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12월 25~30일

[가정예배]12월 25~30일

[ 가정예배 ]

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2017년 12월 29일(금) 13:45

월-성탄은 큰 기쁨의 좋은 소식
본문 : 눅 2:8~14
찬송 : 117장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사람들은 누구나 좋은 소식을 기다리는 마음이 있다. 그러기에 늘 새로운 뉴스에 관심을 갖는다. 그런데 우리가 세상에서 듣는 많은 소식들은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나 기쁜 소식이 되는 것은 아니다. 상대적으로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러나 예수님의 탄생 소식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다(10절). 시공을 초월한, 인종도 남녀 노유도 빈부귀천의 차이도 없이 온 백성, 곧 모든 사람에게 기쁜 소식이다.
왜 예수님의 탄생이 기쁜 소식일까?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이 땅의 사람들에게는 평화가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창조하셨을 때, 피조물들에게서 영광을 받으셨으며, 사람도 하나님과 모든 피조물과 함께 평화를 누리면서 복되게 살았다. 그러나 인간의 범죄함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고, 행복도 평화도 기쁨도 소망조차도 잃어버렸다.
이러한 인생에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인생들을 그 죄에서 구원하심으로 하나님은 영광을 회복하셨으며, 인간은 상실했던 행복, 축복, 평화, 기쁨, 소망 등을 되찾게 되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탄생이야말로 큰 기쁨의 좋은 소식, 곧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되는 것이다.
도대체 우리 인생의 참된 기쁨은 어디에 있는가?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하박국 3:17~18) 아무것도 가진 것도, 남은 것도 없는, 소망조차 끊어지고 죄와 허물과 죽음의 공포와 전쟁의 두려움과 실패와 절망 가운데에서 참된 평안과 기쁨과 행복을 잃어버린 인생에게 오직 하나님과 그분이 주신 구원이 참 기쁨이 된다는 것이다. 성탄의 절기를 맞이해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의 좋은 소식으로 오신 예수님을 진심으로 회개하는 믿음으로 영접하여 주님이 주시고자 하는 자유, 곧 죄에서, 공포와 불안에서, 저주와 사망에서 자유를 누리고, 큰 행복과 평화와 기쁨과 소망 가운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 성탄 절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하나님께 감사하자. 구원의 은총을 감사하자. 하늘 영광 버리고, 인간의 몸으로 비천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찬양하자. 그리고 아직도 이 기쁜 소식을 모르는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자.

오늘의 기도
주님의 구속의 은총을 감사합니다. 암울한 이 세상에 소망의 빛이 되시고, 참 평화가 되시며, 참 기쁨이 되심을 감사합니다. 이번 성탄절에 하나님께 영광이 되며, 이 땅에 기쁨과 평화가 넘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형흠 목사
은석교회


화-하늘을 보라, 허리를 펴라!
본문 : 눅 13:10~17
찬송 : 592장

사람은 세월이 갈수록 허리가 굽는다. 허리가 굽는 원인이 무엇인가? 나이가 들어 뼈들이 약해지고, 노화되기에 허리가 휘고 굽는다. 또 무엇보다 짊어져야 할 짐들이 많고, 그 짐이 무거워서 허리가 굽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짊어져야 할 무거운 짐들이 무엇인가? 그것은 다 땅의 일이다. 땅의 일을 걱정하고 땅을 쳐다보고 살아가면 허리가 굽고 휠 수밖에 없다.
오늘 본문을 보면, 무려 18년 동안 귀신들려 등이 굽어 허리 한번 펴지 못하고, 꼬부라진 한 여인이 나온다. 이 여인이 어떤 여인인가? 16절 말씀에 '아브라함의 딸'이라고 되어 있다. 아브라함의 딸, 믿음의 딸이면, 당연히 아브라함처럼 하늘을 바라보면서 살아가야 한다. 그러나 이 여인은 18년 동안 허리가 굽어 하늘을 바라보지 못하고, 오직 땅만 쳐다보면서 살아왔다. 곧 땅의 일만 걱정하면서 땅만 쳐다보면서 살아왔던 것이다.
이런 여인을 예수님께서 보셨다. 예수님은 무엇 때문에 하늘을 바라보지 못하고 땅만 쳐다보고 살았는지 다 보셨다. 보시고, "여자여 네 병에서 놓였다"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놓였다'는 것은 '풀려났다. 해방되었다'는 뜻이다. 지금까지 땅만 쳐다보고 살아왔던 이 아브라함의 딸이, 주님을 만나고 주님을 보게 되자, 비로소 허리가 펴지고 삶이 펴져, 하늘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었다.
예수님께서 왜 이 땅에 오셨는가? 오직 땅만 쳐다보고 땅의 일만 생각하는 자들에게, 하늘을 보며 살도록 하기 위해서 오신 것이다. 예수님은 무거운 짐 때문에 삶의 허리가 굽고 휜 자들이, 삶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도록 대신 허리를 굽히셨다.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인, 이미 죽어 시체로 침대에 누워있는 소녀에게,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에게 예수님은 치유를 주셨다. 이렇듯 수고하고 무거운 짐 때문에 허리가 굽은 우리를 위해서 우리 주님께서 대신 허리를 굽히신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골로새서 3장 1절 이하 말씀에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 보좌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보이지 않는 영원한 하늘의 것들을 생각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다. 눈앞에 있는 것, 땅에 있는 것을 잡기 위해 바둥바둥 거리면 안 된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언제나 멀리 보는 사람이요, 하늘을 보는 사람이다. 하늘을 쳐다보면 감사와 용기가 생긴다. 허리가 펴진다. 하늘을 보고 감사하면, 무거운 짐들이 깃털처럼 가벼워지고 당당해진다. 오직 감사로 삶의 허리가 펴지는 은혜가 있기를 바란다.

오늘의 기도
하늘의 것, 위의 것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박장덕 목사
도원교회


수-영적 우물에 포기는 없다
본문 : 창 26:19~33
찬송 : 347장

아버지 아브라함이 파놓은 우물들이 흉년을 만난 아들 이삭을 살렸다. 그렇다고 이삭이 아버지가 파놓은 우물로만 산 것은 아니다. 자기도 우물을 판다. 그랬더니 샘 근원을 얻었다. 그런데 그랄 사람들이 와서 자기네 것이라고 우기고 싸운다. 결국 그 우물을 빼앗기고 다른 곳으로 떠나야 했다. 이삭은 또 우물을 팠다. 그랬더니 또 그랄 사람들이 와서 빼앗았다. 하지만 이삭은 또 우물을 판다.
왜 빼앗기는데도 이삭은 계속 우물을 팔까? 현재만 보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보기 때문이다. 자신이 판 우물을 통해 자녀 세대가 사는 미래! 이삭은 흉년의 때에 그 진리를 뼈저리게 경험했다. '내가 아버지의 우물 때문에 살았다면, 나도 내 자녀에게 물려줄 우물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지금 당장 자신이 마시지 못해도, 심지어 어떤 세력이 우물 파는 것을 방해한다 해도 절대 우물 파는 것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각오가 있었던 것이다. '누가 방해해도, 마귀가 어떤 식으로 방해해도 절대로 신앙의 우물을 파는 것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라는 각오가 있는가?
마귀는 우리가 신앙의 우물을 파는 것을 내버려두지 않는다. 어떻게든 그걸 막으려고 우리가 실망할 만한 일들을 꾸민다. 기도하고 집에 갔더니 남편이 만취해서 사고를 치고, 예배하고 집에 돌아갔더니 애들이 크게 다치고, 아침에 큐티하고 출근했더니 일이 어긋나 있다. 마귀는 그 때 우리의 귓가에 속삭인다. "기도해도 소용없는데? 예배하고, 말씀 붙들어도 안 되는데?" 그때 우리의 심령 깊은 곳에서부터 믿음의 각오가 터져 나와야 하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기도하기를 쉬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배하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고, 계속해서 말씀의 우물을 팔 것이다!
왜 그런가? 신앙의 우물에서 솟아나는 생수가 결국 우리를 살리고, 우리 자녀세대를 살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삭은 빼앗겨도 다시 판다. 결코 멈추지 않는다. 그러자 오히려 그랄 사람들이 포기한다. 오히려 마귀가 물러난다. 그리고 하나님은 축복하신다.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넓게 하셨으니!(창26:22)"
그러므로 신앙의 우물에 포기란 있을 수 없다. 지속적으로 기도의 우물을 파고, 지속적으로 예배의 우물을 파고, 지속적으로 말씀의 우물을 파고 헌신의 우물을 파야 한다. 그러면 그 우물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와서 나를 살리고, 내 자녀 세대를 살리고, 주님의 교회를 살린다.

오늘의 기도
나를 실망케 하는 일들이 벌어져 낙심될 때에도 결단코 신앙의 우물을 파는 일을 멈추지 않겠습니다. 더욱 기도하고, 예배하고, 찬송하겠습니다. 지속적으로 신앙의 우물을 파겠습니다. 마침내 하나님의 역사를 보게 하실 줄 믿으며,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박경훈 목사
큰숲교회


목-큰 기쁨의 좋은 소식
본문 : 눅 2:8~14
찬송 : 104장

천사들은 목자들에게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전해준다.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은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다"라는 소식이다. 그들에게 들려준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오늘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다.
첫째, 구원의 기쁜 소식이다.
하나님은 주의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다. 구원의 기쁜 소식은 우리의 슬픔과 탄식을 몰아내고 죄의 매임에서 풀어주시며 죄로 황폐한 백성들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심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켜 주었다. 구원의 기쁜 소식은 우리에게 영생의 복을 허락해주셨으며 주의 백성들은 주님이 오심으로 구원의 풍성한 은혜를 경험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우리가 겪는 환란과 핍박, 원망과 좌절, 수많은 역경 속에서도 우리가 기뻐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구원의 은혜이다. 구원의 기쁜 소식을 들은 자는 오신 예수님을 영접하고 순종하며 온전한 믿음을 가지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제자의 삶을 살아내야 한다. 구원 받은 우리는 거듭남의 삶을 멈추지 말고 잘 연단되고 훈련된 복음전도자의 사명을 다해야 한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  주님 오시는 날까지 큰 기쁨의 좋은 소식 복음은 계속 전하여 지며 구원의 역사는 계속 될 것이다.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들은 우리는 때를 분별해야한다. 지금은 참회개자로 기도를 쉬지 말고 복음을 전하며 신실한 예배자로 회복되어야 한다. 큰 기쁜 좋은 소식을 들은 모두는 복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 이웃들이 예수님의 손길을 느끼도록 우리가 이웃을 섬기고 사랑하자.
둘째, 평안의 기쁜 소식이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은 말씀대로 하나님께 영광,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들에게 평화의 왕으로 오셨다. 진정한 평안은 죄에서 구속 받은 것이며 이것은 진정한 자유이며 평안이다. 반대로 죄로부터 메여 있는 인생은 평안을 상실하고 지옥의 삶을 살아간다. 고난의 짐을 풀어버리는 것이 고난으로부터 평화다. 지옥의 삶에서 천국의 삶으로 옮겨진 자는 죽음으로부터 평화다. 이 세상의 산재한 걱정과 근심, 염려, 두려움, 끊임없는 굴레 속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이런 세상 속에서는 기뻐하며 살 수 없다. 경쟁 속에 사는 사람들은 힘 있고 권력 있는 사람들, 맘몬을 의지하려고 한다. 그러나 그런 것을 의지한다고 해서 결코 해결될 수 없다. 문제는 문제를 낳고, 사건은 더 큰 사건을 불러온다. 이런 연속성 속에서 점점 평안은 상실되어 간다. 하나님은 본문을 통해 우리들에게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들려주신다. 이 구원의 기쁜 소식과 평안의 기쁜 소식은 구원에 목말라 하고 평안을 잃어버린 자들에게 구세주가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이다.

오늘의 기도
구원의 기쁨과 평안의 기쁨이 모두에게 함께 해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경희 목사
밀알교회


금-성탄의 선물
본문 : 마 2:9~12
찬송 : 111장

즐거운 성탄이 또다시 돌아왔다. 왜 성탄이 기쁜 것인가? 예수께서 오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구원받았기 때문이다. 구원받음에 대한 감사는 어떤 고귀한 예물로도 모자란다. 예수님께 드릴 고귀하고 합당한 예물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것은 변하지 않을 믿음과 순종으로 살아가는 향기로운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하나님의 구원계획이 인간의 역사 가운데 현현하셨다. 영원이 시간 속으로 들어오셔서 세상 시간의 원년이 되신 것이다. 여러 나라와 민족들이 사용하던 각기 다른 달력들은 주의 나심을 정점으로 일원화되었고, 세상의 시간은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말미암아 BC에서 AD로 바뀌게 되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들도 이제 주님 오시기 '이전'에서 '이후'로 변화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성탄을 통해서 우리에게도 놀라운 선물을 주신다. 첫째, 온 우주의 왕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언제나 함께 하신다는 약속이다. 그곳이 어두움이더라도, 외로운 곳이라도, 죄악의 감옥에서 허덕이는 자리일지라도 주님이 함께 하신다. 둘째, 우리 각자에게 신성한 위치를 주셨다. 그리스도께서는 건강한 자들을 위해서 오시지 않고 병든 자들을 위해서 오셨다고 했다. 어두움 속에 앉아 있는 모든 사람, 외로움과 압박감 속에서 떨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자유와 기쁨을 주시려고 오셨다고 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그 낮은 구유와 같은 자리에 서 있으라 말씀하신다. 그들과 함께 하고, 함께 울고, 함께 기쁨을 나누라 하신다. 가장 겸손한 인생이 가장 신성한 위치인 것이다. 셋째 선물은 평화다. 예수님 당시에 'Pax Romana'라는 말이 유행했다. 그것은 로마의 평화라는 뜻이다. 로마제국은 자기들의 통치에 의해서 전 세계가 평화롭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것은 공포와 군국주의 무력과 힘에 의한 협박에 의해서 만들어진 평화였다. 오늘날의 시대도 평화롭게 또 여유롭게 사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범죄는 증가하고, 개인주의는 팽배하고, 진정한 평화를 누리지 못한다. 우리는 주님의 성탄을 통해 이 사실을 다시 확인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것과 다르다. 예수님의 평화는 그분과 아버지 하나님과의 하나됨에서 오는 것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성부의 뜻 안에서 사셨고, 또 성부의 뜻은 그분 안에 계셨다. 우리가 그리스도께 나아가 그의 영을 우리 안에 진실로 모시면 우리에게는 세상의 평화와는 다른 내적인 평화를 누리게 된다. 이번 성탄절은 리셋(reset)의 축복을 받으시기 바란다. 오늘 주님이 탄생하신 이 날을 기점으로 우리의 신앙과 믿음과 인격이 주님이 나를 부르시고 구원하신 그 시점으로, 감사와 기쁨이 넘치고, 의욕과 소망이 가득한 초대교회 성도처럼 신앙의 초기화, 사명자로서의 초기화 되는 축복을 받기 바란다.

오늘의 기도
변치 않는 황금 같은 믿음과 순종, 그리고 그리스도의 향기 나는 삶으로 예물 드리는 우리 모두 되게 하여 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노태윤 목사
번암교회


토-너는 겨울 전에 어서 오라!
본문 : 딤후 4:9~22
찬송 : 527장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겨울 전에 어서 오라." 바울이 사랑하는 디모데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이다. 디모데후서는 바울이 순교하기 얼마 전, 최후로 기록한 서신이다. 바울은 감옥에 있었고 그의 사랑하는 제자 디모데는 에베소에 있었다. 바울을 도와주던 제자들 가운데 데마는 세상을 사랑해서 다른 곳으로 가버렸고 다른 제자들은 일이 있어서 다른 곳으로 보내졌고, 바울을 도와준 사람은 누가 한 사람뿐이었다. 바울은 어둡고 추운 감옥에서 겉옷이 필요했다. 멀리 드로아 가보의 집에 자기 겉옷과 책을 두었는데 그것도 빨리 가져오면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디모데를 생각했고 디모데가 필요했다. 자신의 마지막이 임박한 것을 예감했다.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그래서 디모데가 더욱 보고 싶었다. 특별히 겨울 전에 오라고 조건을 붙였다. 겨울 동안에는 항해를 할 수가 없었다. 우리 인생에도 겨울이 있다. 기회는 한 번 지나가면 찾을 수 없다.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때가 있다.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전 3:1)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마 25:3,4)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 때를 놓치면 안된다. 준비할 기회가 있을 때 잘 준비해야 한다. 즉, 기회가 지나가지 전에 마땅히 할 일을 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기회 주실 때 모든 것을 해야 한다. 하나님이 주시는 기회는 모든 영역에서 다양하다. 결혼, 공부, 효, 성경적인 결혼생활, 사역, 직업, 봉사, 전도, 회개 등등 다양한 영역에서 기회를 놓치지 말고 잘 감당함으로 아름다운 열매를 맺어야 한다.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에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 6:2) 지금이 구원의 날이며 영원의 순간이다. 모든 삶과 사역의 현장 가운데 오늘 이 순간을 구원의 날과 영원의 순간으로 삼자. 개인의 삶과 아내와 남편과의 관계 그리고 가정생활,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교회를 세우고 섬기는 사역 등에서 우리의 운명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순간이 바로 지금이다. 바로 지금 은혜와 구원의 현장에 동참하자.
과거에 어떤 죄를 지었든지 과거에 어떤 생활을 하였든지 그것이 중요하지 않다. 정말 중요한 것은 지금이다. 지금 온전히 회개하고 돌이키는 것이다. 주님 앞에서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남이 필요하다. 다시 우리를 향해 주시는 하나님의 기회를 놓치지 말자.

오늘의 기도
천하에 범사에 기한이 있고 때가 있으니 하나님께서 주신 오늘 하루를 살면서 주신 사명들을 잘 감당하며 최선을 다해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박재학 목사
광명교회

 

우리교회
가정예배
지면보기
인기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