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임 목회자를 위한 개척, 적극적 '지원'절실

초임 목회자를 위한 개척, 적극적 '지원'절실

[ 독자투고 ]

최은숙 기자
2018년 05월 02일(수) 18:07
4월 6일 자 한 일간지 지면에서 청년 창업에 대한 기사를 읽었다. 청년 실업이 문제시 되는 현 시점에서 창업으로 돌파구를 찾으려는 정부와 전문가의 정책이다. 다만 창업초기에만 반짝 지원되고 3년차가 넘어서는 지원이 부족하여 창업이 지속되지 못하는 현실을 기사화한 내용이었다. 여하튼 청년 창업에 대하여 우리 정부에서 많은 노력과 지원을 하고자 하는 현실이다.

목회자로서 이 기사를 읽으며 자연스럽게 이를 목회와 교계로 연결하여 생각해 보았다. 현 우리나라 교계는 어떤가. 신대원에서 배출되는 초임 전임 사역자들에게 전임사역지 혹은 파트타임사역지라도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더군다나 전임을 하면 할수록 즉 시간이 흘러가면 갈수록 사역지는 점점 더 적어진다. 신규배출되는 목회자는 계속 늘어나는데 부목사, 담임목사 등 사역지는 점점 적어지는 현실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쌓이는 목회자와 한정된 사역지가 현재 한국 교계에서 문제가 되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사역할 교회가 없다.

이 대안으로 교계에서 많은 논의가 있는 것으로 안다. 소위 이중직 허용여부이다. 그런데 목회자의 이중직 여부는 교계에서 허, 불허를 떠나 이미 선택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문제이다. 이미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정당성을 부여하는 신학적 연구가 논의되지만 이는 말그대로 정당화에 불과하다. 합리화인 것이다. 세상에서 목회자가 아니더라도, 즉 신학과 목회를 전공하고 자격을 부여받은 목회자가 아니더라도 세상 속에서 복음 전파의 역할을 감당할 이는 평신도(?)로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이중직은 목회자의 생계를 위한 궁여지책, 말돌리기에 불과한 것이고, 또 소위 가정교회라는 개념도 성전을 마련할 여건이나 유지할 능력이 안 되기 때문에 선택하게 되는 궁여지책에 불과하다. 차선이라고 좋게 보아줄지언정 최선은 아니다.

그럼 최선은 무엇인가. 교회 개척은 복음 전파에 관한 성경적 원리이고 소명자의 자연스런 발로라고 생각한다. 교회 개척이 기존 교회에 청빙(?)을 받지 못한 자의 실패한 선택은 아니다. 그렇게 인식되게 패러다임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먼저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제대로된 신학적 정립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필요한 것이 개척에 대한 교계의 실질적 지원이라고 본다. 세상에서는 취업계층인 청년을 위해 지원하고자 애를 쓴다(그것이 정치적 포퓰리즘이건 간에 함의와 지향점은 그렇다).

교회는 역사적으로 세상을 선도해 왔고 방향을 제시해 왔다. 그럴 때에 세상을 이끌었고 부흥이 있었다고 교회사를 통해 증명하고 있다고 알고 있다. 그런데 현재 대한민국을 보면 세상을 이끌기는커녕 오히려 세상보다 못한 면이 있다고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이제는 교계에서도 초임 목회자를 위해 개척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그런데 심지어 교계 선배들의 후배에 대한 목회간증이나 권면을 보면 오히려 개척을 만류하는 경우가 많다. 아니 일부 신학자나 목회자들이 교회 개척을 오히려 세상에 대한 복음 저해 요인으로 보기까지 한다. '난립'이라는 말까지 해 가며. 교회 개척은 주님의 지상명령이고 세상 복음화와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한 가장 기본적이고 효과적이며 중요한 수단이라고 본다. 교회 개척은, 세상을 선도하지 못하면 최소한 따라서라도 배워서라도 교계 차원에서 지원하고 독려해야 할 방향이다. 단순히 목회자 임지 마련을 위한 방법이 아니라 세상 복음화를 위해서도 필요한 방법이다. 그리고 교회 추천으로 신학교에 들어가고 노회 추천으로 안수를 받아 목회자가 된 자원(?)에 대한 교회와 교계의 최소한 도의적 책임이기도 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계의 실질적 대책과 지원이 있어야 한다. '네가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이중직으로 내몰지만 말고 또 희생과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서 방법으로써 비효과적인 가정교회가 대안이라는 제안말고 세상이 보기에도 가장 멋있으며 세상 복음화에도 가장 효과적이고, 그리고 입학시키고 기른 목회자에 대한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라도 목회자의 교회 개척에 대한 지원은 세상을 본받아서라도 시행되어야 한다.



김주환 목사

포항 덕성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