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열어주신 선교 현장

하나님께서 열어주신 선교 현장

[ 땅끝에서온편지 ] <1> 선교사로 부르신 하나님

김현두 목사
2018년 04월 17일(화) 14:21

나는 고등학교 때에 학생 수련회로 기도원에 가서 목회자가 되겠다고 서원을 했다. 그러나 신학대학에 합격을 했음에도 등록금이 없어서 학교를 다닐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학비를 벌어서 신학교에 가기로 하고 건설회사에 입사하여 중동 건설 현장에서 일을 했다.

쿠웨이트에서는 한인교회에서 중ㆍ고등부 지도교사로 봉사를 했고, 건설 현장에서는 현장교회에서 집사로 섬기면서 신앙생활을 했다. 항상 나의 기도제목은 '하나님 목회자의 길을 열어주십시오'이었다.

쿠웨이트 한인교회 선교사님을 통해서 선교사의 삶에 대한 도전을 받게 되었다. 그 다음으로 발령을 받아서 간곳이 이란 현장이었다. 이란 테헤란에서 한인교회로 사역하시는 서성주 목사님을 만나게 되었다.

이란에서 귀국 후에 신학교에 입학을 했고, 신학교에서 공부하는 동안에는 나의 꿈은 신학교 교수가 되는 것이었다. 신학교를 졸업 후에 나는 대전노회 소속인 남일중앙교회에서 목회를 하면서도 신학교 교수가 되기 위해 계속 기도와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러던 1995년, 어느 날 한국기독공보를 읽던 중에 안양노회에서 카자흐스탄 선교사를 모집하는 광고를 보게 되었다. 선교사 모집 내용은 '카자흐스탄 알마티 장로교신학교 교수 사역과 교회 개척 사역'이었다.

선교사 모집 광고를 본 순간부터 몇 주간, 나는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쿠웨이트에서 신앙생활하며 "만일 내가 목사가 된다면 선교사로 살아갈 것"이라고 했던 헌신이 주마등처럼 머리를 스쳐갔다.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를 했다. "하나님, 제가 선교사로 가야 하나요.", "제가 선교사로 헌신했던 그 때를 기억하시고 저를 부르시는 건가요?"

선교사에 대한 마음의 부담감을 덜어내기 위해서 아내와 상의를 하고 이력서를 안양노회에 제출하기로 했다. 만일에 하나님께서 나를 선교사로 부르신다면 안양노회에서 나를 선택을 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한국에서 목회하면서 신학교 교수를 위한 준비를 계속하는 것으로 결정을 했다.

1996년 봄 노회에 안양노회에서 신학교 동기이자 동생인 한00전도사의 목사 안수식에 참석을 하고 대전으로 돌아오는 도중에 휴게소에서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아내가 안양노회 설삼용 목사님께서 전화를 하셨는데 안양노회 선교사로 선정 되었으니 내일 노회에 참석하여 인사를 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소식이었지만 그 길로 집으로 내려가던 길을 돌려 안양으로 다시 올라가 노회 앞에서 인사를 하고 노회 세계선교부 임원들과 상의 후에 선교지를 답사하기로 했다.

1996년 7월에 처음으로 카자흐스탄 알마티 국제공항에 도착을 해서 받았던 첫 인상은 충격적이었다. 군복의 공항 공안들은 총을 어깨에 메고 있었고 높은 모자는 낮선 이방인에게 위압적으로 느끼기에 충분하였다.

가방을 열어 보면서 러시아어로 뭐라고 하는데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한 동안 짐을 조사하더니 나를 작은 방으로 데리고 가서는 "달러, 달러"하는 것이다. 지갑을 보여 주었더니 직원은 지갑을 빼앗아서 본인이 달러를 세어 보았다. 그리고 100$짜리 한 장을 자기 주머니에 놓고 가라고 했다. 너무나 황당했지만 어떻게 항의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나의 선교지 카자흐스탄의 첫 인상은 이렇게 공항에서부터 당황하게 하였다.

카자흐스탄 알마티 장로교신학교는 먼저 오신 몇 분의 선교사님들께서 1995년에 개교를 시작하여 운영을 하고 계셨다. 나는 한 달 동안 신학교 기숙사에 머물면서 학생들에게 시편 강의를 했다. 소련 공산주의가 붕괴되면서 이슬람의 나라 카자흐스탄은 경제적, 영적인 혼란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그 당시 내가 본 카자흐스탄은 하나님께서 열어주신 선교의 현장이었다. 사람들은 영적으로 목말라했고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하나님께서 나를 카자흐스탄으로 부르신 것은 하나님의 계획에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제 총회 선교사 훈련을 받고 카자흐스탄으로 돌아오는 길만 남아있었다.

김현두 목사
카자흐스탄
ABEN-EZER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