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선교사들의 무덤' 극복하자

일본, '선교사들의 무덤' 극복하자

[ 5월특집 ] 선교정책, 현장에서 듣는다

김성진 기자
2018년 05월 02일(수) 18:05
5월 특집 - PCK 선교정책을 이야기하다



1. 선교사의 무덤인 일본선교를 이야기하다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세계선교부는 지난 4월 10일부터 13일까지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전세계에 파송된 시니어 선교사들을 초청, 나라별 권역별 종교권역별 선교정책 발표회를 갖고 교단 선교정책을 모색하는 자리를 가졌다. 본보는 5월 한 달간 지역별 선교사들이 선교정책 발표회에서 발제한 내용을 중심으로 오늘날 급변하는 선교 현장의 이야기를 듣고자 한다. 첫 번째 원고는 '일본선교 이야기'를 주제로 발제한 임태호 선교사(일본)의 글을 요약 게재한다.



2009년 7월, 일본 기독교회는 선교 150주년을 맞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복음화의 상황은 전체 인구 1억 2300만명 가운데 1.6%인 190만명에 불과하다. 일본 선교는 1549년부터 시작된 가톨릭의 선교역사를 포함해 460여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여전히 일본은 '선교사의 무덤'이라고 불리기도 하며 선교의 절망적인 현실로 인식되고 있다.



일본의 신국

일본은 전통적으로 자신의 나라를 '신의 나라'로 자칭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기독교 세계관의 신국사상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가치이다. 이러한 자의식에서 기반해 '신의 나라'에서 '세계'로 라는 표어를 가지고 국민의식과 정신의 기초 이념을 형성하고 있다. 공동체 제사를 중심으로 한 신사신도는 불교, 유교, 도교 등과 결부되어 막부시대에 습합종교로 발달해 갔다. 그리하여 전통적인 불교 우위의 신불습합의 종교적 신념체계가 이뤄져 갔다.

이러한 신국사상은 현실에서는 쇄국이란 정책으로 가능하였고, 신도^정법, 기독교^이적의 사법이라고 대비하고 있는 사고관념으로 지속되어 왔다. 그러나 사실 일본의 신국 이념은 무가 권력 강화와 신격화와 직접 연결시켜 파악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하여야 한다. 이것이 일본의 신국사상의 본성이며 이러한 배경에서 인위적으로 형성된 국가신도는 메이지유신을 통해 천황 중심체제인 근대국가를 지향한 근대 일본의 신정부가 계획하고 추진한 결과 창출된 종교문화이며 사회체계인 것이다.



일본의 신도

일본인들의 정서 속에서는 생과 사에 대한 절대적인 분리 의식이 없다. 신도는 정직과 청정을 중시하고 죄와 더러운 것을 꺼려하며 신에게 비는 것에 의해 없애야 되는 것이라고 여겼다. 심지어 정결함과 선을 동일시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원죄를 가지고 가는 것이라는 의식은 없었다. 일본인들에게 있어 악이라는 개념은 주로 외형적인 요인들에 의해 발생되는 어떤 것이라고 여겨졌다. 그들에게는 내재하는 죄의 개념이 존재할 수 없었던 이유도 바로 이것이다. 신도에는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신에 대한 믿음이나 두려움이 없다.

이것은 일신이나 다신주의가 문제가 아니라 진실한 신적 세계, 즉 세상에 대한 신성 자체를 믿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일본 사상 가운데 죄 또는 악이라는 것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조화를 깨뜨리거나 아름다움을 손상시키는 것으로 인식했다. 이러한 죄 개념에서 기독교의 죄, 특별히 원죄의 개념을 깨닫게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할 것이다. 바로 여기에 일본인들이 성경에 기록된 심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선교역사의 전개과정에서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문화 변혁의 과정과 집단 개종의 과정을 겪으며 제시됐던 '적응주의' 선교가 크게 활성화 됐음에도 불구하고 성공하지 못한 근본적인 문제는 일본 정신세계에 대한 이해 부족과 급변하는 정치적 상황과 세계 역사의 편력에서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한 실책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혼합주의적이고 타협적인 특성의 일본인들의 성품과 종교적 삶의 자세는 기독교를 기독교답게 이해하거나 바라보지 못하고 신도의 입장에서 또는 극도의 혼합주의적 입장에서 바라보도록 만들기 때문에 일본에서 순수하고 변질되지 않은 기독교를 찾아본다는 것은 힘든 일이 된 것이다.



일본의 선ㆍ악에 대한 개념 이해

일본인들의 보편적인 사상에는 절대적인 진ㆍ선ㆍ미도 없고 절대적인 위ㆍ추ㆍ악도 없다. 일본인들의 도덕 체계는 서구 기독교 문화권에서 말하는 죄의식의 요소가 전혀 들어있지 않다. 신도에서 인간읜 신의 자식이라고 개념을 분명히 나타내고 있다. 이것은 인간 생명은 신에 의해 주어진 것이므로 인간은 거룩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기독교의 기본적인 교리조차 일본인들에게 받아들여지기 쉽지 않다.

더욱이 범신론적 입장의 문화 가운데 전지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신앙은 일본인들에게 있어서 받아들여지기는 더더욱 쉽지 않다. 우선 창조에 대한 의식이 없었을 뿐더러,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에 이른다는 교리는 더욱이 일본인들의 인생관과 세계관에는 쉽게 적용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러한 기독교 신학의 교리가 일본인들에게는 유럽 교회의 윤리적 강요와 그들의 생활 방식을 제한하는 심각한 규제로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일본인의 종교에 대한 자세는 종교가 사람과 사회, 그리고 국가를 축복해 주는 역할을 기대한다. 일본의 모든 종교는 사람을 위한 것이지, 그 반대가 아니다. 본래적으로 현세주의적 사유경향이 강한 일본인이지만, 특별히 근세시대에 이르러 현세기복신앙이 현저하게 강해져서 오늘날까지 이르고 있다. 그러므로 종교가 사람에게 신에 대한 굴복과 헌신을 요구했을 때 그들은 마치 자신이 조종 받는 것처럼 느기고 신에게 헌신했을 때 마치 자신의 자유를 잃어버리는 것같아 거부감을 느낀다. 결과적으로 일본인들은 절대성을 지닌 진리를 이야기하는 종교를 받아들이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다.



일본선교 제언

첫째, 일본교회를 향한 제언은 순전한 복음의 시급한 회복이다. 20세기 기독교 선교에 기여한 선교적 운동은 성경학교 운동, 신앙 선교운동(부흥회 및 사경회), 학생자원운동(선교동원과 선교자원 개발)으로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운동의 총체적 실험장이 일본선교의 현장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현실은 '선교사의 무덤'이라는 별칭까지 듣고 있는 실정이다. 무엇보다도 순전한 복음의 회복을 통한 일본선교의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한다.

둘째, 선교 네트워크의 형성이다. 선교적 사명과 본질을 회복하기 위한 일본 선교에 대한 가장 분명한 요청은 선교 네트워크의 형성이다. 일본의 사회 문화와 경제 경영분야에서의 탈 갈라파고스를 위한 노력으로 이른바 글로벌 경영이 추진되고 있다면 교회와 일본 신학의 장 또한 탈 갈라파고스적 사고가 요청되는 것이다. 이것이 네트워크 구성과 형성의 결정적 이유와 목적이 되는 것이다. 네트워크란 닫혀있고 갇혀 있음으로서 도태되고 퇴보하는 세계관이 아닌 협력과 공생과 서로간의 이해를 확대함으로 이뤄낼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선교의 미래적 가치는 선교 네트워크의 구축과 강화에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