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한 통찰은 배우고, 예리한 공격엔 스스로 방어

신선한 통찰은 배우고, 예리한 공격엔 스스로 방어

[ 최근신학을읽다 ] 신학과 철학의 만남

최은숙 기자
2018년 05월 02일(수) 17:47
신학은 하나님에 대한 앎을 추구하지만, 세상에 대해 닫혀있지 않다. 죄악이 관영한 세상일지라도 교회는 여전히 이 땅 위에 존재하며 세상과 소통한다. 따라서 신학 역시도 초창기부터 끊임없이 세상 학문과 문화 조류에 대해 영향을 주고받으며 성장해 왔다.

기독교 신학의 발전 도상에서 가장 자주 대화 파트너로 등장했던 학문은 철학이었다. 철학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학문이며 또한 인간의 본성을 잘 보여주는 활동이기도 하다. 인간의 유한성을 자각하기에 보다 온전한 지혜를 추구하며 창조주를 더듬어 찾아가는 기특한 면모를 보여준 적도 있었지만 어떤 때는 질풍노도의 청소년처럼 그 어떤 권위도 인정할 수 없다며 교회와 신학에 대해 반기를 들기도 했다. 철학이 워낙 자기 충족적, 자기 완결적 학문 체계를 추구하기에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인들에게 이를 경계하라고 말씀하기도 했다(골 2:8). 그러나 정작 신·구약 성경의 기록 안에도 당대의 지배적 철학 사조가 반영되어 있고 아우구스티누스나 루터 같은 위대한 인물의 신학 체계도 플라톤의 이데아론과 중세 스콜라 유명론을 배경으로 성립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요컨대 신학은 철학과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발전해 왔다. 지금까지도 그러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렇다면 현대 신학의 대화 파트너가 될 현대 철학 사조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20세기 이후로 시간 범위를 한정시켜 볼 때 영국, 미국 등 영어를 사용하는 문화권과 유럽 대륙에서는 각기 다른 철학 사조를 발전시켰다. 경험주의 전통이 원래 강했던 영미권에서는 언어분석과 과학철학, 그리고 심리철학이 연구 활동의 주류를 이루었던 반면 독일과 프랑스에서는 전통 형이상학과 인식론, 윤리학을 비판적으로 극복하려 한 현상학 해석학 실존철학 구조주의 비판이론 포스트구조주의 등이 나와서 새로운 세계상을 제시하려 했다. 이들은 각기 상이한 이론이지만 근대 철학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자아의 명증성, 이성의 절대성, 과학의 확실성 등을 비판적으로 바라본다는 점에서 그러니까 근대 문화 자체를 근본적으로 다시 반성하고 해체하려는 점에서 '탈근대(post-modern)'라는 공통점을 보인다.

근대 철학은 전통적인 기독교 신학에 대해 상당히 비판적이었다. 교회와 신학의 권위에 대해 순종하기 보다는 도리어 인간 이성의 법정에 피고로 세워 심판하려 했다. 근대 철학에서는 인간, 특히 '나'에 대한 강조가 최고도에 이르렀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고 외친 데카르트에게서도 볼 수 있듯이 근대인들에게 가장 확실한 것 가히 우상의 자리에 오른 것은 '나', 곧 주체였다. 하나님도 세상도 나 자신 만큼 분명하지는 못하고, 기껏해야 나의 증명에 의해 겨우 그 존재가 확보될 뿐이다. 그리고 근대인들은 나의 나됨이 무엇보다도 '이성적 사유'에서 드러난다고 생각했다. 감각 대상은 불확실할 수 있어도, 이성적 사유에 의해 합리적으로 파악되는 것은 틀림없이 확실하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성을 사용한 연구의 결실은 갈릴레이나 케플러 같은 과학자들의 업적으로 드러났다. 수학적-이성적 방법을 물질세계에 적용시킨 근대과학은 기계론적 세계관을 낳았다. 세상은 일종의 거대한 기계와 같고 모든 것이 톱니바퀴 맞물리듯 그렇게 인과관계에 의해 진행된다고 보는 것이다. 근대 자연과학의 성공은 근대인들의 자신감을 더욱 고취시켜 주었다. 나 자신, 이성, 그리고 과학만 우리가 확실히 신뢰할 수 있고 그 밖의 모든 것은 일단 의심과 비판에 붙이려는 태도가 생겨났다. 그것이 저명한 학자의 발언이건, 교회 성직자의 강설이건 말이다. 이처럼 이성적 주체, 그리고 수학적 자연과학에 입각해 세상에 대한 확실하고도 객관적인 지식을 얻고자 했던 것이 근대 철학의 근본이념이었다. 신학의 관점에서 볼 때 근대 철학은 주체와 과학의 우상화가 절정에 달했던 시기였다.

그러나 현대 철학은 근대의 이념에 대해 찬동하지 않는다. 후설의 현상학적 방법, 가다머의 해석학적 방법, 분석철학의 언어분석적 방법은 자연과학적 방법으로는 도무지 해명할 수 없는 인간의 의식과 역사, 이해의 문제, 미적 체험 등을 규명하기 위해 제안된 것이다. 학문이 추구하는 진리와 사실이 더 이상 근대인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그렇게 편견이나 선입견, 세계관과 상관없이 따로 존재한다고는 믿어지지 않게 되었다. 어떤 사실이라도 그것은 늘 '해석된 사실'이고 일정한 동기와 관심, 기대 등에 의해 드러날 뿐이라는 것이다. 과학철학자 포퍼는 '기대'와 '추측'이 과학 이론 구성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감당함을 강조했고, 해석학을 주창한 가다머에게 있어서 선-판단(Vorurteil, 편견)은 제거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도리어 이해에 있어 필수적인 조건이다. 과학철학자 쿤이 주장한 '패러다임'이나 핸슨의 '이론이 탑재된 관찰'이론도 지식에 있어서 주관성의 필연적 우위를 강조하는 중요한 개념이다. 이처럼 현대 철학에서는 객관적인 사실 파악 보다는, 언어, 개념적 도식, 해석의 틀, 관점 등을 매개한 지식이 강조된다. 신앙의 우위와 기독교 세계관의 필요성을 말하기 유리해진 것이다.

현대 철학에서 두드러진 또 하나의 특징은 한없이 높아졌던 자아의 위상 실추에서 찾아볼 수 있다. 19세기 근대 관념론에서 최절정에 도달했던 인간 주체성 강조는 20세기 이후 집중포화를 맞아 '주체의 죽음'을 논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다. 특히 20세기 중반 이후 세계 철학계의 담론을 주도한 프랑스에서는 푸꼬 라깡 데리다 리요타르 등이 자아뿐만 아니라 아예 인간을 모든 것의 중심에 두는 휴머니즘 자체에 비판적인 반-인본주의, 그리고 이성 중심주의를 비판하는 반-이성주의를 내세우기까지 하였다. 이른바 '포스트 구조주의'로 통칭되는 이들의 철학은 각기 다른 스타일을 가지고 있지만, 자아와 주체를 세계의 기초가 아니라 오히려 사회적 관계와 언어를 통해 생산된 산물에 불과하다고 보는 입장에 있어서 공통점을 가진다. 자아는 자명성을 가진 유별난 존재자가 아니라 언어와 사회 속에서 구성되는 산물에 지나지 않는다. 정신분석학자 라깡은 언어가 세계와 자아를 구성하는 조건이라는 뜻에서 언어를 '초월적'이라고 부른다. 이와 같은 관점은 일찍이 "존재, 즉 사회-경제적 관계가 의식을 규정한다"고 본 마르크스나, "힘에의 의지가 만물의 근원"으로 본 니체, 그리고 자아를 무의식의 소산으로 본 프로이트의 사상을 계승한 것이라 하겠다. 포스트 구조주의 철학자들은 이런 반-이성주의 전통에 서서 주체의 탈중심화(푸코, 들뢰즈), 형이상학의 해체(데리다)를 철학 연구의 중심 과제로 삼는다.

한때 우상의 자리에까지 올라간 인간 주체와 과학의 위상을 끌어내리고, 신앙의 여지를 넓혀주었다는 점에 있어서 현대 철학은 기독교 신학에 우호적인 면이 없지는 않으나 그렇다고 해서 현대 철학의 여러 이론들을 무작정 친 기독교적이라고 환영할 수는 없다. 도리어 이들은 일체의 권위와 실체화에 대해 공격적인데, 그런 비판적 태도는 오랜 전통과 체계를 가진 기독교 신학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포문을 열 수 있기 때문이다. 신학은 철학과 언제나 이중적 관계를 가져야 한다. 상대의 장점과 신선한 통찰은 배우면서도 예리한 공격에 대해서는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어야 한다. 현대 철학의 다원적 사고, 구조적 사고에 대해서는 귀를 기울여 보다 넓고 깊은 시선을 갖춘 '포용의 신학'이 형성되도록 노력하는 한편, 유물론적-진화론적 시각으로 하나님과 교회를 부정하고 공격하려는 시도에 대해서는 적절한 반박을 통해 우리의 신앙을 변증해야 할 것이다.



안윤기 교수

장로회신학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