사랑은 단순한 동정이 아니라 주님의 심정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사람을 대하는 겸손한 자세다.
 
둘째, 도리어 복을 빌라.
 
우리를 부르심은 원수까지 복을 빌기 위함이요, 더불어 이는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 하심이라 했다. 원망과 불평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하나님이 종을 세우는 목적 중 하나는 복을 주심이라고 했다. 인간 창조, 아브라함 부르심의 목적은 복의 근원에 있었다. 이것을 이루기 위해서 자신을 못 박고 조롱하는 자들을 오히려 용서와 사랑의 마음으로 복을 빌어주셨다.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해지고,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리라." 약속은 구제 자체보다는 그것을 통해 하나된 마음, 그러기 위해 서로 용납하는 그 자체를 기뻐하시기 때문이다.
 
셋째, 혀를 금하라.
 
진실로 불쌍히 여기고, 복을 빌었으나, 마지막 입술이 관건이다. '혀를 금한다'라는 말은 악한 말과 거짓을 그치고, 선과 화평을 구하라는 것이다. 말이란 돌고 돌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데, 주의 눈은 의인의 간구에 기울이신다. 우리 모두는 실수가 많지만 말에 실수가 없다면 온전한 사람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실수를 줄이기 위해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라"고 한다. 좋은 날을 원한다면, 마음을 같이 한다면 심령에 양약이 되는 선한 말을 해야만 한다.
 
오늘의 기도
주님이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므로 우리가 주의 마음과 알고 주의 뜻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마지막 때에 마음을 같이하여 서로 불쌍히 여기고, 우리의 혀는 복을 빌고 하나 됨을 위해 사용하므로 아버지를 더욱 닮아가는 자들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한억만 목사
강릉하누리교회
--------------------------------------------------------------------
수-천 대까지
본문 : 출 20:4~6
찬송 : 438장

성경에 나오는 가정들 중 자녀의 신앙교육을 성공한 가정도 있지만, 실패한 가정도 있다. 그들은 왜 성공했고 실패했을까? 자녀교육에 성공한 대표적인 아버지는 아브라함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순종한다. 이삭은 아버지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보았다. 하나님께서 아버지에게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고 하시는 음성을 들었다. 아브라함은 이삭에게 하나님께 순종하는 법을 가르쳤다. 자녀교육에 성공한 또 한 사람은 디모데의 어머니 유니게이다. 바울은 디모데의 믿음을 '거짓없는 믿음'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그 믿음이 외조모와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던 것인데 그것이 디모데 속에도 있다고 말한다. 디모데는 어려서부터 어머니에게서 성경을 배웠다.
 
자녀교육을 실패한 대표적인 아버지는 엘리 제사장이다. 그는 아들에게 자신의 신앙을 아들에게 전수하는 데 실패했다. 그들은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않았다. 하나님은 엘리에게 "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겨"라고 말씀하셨다. 아버지의 신앙이 좋다고 자녀의 신앙이 자동적으로 좋아지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녀에게 가르치지 않고 훈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왜 어떤 사람은 자녀교육에 성공하고 어떤 사람은 실패했을까? 삶으로 가르치는 것만 남기 때문이다. 이 네 사람 모두 삶으로 자녀들을 가르쳤다. 아버지의 삶이 자녀들을 그렇게 양육한 것이다. 십계명의 두 번째 계명에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씀을 지키는 자에게 천 대까지 은혜를 주시는 계획이다. 천 대까지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위해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계명을 지키는 자가 되어야 한다. 계명을 지키기 위해서는 먼저 계명을 알아야 한다. 자녀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계명을 알 수 있을까? 가르쳐 주어야 한다. 누가 가르쳐야 할까? 우리가 가르쳐야 한다.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 삶으로 가르쳐야 한다. 가르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할까? 내가 먼저 알아야 한다. 알기 위해서는 기도하고 말씀을 읽고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
 
가정의 달을 맞아 자녀들이 집에 올 때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 아들의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해주는 것이다. "여호와는 아들에게 복을 주시고 아들을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아들에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아들에게 드사 평강주시기를 원하노라"라고 기도해보자. 손자 손녀들에게 성경책을 주면서 할머니는 눈이 잘 보이지 않으니 성경을 읽어달라고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너를 위해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고 있다"라고 말해주는 것은 어떨까?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복은 천 대까지 이르게 할 수 있다.
 
오늘의 기도
나의 믿음이 자녀에게 본이 되게 하옵소서. 부모인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그의 뜻을 행하게 하시고 자녀들이 그것을 보고 따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최영선 목사
한울교회
------------------------------------------------------------
목-구레네 시몬의 가정
본문 : 롬 16:13
찬송 : 315장

성경 속에는 수많은 믿음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어떤 이는 하나님께 받은 말씀을 담대히 전하다가 왕궁의 감옥에 갇히기도 하고, 어떤 이는 자신의 약점을 극복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받들어 이방의 왕으로부터 이스라엘 백성을 구출하기도 했다. 또 어떤 이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야이심을 선포하다가 기독교 최초의 순교자가 되었다. 어려움 속에서도 믿음으로 승리한 선진들의 이야기는 우리로 하여금 주를 위해 살기를 결단하게 하고, 또한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하게 한다.

로마서 16장에서 사도 바울은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인 최소 26명 이상의 사람들과 5개 처소의 가정교회에 문안 인사를 하고 있다. 그 중에서 본문은 루포와 루포의 어머니에게 문안하는데 특별히 이 가정은 주님께서 십자가형을 선고받고 골고다 언덕을 오를 때 억지로 주님의 십자가를 대신 졌던 구레네 사람 시몬의 가정이다. 우리 주님께서 골고다 언덕을 오를 때 구레네 시몬이 마침 주님 옆을 지나가고 있었고 군인들이 억지로 그에게 주님의 십자가를 지고 가게 한 것은 우연이 아니라 분명 하나님의 섭리였다. 생각지도 못한 때에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진 사건은 구레네 시몬이 예수를 믿게 되는 결정적인 사건이 되었을 것이다.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일들이 있을 때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되는데, 실제로 주님의 십자가를 대신 진 구레네 시몬은 주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가면서 그의 심령 안에서 주님이 누구신지를 알게 되고 전혀 준비되지 않은 그에게 하나님의 불가항력적인 은총이 임했을 것이다. 그리고 구레네 시몬과 온 가족이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짐작할 수 있다. 본문에서 바울이 문안하고 있는 루포는 구레네 시몬의 아들이다. 여기서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라는 말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택하심을 입은'의 헬라어 원형 '에클렉토스'는 '택함을 받은, 뽑힌, 탁월한' 등을 의미한다. 특히 이 말을 루포를 설명하는데 사용했다는 점을 볼 때 루포는 교회에서 헌신되고 모범되게 신앙생활을 하는 자였을 것이다. 그리고 바울은 루포의 어머니를 문안하면서 곧 자신의 어머니라고 할 만큼 그녀로 부터 돌봄을 받은 각별한 추억이 있을 것으로 학자는 추측하기도 한다. 구레네 시몬은 억지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졌다가 그와 온 가족이 주님을 믿게 되었고, 그 가정은 초대교회 믿음의 명문가가 되었다.
 
구레네 시몬이 주님의 십자가를 진 사건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며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또한 그의 가정이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고 주를 위해 헌신한 믿음의 명문가가 된 것처럼 우리도 주를 위해 귀한 헌신을 드리며 우리 가정도 믿음의 명문가로 서 가기를 축복한다.
 
오늘의 기도
주님을 사랑하여 주를 위해 헌신하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의 명문가로 세워지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현숙 목사
푸른초장교회
---------------------------------------------------------------
금-영원한 규례 보혈
본문 : 출 12:1~13
찬송 : 267장

규례나 법에는 한시적인 것과 영원한 규례가 있다. 오늘 말씀은 1회성이 아닌 영원한 규례인 유월절 피에 관한 말씀이다. 그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영원히 바뀌지 않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규례로 우리에게 주실 생명의 복을 약속하신 것이다.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말씀은 우리에게는 최고의 은혜와 생명이요 행복이다.
 
너희가 사는 집에 있어서.
 
그날 저녁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백성을 이집트의 노예의 고통스런 삶에서 출애굽 시키기 위하여 아주 중대한 일을 시행하신다. 완고한 바로의 마음을 마지막으로 다스릴 절호의 기회로 사람의 장자나 짐승의 첫 새끼를 죽임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으로 문좌설주와 우설주, 인방에 피를 바른 후에 문안에 들어가 있으면 재앙이 넘어가게 된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반드시 히브리민족이 사는 집에는 짐승의 피가 있어야 했다. 재앙을 막아주는 표적이다. 이렇듯 지금 우리가 사는 집에는 하나님께 보여줄 표적이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요, 보혈을 믿는 믿음이다. 우리 집에 꼭 필요한 말씀이다. 매일 피를 바르는 심정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따를 때 큰 은혜가 넘친다.
 
피를 볼 때에 넘어간다.
 
그날 짐승의 집에 발라진 피는 하나님과 히브리 민족 사이에 생명언약의 표적이다. 장자를 죽이는 하나님의 사자가 약속대로 피가 발라져 있는 집에는 들어가서 재앙을 내리지 않았다. 하나님과의 약속의 언약을 믿음으로 지켰기 때문에 그 집을 넘어간 것이다. 우리는 지금 하나님께 무엇을 보여드려야 할까? 하나님께서 나를 보실 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십자가 보혈의 믿음을 보신다. 예수님의 보혈은 점도 흠도 없는 살아있는 보배로운 피이므로 새로운 살 길을 열어 주신다. 우리를 안전하게 보호해 주신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믿는 믿음을 보여드리고 그 안에서 살자.
 
영원한 규례이다.
 
유월절에 행해진 규례는 단회적인 효과가 아니라 영원한 효과가 있으므로 영원히 지킬 규례라고 하셨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께서는 한시적인 대제사장으로 오신 것이 아니라 영원한 대제사장으로서 십자가를 통하여 흘리신 피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를 영원히 속죄하여 주셨다. 예수님께서 흘리신 피를 참된 음료라 말씀하시며 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다. 영생수의 복을 받는다고 하셨다. 곧 영생인 것이다. 현재의 삶이 곧 영생하는 삶이니 변함없이 예수님을 믿고 따라갈 때 마르지 않는 풍성한 복이 넘치게 하신다. 우리는 영원한 큰 영생의 은혜를 받았다. 금생과 내생에 이르는 영원한 복을 주시는 분이 예수님이시다. 늘 우리의 가정에 예수님을 모시고 살 때 재앙은 넘어가고 영원한 복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
 
오늘의 기도
나 자신과 우리 집에 예수님의 보혈이 영원히 흐르게 하시고 보혈의 믿음으로 지금부터 영원한 복이 넘치시길 소원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임기환 목사
여수살리는교회
----------------------------------------------------------------------
토-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일
본문 : 살전 2:19~20
찬송 : 453장

인생의 목표가 무엇인가? 그리스도인들의 가장 중요한 거시적인 목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이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을까? 두 가지 목표가 있어야 한다. 첫째는 인격적인 목표이고, 둘째는 사역적인 목표이다. 첫째로 인격은 행복의 크기에 비례한다. 물질이 많을수록 행복한 것이 아니라 인격이 좋을수록 행복하다. 넉넉하게 사람을 품어주니 사람들에게서 존경을 받고 내 인생이 행복해진다. 물론 이것은 일시적인 행복에 불과하다. 영원한 행복은 주님과의 깊은 사귐에 있다. 인격적인 목표는 주님을 닮아가는 것이다. 인격적인 목표는 무엇이 되느냐의 문제이다. '비잉(being), 비커밍(becoming)'의 문제로 어떤 사람이 되느냐 하는 것이다. 우리는 나를 구원하신 예수님의 인격을 닮아가는 사람이다.
 
하루하루 인생의 시간이 지나갈 때마다 지나간 해보다 주님 닮아가는 모습이 조금 더 나타나야 한다.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 즉, 사랑 희락 화평 오래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이다. 내적인 열매이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인격적인 열매를 맺게 된다. 과거보다 더 신경질이 많아졌다면 우리는 영적으로 후퇴한 것이다. 그리스도 예수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러야 한다. 예수님의 인격을 닮아가는 것이 인격적인 목표이다.그런데 인격이 변할 수 있을까? 쉽게 변하지 않는다. 주님을 오래 믿어도 쉽게 변하지 않는 것을 본다. 그러나 가치가 변하면 변한다. 세상 가치관에서 하늘나라 가치관으로 뒤집어 놓으면 된다. 말씀을 통해 훈련받고 성령께서 우리 마음을 주장하시면 인격도 변한다.
 
두 번째 사역적인 목표가 있다. 이것은 두잉(doing)의 문제이다. 무엇을 하느냐 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하나님 나라에 기여하는 것, 하나님 나라 확장이다.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서 나는 어떻게 기여하느냐이다. 이 두 가지가 똑같이 중요하다. 어떤 사람은 사역은 열심히 하는데 인격이 엉망이다. 사역한 만큼 문제가 일어난다. 또 어떤 사람은 인격은 괜찮은데 사역은 안 하는 사람이 있다. 이것도 잘못된 것이다. 우리는 두 가지 목표를 다 추구해야 한다. 내가 주님 앞에 어떤 사람이 되느냐, 주님 앞에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 되느냐 하는 것은 중요하다. 사역 중의 사역은 전도이다.

우리 자신이 전도한 사람들, 그 한명 한명이 우리의 상급이요, 자랑이요, 기쁨의 면류관이다. 내가 예수님을 믿은 이후 전도한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나를 통해 복음을 들은 사람들이 얼마나 되는지 결산해 보라. 전도하지 않으면 영적성숙은 일어나지 않는다. 반드시 전도해야 내 영혼이 산다. 진정한 영성은 영혼사랑이다. 남은 생애 영혼구원을 위해 달려가자.
 
오늘의 기도
구령의 열정을 주시고 잃어버린 영혼을 향한 마음을 주셔서 전도하는 일에 충성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류지봉 목사
군내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