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2월 26일~3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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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정예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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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2월 23일(금) 16:21

월-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본문 : 수 14:6~15
찬송 : 359장

요즘 흔하게 들을 수 있는 용어중의 하나가 N포세대이다. 도전과 패기가 넘쳐야 할 청년들의 일그러진 자아상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하는 듯하다. 분명한 사실은 환경이나 상황을 탓한다고 인생이 바뀌지는 않는다. 분노와 두려움, 부정적인 생각들을 바꾸지 않으면 결코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없다.

가나안 땅을 분배할 때 얼마든지 좋은 땅을 차지할 수 있었던 갈렙은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라며 내가 가서 험한 산지를 점령하겠다고 나섰다. 왜 그 험한 산지를 달라고 했을까? 그 땅은 비록 험한 곳이지만 약속의 땅, 믿음의 땅이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님께서 주시는 산지를 차지할 수 있을까?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100% 신뢰해야 한다. 본문 9~10절을 보면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원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는 여호와의 말씀을 믿었다고 말한다. 10절에서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대로 나를 생존하게 하셨나이다'라고 했다. 가나안에 들어갈 때까지 살아 있을 것이라고 약속하신대로 45년 동안 나를 지켜주셨다는 믿음의 고백이다. 또한 12절에 보면 그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라고 했다. 갈렙은 오직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살았던 사람이다. 우리에게도 하나님께서 주신 꿈과 약속이 있어야 한다. 작은 믿음, 의심하는 믿음으로는 산지를 차지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말씀을 100% 신뢰하는 온전한 믿음과 결단이 있어야 산지를 차지할 수 있다.

또한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야 한다. 12절을 보면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라고 했다. 갈렙은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면 비록 적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며 자신은 늙고 약하지만 험한 산지일지라도 정복할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복된 삶,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을까? 승리의 하나님,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야만 한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험한 산지도 기름진 옥토가 되고 거인도 밥이 될 수 있다.

또한 하나님을 온전히 좇아야 한다. 본문 14절을 보면 갈렙이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음이라고 했다. 갈렙의 신앙은 여호와를 온전히 좇는 믿음이었다.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다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 말씀을 직역하면 나는 나의 하나님 여호와의 뒤를 가득 채웠다는 뜻이다. 갈렙의 마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따라서 그 약속대로 가나안 땅이 정복될 것을 확실히 믿었다. 또한 약속의 말씀을 믿고 행동으로 따랐음을 의미한다. 나는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나이다. 나는 평생 하나님을 온전히 좇겠습니다. 이 고백이 산지를 차지하는 비결이다.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그릇이다.

오늘의 기도
우리에게도 꿈과 약속을 주시고 어떤 형편에서라도 항상 함께 하시는 주님을 바라보며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호민 목사
산정현교회


화-말씀 안에서 기쁨을 누리자
본문 : 눅 10:38~42
찬송 : 202장

삶이 바쁘다는 이유로 하나님과 교제하는 가장 중요한 시간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아야 한다. 바쁘다는 이유로 하나님과의 교제의 기쁨을 미루어서도 놓쳐서도 안 된다.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마르다와 마리아의 집에 들어가신다. 예수님이 집에 오시자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말씀을 들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일에 집중했다. 당시 여자들이 랍비에게 정식교육을 받을 수 없었던 풍습을 생각한다면 마리아의 행동은 파격적이었다. 그러나 마르다는 음식을 준비하는 등 예수님을 대접하는 일들로 분주했다. 마르다도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싶었지만, 준비해야 할 많은 일들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해야 할 많은 일을 신경 쓰지 않고 말씀만 듣고 있는 마리아에게 섭섭함이 생기고, 마음속에 불평이 자라게 됐다. 그래서 예수님께 자신의 불평을 이야기했다.
예수님은 마르다에게 불평의 근본적인 이유가 많은 일로 인한 염려와 근심에 있다고 말씀하신다. 마르다가 분주하게 예수님을 대접하려고 했던 모습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다만 예수님은 바쁜 일들 때문에 말씀 안에서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마르다가 안타까웠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마르다에게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의 대답은 마르다가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마르다가 분주함 때문에 말씀에 집중할 기회를 놓쳤음을 지적하셨다. 그리고 마르다에게 어떤 마음을 갖고 행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셨다. 그것은 마리아가 좋은 편(말씀)을 택했기 때문에 그 좋은 경험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말씀 안에서 기쁨을 누리기 원하신다. 또한 이 기쁨을 소중히 여기기를 원하신다.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라." 예수님께서 마을에 들어가신 목적은 가르침과 고침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기 위함이었다. 마르다는 예수님의 방문 목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불필요한 염려와 근심으로 좋은 것을 놓치고 있었다. 그러기에 음식 대접에만 열중했다. 하지만 마리아는 예수님의 방문 목적에 부합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듣는 일에 우선순위를 뒀다.

하나님은 우리가 말씀 안에서 기쁨을 누리기를 원하신다. 여러분의 생활에서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방해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그것을 없애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 우리가 말씀을 읽지 않고 순종하지 않는다면, 하나님 말씀 안에서 기쁨을 경험할 수 없다. 다른 여러 일을 하는 데 분주한 나머지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일에 소홀하지 않도록 자신의 생활 습관을 점검해 보기 바란다.

오늘의 기도
삶이 바쁘고 분주하다 할지라도 삶의 우선 순위를 두고 말씀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기쁨을 누리는데 소흘하지 않도록 날마다 하나님과 교통 교제하는 삶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현구 목사
대야제일교회


수-어떤 사람이 복을 받는가?
본문 : 마 5:1~4
찬송 : 427장

세상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남들보다 강해지고 남들보다 많이 차지하고 남한테서 피해를 당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고 있는 것은 오히려 정반대다. 심령이 가난한 자가 천국의 주인이 되고, 애통하는 자가 위로를 받는다고 말씀하신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앞서가는 사람이 아니라 긍휼히 여기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신다.

게다가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 땅에서 먹고 사는 것에 대해서는 자세히 설교하지 않으셨다. 왜 그러셨을까? 그것은 걱정할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오늘 분명히 말씀하신다. 놀랍게도 복을 받는 사람은 살기 위해 열심히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신다. 팔복의 주인공은 하나님 앞에 받아야 할 성품의 훈련을 받는 사람, 즉 신앙의 사람이 복을 받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신다. 우리도 그렇지만 이 말씀을 이스라엘 백성들도 믿지 못했다. 그들이 바벨론의 포로로 있을 때, 그들에게는 경제적인 문제가 있었다. 남의 나라에서 잘 살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뛰어난 부분이 있어야 했다. 신분의 문제도 있었다. 포로생활이었기 때문이다. 건강의 문제도 있었다. 결혼의 문제도 있었고, 자녀 교육의 문제도 있었다. 우리가 안고 있는 모든 문제를 그들도 안고 있었다.

그런데 그 모든 문제의 해결은 신기하게도 종교적인 문제에서부터 해결이 되었다. 에스라서에 보면, 하나님께서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자, 고레스가 온 나라에 조서를 내린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다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라는 것이다. 이것은 실로 파격적인 조서였다. 아무도 이런 방법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경제문제는 경제문제를 해결해야만 해결되는 줄 알았다. 신분문제는 신분을 상승시킬 만한 능력을 가져야만 해결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시자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의 문제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직장문제, 자녀문제, 교육문제도 이제 더 이상 문제가 아니었다. 예루살렘에 가면 모든 것이 다시 시작되기 때문이다. 새로운 신분, 새로운 직장, 새로운 나라를 세우면, 내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해야 할 새로운 삶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 모든 문제의 해결은 그들이 힘쓰고 애써서 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역사를 움직이시니 한꺼번에 해결이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신앙문제 하나로 우리 인생의 중요한 문제들이 줄줄이 다 연결되며 해결되는 것을 보게 하신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산에 올라 제자들에게 복을 받는 비결을 말씀해 주셨다. 하나님

앞에 받는 성품 훈련에서 뒤로 물러서지 말자. 기꺼이 마음의 가난함을 훈련받고, 애통함을 훈련받자. 온유함, 의, 긍휼, 마음의 청결함을 훈련받자. 그렇게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성품훈련을 받으면서, 우리 삶의 문제들이 줄줄이 해결되는 기쁨을 누려보자.

오늘의 기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성품으로 살아가고자 노력할 때 우리의 경제, 건강, 신분, 가정, 자녀 문제 등이 해결되는 것을 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지광용 목사
포항믿음교회


목-헵시바와 쁄라
본문 : 사 62:4
찬송 : 304장

성경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쓴 연애편지이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죄인인 사람에게 지극한 사랑을 고백하는 책이다. 그래서 도처에 우리를 사랑한다는 하나님의 사랑고백이 있고, 우리를 자랑스럽게 여기시며, 귀하게 여기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자긍심과 자존감을 높이신다.

본문은 구원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하신 말씀이다. "다시는 너를 버림받은 자라 부르지 아니하며 다시는 네 땅을 황무지라 부르지 아니하고, 오직 너를 헵시바(나의 기쁨이라/하나님이 좋아하시는 여인-표준 새 번역)라 하며, 네 땅을 쁄라(나의 사랑이라/결혼한 여인-표준 새 번역)라 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를 기뻐하실 것이며. 네 땅이 결혼한 것처럼 될 것임이라."

'그대는 나의 기쁨(애인), 그는 나의 사랑(아내)이라는 말을 언제 들어 봤는가?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기쁨과 사랑'의 대상으로 지으셨다. 그런데 범죄한 인간은 버림받은 자, 하나님을 떠난 자가 되었고, 인간이 사는 땅은 황무지처럼 경작하지 않으면 소출을 내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온갖 우상을 통해 영적으로 간음한 여인과 같은 죄인을 구원하신 다음 본문과 같은 말씀을 하신다. 순결한 사람을 구원하시고 하신 말씀이 아니다. 망나니, 죄인, 가망 없는 사람을 구원하시고 하신 말씀이다. 과거가 부끄러운 사람들을 구원하시고 하신 말씀이다. 하나님은 과거를 묻지 않으시고 다시 애인과 아내의 지위를 회복시켜 주시고, 극진한 사랑의 말씀을 주신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기쁨의 대상이 되며, 사랑의 고백의 대상이 될 수 있는가? 하나님은 회개하고, 죄 사함 받고, 구원받은 사람들을 보시고 너무 좋아하시고, 너무나 사랑하신다. 그래서 우리도 하나님의 기쁨의 대상이 되고 사랑의 대상이 되었다. 그럴 자격도 없는데 하나님은 우리 때문에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고 자랑스럽게 여기신다.

본문 말씀은 우리의 자존감을 높이는 말씀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버지의 집을 떠나 먼 나라로 갔던 둘째 아들처럼 하나님을 떠났던 우리가 돌아온 것을 반가이 맞으시고, 지위를 회복시켜 주시고, 여전히 귀하게 여기시고, 지극히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는 제한 없는 사랑을 베푸신다. 그렇게 되는 조건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이다.

하나님의 품을 떠나면 기쁨 대신 슬픔의 존재가 되고, 사랑 대신 미움의 대상이 되지만, 하나님께 회개하고 돌아오면 모든 것을 지으시고, 하나님이 특별한 사랑으로 지으신 우리가 여전히 사랑하고 기뻐하는 대상이 된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자신의 존재가치를 알고,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사랑하는 자랑스러운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한다. 자긍심과 자부심을 갖고 자신의 정체성이 분명한 사람은 어떻게 행할 것을 안다.

오늘의 기도
우리가 무엇이기에 이렇게까지 생각해 주시며, 이렇게까지 돌보아 주십니까? 받은 사랑에 합당한 삶으로 영광을 돌리는 우리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허강대 목사
단양교회


금-이웃을 기쁘게 하는 삶
본문 : 롬 15:1~3
찬송 : 459장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속에는 두 부류의 사람, 곧 강한 자와 약한 자가 공존하고 있다. 대체로 강한 자는 약한 자를 무시하며, 자신이 더 강해지기 위해 약한 자를 도구로 이용하고, 약한 자를 괴롭히기도 한다. 이와 같은 태도는 모두 사람을 외모로 취한 데서 나오는 행동들이다.

그런데 이러한 모습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이웃에게 사랑을 베풀어야 할 성도들에게도 나타나고 있다. 야고보서 2장 3절에 보면 외형적 조건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된 성도들을 평가하고 차별대우하는, 세상의 모습과 별 다름이 없음을 보여 준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내용은 우리에게 세상의 가치관과 전혀 다른 가치관을 보여주고 있다.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의 삶의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잘 가르쳐 준다.

첫째, 믿음이 강한 자는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해야 한다.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약한 자의 약점을 들추거나 공격하거나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약점을 믿음이 강한 우리가 담당해야 한다. 우리가 대신 그 약점을 짊어지고 도와주어야 하는 것이다.

둘째로 자기를 기쁘게 하지 말아야 한다. 교회에서나 세상에서나 강한 자들은 약한 자들을 멸시하거나 업신여김으로써 자신의 우월감을 즐기는가 하면, 반대로 그들을 돕고 고쳐 주는 선행을 통해서 자만심을 맘껏 즐기기도 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그렇게 자신의 유익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갈수록 그 사회는 더 강퍅해지고 어두워지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자기를 기쁘게 하지 말라"고 말씀하는 것이다.

셋째로 이웃을 기쁘게 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가 이웃을 기쁘게 해야 할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나니 기록된바 주를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함과 같으니라"라고 했다. 예수님은 우리보다 훨씬 강한 분이시고 위대한 하나님이시다. 그러한 분이 나같이 연약하고 부족한 자를 구원하시려고 이 땅에 친히 사람으로 오셨고 나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이 땅에 교회를 세우신 주님은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않으시고, 우리에게 구원의 기쁨을 누리게 하시려고 자신을 희생하며 우리를 섬겨주셨다. 그리고 주님처럼 우리에게 자기를 기쁘게 하지 말고 이웃을 기쁘게 하여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라고 요청하신다. 교회 안에서 믿음이 강한 자가 믿음이 약한 자를 섬기고 용납해 주기를 바라시는 것이다. 그렇게 다른 지체를 섬기는 그 섬김은 그 지체를 하나님의 온전한 자녀로, 성숙한 교회로 세워 가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의 기도
주님이 우리의 기쁨을 위하여 사신 것처럼 우리도 이웃을 기쁘게 하는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송경희 목사
백향목교회


토-살아나리라
본문 : 겔 37:1~6
찬송 : 151장

에스겔 선지자가 하나님의 영에 이끌려 한 골짜기로 갔다. 그가 본 광경은 참 놀라운 것이었다. 사방에 뼈들이 가득찬 골짜기의 광경을 보았다.
사방에 뼈가 가득하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그 골짜기에서 수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는 것이다. 그 뼈들은 아주 마른 뼈들이었다. 죽은 지 오래되었다는 의미이다. 죽은 지 오래된 뼈, 이는 아무런 희망이 없는 아주 오랜 옛 이야기 속의 상황이라는 의미이다. 아무리 중한 질병에 걸렸더라도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았다면 소생의 희망이 있다. 물에 빠져 숨을 쉬지 못하고 있더라도 인공호흡을 통해 소생할 수 있다. 그러나 뼈가 마를 정도라면 소생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이야기이다.

이 절망은 누구의 절망인가? 인간의 시각에서는 말할 필요도 없는 절망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점에서 이야기하면 얘기가 전혀 달라지게 된다. 요한복음 11장에 나사로 이야기가 있다. 나사로가 죽어갈 때 누이들은 예수님께 빨리 와달라고 전갈했다. 예수님은 일부러 늑장을 부린 것으로 보인다. 왜 그러셨을까? 인간의 절망이 아무리 깊어졌어도, 거기에 하나님의 희망이 있다는 것을 절실하게 깨닫기 위함이다. 오늘 말씀도 그렇다. 마른 뼈로 가득찬 골짜기. 그것은 당시의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모든 것이 끝난 상황이다. 성전이 우뚝 솟아있는 시온산.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 결코 망할 리 없다고 애써 믿었던 그 믿음은 헛된 것임이 드러났다.모든 것은 절망 뿐이었다.

그 상황 가운데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도록 명령하셨다. "뼈들을 향해 외쳐라! 내가 너희들 가운데 생기를 불어 넣겠다. 너희가 살아나리라. 힘줄이 생기게 하고, 살로 덮고, 피부로 감싸고, 생기를 넣어줄 것이다. 내가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리라!" 이 환상을 통해 하나님은 무엇을 말씀하시는가?
첫째로는 그들이 왜 마른 뼈가 되었는지를 알아야 할 것이다. 왜 나라가 망하고 이런 비극을 겪어야 하는지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노예로 살던 그들을 구원하여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하셨다. 40년이란 긴 시간, 공을 들여 그들로 하여금 오직 하나님 한 분 만을 바라보며 살도록 연단하셨다. 약속의 땅에서 여전히 하나님의 뜻 가운데 거하지 못하는 그들에게 계속해서 선지자를 보내셨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 실패했다. 그 결과가 마른 뼈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뼈저리게 느껴야 한다. 하나님께서 다시 회복의 은총을 베풀어 주신다면 그런 과오가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을. 하나님의 군대가 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한다는 사실을. 과거 죄의 종 노릇하던 절망적인 삶이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주님 앞에 잘 살아야 한다.

오늘의 기도
주님께서 그 고초를 겪으시고 십자가에 고난 당하신 것. 나의 죄로 인한 것임을 늘 기억하는 절기가 되기를 원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영수 목사
예천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