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4월 2~7일

[가정예배]4월 2~7일

[ 가정예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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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3월 29일(목) 10:22

월-사랑으로 맞서라
본문 : 마 5:38~42
찬송 : 146장

필자는 군복무를 마치고 고향교회를 평생 섬기기로 다짐하며 귀향했다. 목사님의 권유로 낙농을 시작했다. 이웃에 서울에서 귀농하여 낙농을 시작한 분이 있어 도움을 받았다. 그런데 그 분이 갑자기 소천하면서 그의 부인이 목장 터를 섬기던 교회에 헌납했다. 약 10년이 흐른 후 그 땅에 수양관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필자의 가족은 수양관 우측 끄트머리 약 1000평의 땅에 10년째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었다. 앞에는 내가 흐르고, 뒤에는 100년 가까운 수령의 소나무가 울창한 산이다. 누구나 탐을 낼만한 터였다. 필자는 그 곳에서 사향의 길을 걷던 낙농을 접고 결혼도 하고 가까운 시내에서 작은 사업을 하다가 신학에 입문하여 서울에서 전도사로 사역하고 있었다. 수양관 측에서 우리 땅을 사겠다고 했다. 우리는 수양관은 이미 충분한 땅을 확보하였다고 생각했으며, 또한 팔 생각이 전혀 없었다. 어느 날 수양관 측에서는 예고도 없이 중장비를 동원하여 우리 땅에 공사를 시작했다. 알고 보니 우리 땅으로 절반까지 들어와 있는 하천의 개발권에 대한 시청의 허락을 받고 공사를 시작한 것이다. 시골 땅은 하천이 밭으로, 밭이 산으로 올라가 실제와 도면이 다른 경우가 많다. 어이가 없었다. 차남에 이어 장남도 목회의 길을 가게 되자, 회갑이 넘어서 담배를 끊고 교회를 열심히 섬기게 된 선친이 "얘들아 우리가 양보하고 이사를 가자"고 하시는 말씀에 땅과 집을 수양관에 팔고, 수양관 반대편 땅을 사고 집을 지어 이사를 했다. 수양관에는 우리가 살던 집이 지금도 그대로 서 있다. 그때 선친의 결단이 얼마나 감사한지, 주님께 영광을 돌린다. 현재의 수양관은 수도권의 영성훈련장으로서 웅장한 모습이다.
선친의 그 결단이 은혜의 부메랑이 되어 오늘날 필자가 누리게 되었다. 필자의 부임한 교회가 단칸 상가 건물에서 예배하다가 반듯한 예배당으로 이전 봉헌하는데, 그 수양관을 운영하는 교회와 매우 깊은 관계에 있는 교회가 희년사업으로써 결정적 큰 도움을 주었다. 하나님은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맞서지 않고자 했던 선친의 뜻을 기억하시고 20년이 지난 오늘 아들의 목회의 길에 놀라운 은혜로 되돌려 주셨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삶은 '말씀하신 그대로'이셨다. 예수님께서는 오른편 뺨을 치는 우리에게 왼편도 돌려 대셨다.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우리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셨다.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는 우리와 십 리를 동행하시는 분이다. 원수 된 우리에게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지 않으셨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맞서는 우리 사회와 교회의 모습을 십자가의 예수님이 보고 계신다. 구하는 자에게 주고,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자.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신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늘 다시 말씀하신다. "맞서지 말고 사랑하라! 오직 사랑으로 맞서라! 너희도 나처럼!"

오늘의 기도
구하는 자에게 주고, 오직 사랑으로 맞서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범희 목사
늘푸른교회


화-기도는 대접이다
본문 : 마 7:12
찬송 : 342장

비판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아니면 살 수 없는데 하나님이 우리를 긍휼히 여기지 않으면 어떻게 살겠는가? 우리는 비판하지 않음으로 비판 받지 않고 은혜와 긍휼히 여김을 받는다.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 삶(시간)을 낭비하지 말라는 것이다. 동시에 거룩한 것 즉 하나님의 말씀이야 말로 깨달은 자에게 주신 하나님의 가장 큰 은혜인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를 귀히 여기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주시고 즉 은혜를 귀히 여기는 자에게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에 주시는 말씀이 기도하면 응답 받는다고 말씀하신다.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그러다가 갑자기 대접하라는 말씀이 나온다. '그러므로'는 앞에 있는 말씀을 전제로 그 다음을 말씀하신다는 것이다. 앞의 기도에 관한 말씀의 결론, 결과를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것이다. 사람은 대접을 받을 때 행복하고 대접을 받지 못하면 불행하다 여긴다. 우리의 삶은 결과적으로 대접하고 대접 받는 일의 반복인 것이다. 그러므로 대접하는 사람이 많으면 세상은 행복해진다. 하나님은 받는 자가 주는 자보다 더 행복하게 세상을 만들어 놓으셨다.
남을 행복하게 하는 사람은 반드시 행복하다. 반대로 남을 불행하게 하는 사람은 반드시 자신도 불행하게 된다. "너희도 남을 대접 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즉 성경의 핵심이라는 말씀이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대접하라는 것인가? 물질 존경 사랑 봉사… 결론적으로 최고의 대접은 기도라는 것이다. 사도 베드로는 미문에 앉아서 구걸하는 사람을 향해 이렇게 말한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곧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기도는 믿음의 최고의 표현이며 동시에 사랑의 최고의 표현이다. 기도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접하는 것이다. 부모님을 자주 찾아 뵙는 것 보다 더 큰 대접이 있을까? 하나님을 대접하는 것이 바로 기도다. 기도로 하나님을 대접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응답으로 대접을 해주신다. 이것이 바로 대접을 받고 싶으면 먼저 대접하라는 말씀의 원리인 것이다. 우리가 기도로 하나님을 대접하니 하나님은 우리에에 응답으로 대접해 주시는 것이다. 기도는 사탄도 성도를 능력있는 성도로 대접하게 한다. 즉, 사탄이 기도하는 성도에게 감히 덤비지 못하고 아예 멀리 떠나 버리는 것이다. 성도들도 기도하는 성도를 능력있는 성도로 대접한다. 기도는 최고의 대접이다.

오늘의 기도
성도 간의 기도로 서로 대접하게 하옵소서. 기도의 맛을 보고, 기도로 대접하고, 기도로 대접 받는 우리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조진현 목사
전주 새힘교회


수-마음에 새긴 사랑
본문 : 눅 2:15~19
찬송 : 160장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묵상하고 기억하는 사순절이 다 지나고 부활의 아침이 밝았다. 하나님의 뜻은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를 통해 이루어졌고, 온 세상에 구원의 기쁜 소식이 전해졌다.
이 모든 고난의 길을 지나 아버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까지, 예수님의 곁에는 함께 하는 이들이 있었다. 어릴 때는 아기 예수 곁에 마리아와 요셉 그리고 형제들과 동네 아이들도 함께 했을 것이고, 청년이 되어 공생애를 시작하셨을 때는 제자들과 더불어 예수님을 믿고 따랐던 사람들이 함께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 이후에, 회개하고 성령 세례를 받아 땅 끝까지 부활의 기쁜 소식을 증거 하는 증인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그러나 제자들은 때로 예수님을 배반하기도 하고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기도 했다. 만일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을 찾아 갈릴리로 다시 가지 않으셨다면, 제자들은 그렇게 영영 주님을 떠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들과 달리, 예수님의 출생부터 마지막 십자가 죽음과 무덤까지 예수님의 곁을 지켜준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바로 육신의 어머니 마리아였다. 아버지 요셉에 대한 기록은 예수님이 장성한 이후에 더 이상 성경에 나오지 않기에 알 수 없으나, 어머니 마리아는 예수님을 처음 품에 안았을 때부터 무덤까지 언제나 함께 한 것이다.
어머니는 한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 살아갈 수 있는 이유가 되고, 내가 세상에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 내가 어떻게 어른이 되었는지, 이 모든 과정을 설명해 줄 유일한 사람이다. 그래서 어머니는 자녀들의 말 한 마디, 행동 하나, 남들은 기억조차 하지 않는 사소한 것까지 다 기억하고 마음에 담아 둔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도 그랬다. 정혼도 하지 않았고 아직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어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는 천사가 전하여 준 수태고지를 마음에 곱게 담아두었고, 예수님이 태어났을 때 목자들이 전하여 준, 천사들이 들려준 아이에 대한 이야기도 누가복음 2장 19절을 보면 어머니는 마음에 새겨 두었으며, 열두 살이 된 예수님을 성전에서 잃어버렸을 때, 그 때 예수님께서 하셨던 말씀도 어머니는 마음에 간직하고 있었다. 어머니의 사랑은 마음에 간직한 사랑이다. 시간이 흘러 심지어 세월마저 변한다 해도, 변하지 않는 것 하나, 그것은 마음 깊이 간직한 한 자락의 사랑인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도 그렇게 마음에 간직해 사랑하는 것이고, 부활의 증인도 그렇게 마음에 새겨 살아가는 것이다. 부활의 기쁨을 증거하고 나누는 기쁨의 50일을 사시길 바란다.

오늘의 기도
사순절 주님의 고난이 모두 지나고 부활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우리 가슴에 새기고,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마음에 담아 살아가는 한 주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구영규 목사
송전양문교회


목-참된 지혜
본문 : 시 90:1~17
찬송 : 450장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기도다. 모세는 참으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사람이다. 어려서 나일강에 버려질 수밖에 없었고, 바로의 딸에 의해 극적으로 건져져 이집트 궁궐에서 왕자로 자란다. 40세에 정치적인 이유로 미디안 광야로 도망가 40년을 양치기로 지낸다. 80세에 출애굽의 지도자로 부름을 받아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을 향해 가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순종으로 40년 광야의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약속의 땅은 눈앞에 두고 그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출애굽 2세대를 여호수아에게 맡기고 느보산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게 된다. 오늘 본문은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며 깨달은 참된 지혜를 노래하고 있다.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는 지혜가 무엇인지 살펴보자.
첫째로 인간은 유한한 존재라는 것이다. 지혜란 우리는 유한한 존재임을 깨닫는 것이다. 티끌, 밤의 한 순간, 홍수처럼 쓸어간다, 잠깐 자는 것 같다. '70이요 80이다' 이런 고백들이 인간은 유한한 존재임을 말씀하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능력, 생명, 의에 있어 한계를 가지고 있다. 아무리 뛰어난 인간이라도 이 한계를 넘을 수 없다. 한계를 깨닫는 것이 지혜인 것은 그 때 비로소 하나님을 찾는 동기를 갖게 되기 때문이다.
둘째로 하나님은 영원하시다는 것이다.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다.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조성하시기 전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다. 주의 목전에는 천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경점 같을 뿐이다. 이런 말씀들이 하나님의 영원성을 말씀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능력에 있어서도 생명에 있어서도 의에 있어서도 한계가 없으신 영원하신 분이다. 세상의 모든 것은 시간이 지나면 다 변한다. 스러지고 약해지고 사라진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존재, 지혜, 권능에 있어 무한하시며 불변하시는 영원하신 분이다.  그러므로 마땅히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거처로 삼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아야 한다. 거기에 참된 평안이 있다. 생명과 구원의 기쁨이 있다.
셋째로 우리의 남은 날을 계수하며 살아야 한다. 모세는 남은 때를 계수할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기도하고 있다. 지혜는 우리의 남은 때를 아는 것이다. 남은 때를 알면 하루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가 달라질 것이다. 하루씩 줄어드는 날들을 바라보며 겸손해질 것이다. 인생을 함부로 낭비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우리의 남은 때는 얼마나 될까? 바로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순간이다. 이 시간 이후를 알 수 없다. 그러므로 나에게 확실히 남은 때는 지금 이순간이다. 그러므로 남은 때를 계수할 수 있는 지혜를 달라는 기도는 지금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선용하며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이끌어 달라는 기도인 것이다. 오늘 모세의 기도가 나의 기도가 되길 바란다.

오늘의 기도
매순간 하나님 앞에 서게 하시고, 내게 주어진 모든 것에 감사하며 신실한 청지기로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조영준 목사
태안교회


금-예수께서 오사
본문 : 요 20:11~29
찬송 : 368장

우리의 부활 신앙은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형이 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의 부활은 하나의 단순한 과거적 사건으로만 취급되어서는 안된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오시면 우리에게는 기쁨과 평강이 임한다.
첫째로, '예수께서 오사' 슬픔이 물러간다. 우리가 십자가의 예수님만 생각하면 마음이 슬플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신 십자가의 예수님인 동시에 부활의 예수님이시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죽음으로 인해서 너무나도 슬펐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리아가 슬픔에 잠긴 채 눈물만 흘리도록 내버려두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마리아를 찾아오셨다. "마리아야…" 그 음성은 너무나 친근한 음성이었다. 마리아가 평소에 듣던 예수님의 음성이었다. 예수님을 알아보았다. 이제 마리아는 더 이상 슬픔의 여인이 아니었다. 십자가의 예수님만 생각할 때 마리아는 한없이 슬펐다. 그러나 부활의 예수님을 뵙고 난 뒤 마리아의 얼굴은 기쁨으로 환하게 빛났을 것이다. 부활의 예수님은 막달라 마리아를 찾아오셔서 그의 슬픔을 깨끗하게 씻어주셨다. 그를 기쁨의 여인으로 만들어 주셨다. 다정하게 우리의 이름을 부르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들으시길 바란다. 모든 슬픔은 사라지고 기쁨으로 충만하시기를 바란다.
둘째로, '예수께서 오사' 두려움이 물러간다. 제자들은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은 사랑하는 제자들이 두려움에 떨며 지내도록 내버려두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부활하시고 그들을 찾아오셔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두 번 반복해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두려움을 물리쳐 주신 후, 제자들이 담대할 수 있도록 영적으로 무장시키셨다.
"성령을 받으라" 제자들에게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주셨다. 그때부터 제자들은 담대해졌다. 이후 그들은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할 수 있었다. 제자들처럼 부활의 믿음을 가진 우리는 성령 충만하여 두려움을 물리치고 담대하게 세상을 이길 수 있기를 원한다.
셋째로, '예수께서 오사' 보지 못하고 믿는 자가 된다. 제자들은 도마에게 기쁜 소식을 전했다. 그러나 도마는 의심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의심하는 도마에게도 찾아오셨다. 그리고는 도마에게 자신의 몸을 보여 주셨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분명하게 목격한 도마는 그 즉시 예수님께 자기의 신앙을 이렇게 고백했다.
"나의 주님이시오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그는 믿음의 사람이 되었다. 결국 제자로서 충성스럽게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했다.
도마처럼 우리도 그 모든 의심을 버리고 확고한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

오늘의 기도
예수께서 오사 슬픔과 두려움은 물러가고 믿음의 사람으로 부활의 축복을 누리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서영임 목사
산울교회


토-브라가-찬양하는 사람들
본문 : 대하 20:24~30
찬송 : 20장

찬양을 한다는 것은 예배한다는 의미와 동의어다. 이는 찬양하는 이가 나보다 높고 귀하다는 것이 전제되기 때문이다. 예배한다는 것은 우리는 인간이고 예배를 받으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은 하나님이시다는 선언이다. 예배는 최고의 헌신이다. 예배 가운데 찬양은 최고의 위치에 있다. 한국교회는 모든 예배가 설교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지만 예배의 최고의 백미는 찬양이다.
찬양은 단순히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니고 더구나 나의 노래실력을 드러내는 자리는 더욱더 아니다.
찬양은 예배의 자리에 있다. 이사야 43장 21절에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하신다.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라"는 말씀은 히브리 본문에는 '세페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이는 할머니가 손자들에게 전해주는 이야기 형식을 말한다.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다'의 내용이다. 그래서 일부 성경에는 송축하다(praise) 대신에 선포하다(proclaim)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진정한 찬양은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그 분의 구원의 역사를 노래한다. 나의 호흡이 그 분으로 말미암아 현재 쉬어지고 있음을 생명을 담아 노래하는 것이다.
본문은 여호사밧이 모압과 암몬 자손과 전쟁을 하는 중 감당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에 "우리를 치러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대하 20:12)에서 시작한다. 오직 주만 바라보았을 때 주님은 저들로 서로를 치게 하셨고 유다 사람들은 살았고 승리했다. 이 승리는 하나님의 승리이나 유다가 누리며 탈취물을 나누게 된다. 어찌 찬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 골짜기가 '브라가(찬양의 골짜기)'이다. 진정한 찬양을 드리는 자는 교만할 수 없다. 내가 이룬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찬양을 받으시는 분은 또한 어찌 은혜를 베푸시지 않으시겠는가?
야곱의 아들은 12명이다. 그 중에 하나님은 유다 자손으로 이스라엘의 왕을 삼아 다윗을 보내시고 다윗의 후손으로 그리스도가 오게 하셨다. 유다가 누구기에 하나님은 12형제 가운데 유다를 선택하셨을까? 창세기 29장에 야곱의 자녀들이 날 때를 기록한다. 자신의 기도제목이 그렇게 간절하던 기도제목이 허사가 된 것을 알고 난 레아가 "이제는 남편을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찬양하리로다"라고 선포하고 하나님을 찬양함으로 얻은 아들이다.
구원받은 이가 찬양을 하지만 찬양하는 자를 통해서 구원의 통로가 열린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시 136:1) 우리의 삶이 '브라가'가 되기를 소망한다.

오늘의 기도
주님을 찬양합니다. 주님은 선하시며 인자하심이 영원하십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강석보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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