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M 황금기를 회상하며

CCM 황금기를 회상하며

[ 4인4색칼럼 ]

박종호 장로 webmaster@pckworld.com
2018년 04월 24일(화) 09:46

1987년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열린 극동방송 주최 제6회 복음성가대회에는 4천석 객석이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대상을 받은 나에게 천장에 달린 뜨거운 조명들은 마치 하나님이 나의 찬양을 기뻐 받으시는 것을 드러내는 듯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이후로 내 목소리를 통해 하나님만 노래하고 싶은 뜨거운 열정이 끊이지를 않았다. 이내 친구 최덕신의 작ㆍ편곡으로 나의 첫 독집 '살아계신 하나님' 앨범이 나오게 되었다. 

당시 나는 1980년대 미국의 최고 수준 오케스트라 연주자들이 만든 찬양앨범을 즐겨듣고 공부했다. 2년 뒤 1990년 세계적인 연주자들과 함께 나의 2집 앨범 '나를 받으옵소서'가 만들어졌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셨는지 그 앨범은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폭발적인 응원으로 대중음악과 클래식 음악계에까지 커다란 충격과 반향을 일으키게 되었다. 한 후배 기타리스트는 숙명여대 앞 레코드가게에서 일할 때 당시 젊은이들이 수준 있는 음반을 찾을 때면 당당히 박종호의 가스펠 앨범을 추천했고, 이를 듣던 비신자들도 사운드와 음악적 평가를 "국내 음악 중 단연 최고"라고 칭송했다며 당시를 회상하곤 했다.

흐믓했다. 세상의 그 어떤 음악도 흉내낼 수 없는, 비교할 수 없는, 세상 최고의 앨범을 하나님께 드리고 싶었다. 이렇게 미국 최고의 음악가들과 박종호의 30년 음반작업이 시작됐다

신기할만큼 1980~90년대 조국의 젊은이들은 나의 찬양앨범을 소중히 여기고 자랑스러워 해주었다. 뒤이어 미국 디즈니영화 프로듀서, 오케스트라 등과 지금까지도 작업을 이어지게 하셨다. 지금 뒤돌아보면 어떻게 당시 아파트 한 채에 가까운 제작비를 들여가며 음반을 만들 용기가 생겼을까 신기하기도 하다. 음악적 욕심으로 빚까지 내며 음반 제작을 하곤 했으니 말이다.

나의 힘으로 만들어 낸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의 앨범이 아닌 주님의 앨범임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

최근 앨범 '아름다운 세상' 작업이 끝났을 때 새벽에 흐르던 감격의 뜨거운 눈물을 생각하면 글을 쓰는 지금도 다소 흥분감을 느끼게 된다.

오페라 혹은 교향곡에나 있어왔던 서곡(Overture)을 12집 앨범의 첫곡으로 만든다며 나는 고집을 부렸다. 미국 오케스트라 편곡자에게 짧은 영어로 이리저리 설명하고 한달여간 수정을 거듭한 그 서곡(Overture)이 완성된 날 나는 참 많이 울었다. 그 곡은 청교도들이 배를 타고 광활한 바다에서 겪어야만 했던 일들을 상상을 하며 만들었다. 

나는 그저 열정으로, 최고의 음악으로 하나님을 멋지게 표현하고 싶었고, 그 결과물은 한국의 젊은이들 내면의 음악적, 신앙적 갈급함과 만나면서 엄청난 반응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나의 열정과 뜨거움이 도구로 사용되어진 그 시간들에 감사할뿐이다. 사실 그 열정마저도 하나님이 부어주신 것임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마음 속으로 다짐하고 다짐하며, 그리고 고백한다

"나의 앨범이 아니고 하나님이 주신 찬양앨범들이었다. 이 사실은 분명하다." 
그래도 감사한 것은 지금도 나의 앨범들이 오래 전 흘러간 앨범으로 여겨지지 않고 걸작품으로 회자될 때 하나님께 붙들려 쓰임 받은 종으로서의 자부심과 감사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박종호 장로
CCM 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