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11월 27~12월 2일

[가정예배]11월 27~12월 2일

[ 가정예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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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24일(금) 17:40

월-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본문 : 창 1:31
찬송 : 319장

하나님은 6일 동안 온 우주 만물을 만드신 후 창조하신 세계를 바라보며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하셨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위임하신 세상을 어떻게 하면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았던 세상으로 회복할 수 있을까?
첫째, 존재하는 모든 것이 제 위치에 있을 때. 존재하는 모든 것은 제 자리에 있을 때 아름답다. 가정이 어려울 때 묵묵히 자리를 지켜준 아내가 아름답다. 나라가 어려울 때 자기 위치를 지키며 소임을 다한 지도자가 아름답다. 교회가 어려울 때 변함없이 자기 자리를 지키는 직분자가 아름답다. 우리 사회가  이만큼 살만한 것은 성실하게 자기 자리를 지켜주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제 위치에 있을 때, 각자의 사명을 감당할 때, 창조의 목적을 이루며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은 것이다.
둘째, 하나님께로 거룩하게 구별될 때. 하나님은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하셨다. 하나님의 창조 사역은 구별로 시작된다. 하나님은 낮과 밤을 구별하시고, 땅과 바다와 하늘을 구별하셨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 만물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었는데 구별될 때 혼돈은 질서로, 공허는 충만으로 흑암은 빛으로 바뀌었다. 하나님은 여전히 구별을 통해 계속 창조하고 계신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던 피조세계가 왜 이처럼 망가졌는가? 하나님 쪽으로 구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하나님께로 구별된 사람이 하나님을 닮아간다. 능력 있는 사람이 되어 간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사랑하시고 자신의 전권을 위임하실까? 시간과 장소와 물질을 하나님께로 구별할 줄 아는 사람, 세상의 한복판에서도 자신을 구별하여 삶 속의 예배자로 사는 사람이다. 천지창조는 모든 피조물이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을 구별하여 제 위치를 지킴으로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던 것이다.
셋째, 하나님의 주인 되심을 인정할 때. 인간이 에덴을 상실한 것은 피조물의 자리를 벗어나 주인이 되고자 교만했기 때문이다. 아담과 하와가 겸손히 하나님의 주인 되심을 인정할 때는 왕권과 제사장권과 에덴의 모든 기업이 주어졌다. 하나님처럼 정복하고 다스릴 수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주 되심을 인정하지 않을 때, 선악과를 따먹을 때, 그들은 하나님 같이 된 것이 아니라, 타락하여 모든 것을 상실했다. 구약에서 신발을 벗는다는 것은 종 됨을 의미한다. 모세는 하나님의 주되심을 인정하고 신발을 벗을 때, 비로소 광야가 끝났다. 여호수아가 신발을 벗을 때, 원수들은 진멸됐고 가나안을 기업으로 얻었다. 인간은 결코 주인이 아니다. 하나님이 우주만물의 주인이시다. 인간은 그것을 맡아 가꾸는 관리자요 대행자일 뿐이다. 그것을 인정할 때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아름다운 세상이 될 것이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위임하신 세상을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았던 세상으로 회복하는 일에 쓰임 받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채영희 목사
사랑나눔교회


화-찬양 공동체
본문 : 출 15:19~21
찬송 : 31장

본문은 홍해와 애굽의 위협에서 구원 받은 이스라엘 백성이 집단적으로 춤을 추며 기뻐하는 내용이다. 하나님의 능력과 구원을 경험한 자들이 누리는 특권이다.
하나님의 구원은 현재진행형이다. 이스라엘 민족을 택하셨고 구원하셨을 뿐 아니라 여전히 인도하신다. 출애굽기 14장은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너는 장면을 소개한다. 구원 받은 백성이지만 다시 문제를 만났다. 앞에는 넘실대는 홍해, 뒤에는 다시 쫓아오는 애굽 군대이다. 그 위기 앞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하나님을 찾는 것이었다. 하나님을 향한 호소에 하나님은 다시 은혜를 베푸셨다.
성도는 구원받은 자이다. 구원은 과거의 완성일 뿐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다. 성도가 현실 속에서 만나는 문제 앞에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다면 구원은 과거의 화석과 같이 된다. 생명력이 없고 기쁨도 감격도 없다. 예배는 타성에 젖고 만다. 현재진행형의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십자가에서 구원받은 자일뿐 아니라 오늘도 구원과 은혜가 필요한 자임을 고백해야 한다. 가정 안에 넘실대는 홍해같은 문제가 있는가? 해결할 수 없는 애굽 같은 마귀의 공격이 있는가? 다시 믿음으로 기도하라. 그러면 하나님은 현재진행형으로 구원하시고 은혜를 베푸신다. 하나님을 현재진형행으로 경험할 때 본문에서 보는 찬양과 춤은 우리의 것이 될 것이다. 찬양과 감사는 성도의 특권일뿐 아니라 우리에게 특별한 유익을 준다.
첫째, 찬양과 감사는 우리를 하나님과 하나 되게 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구원을 경험한 뒤 모세와 함께 노래하고 미리암과 함께 춤을 추며 하나님을 기뻐할 때 비로소 믿음의 백성이 된다. 찬양과 감사는 믿음의 표현이다. 하나님의 위대함을 기뻐하는 찬양과 감사가 있을 때 성도는 성도다워진다. 교회는 교회다워진다. 소요리문답 첫 번째 질문에서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그를 즐거워하는 것임을 가르친다. 현재진행형의 구원과 은혜를 경험하고 찬양과 감사로 믿음을 표현하는 활기찬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란다. 
둘째, 찬양과 감사는 공동체를 하나 되게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집단적으로 하나님을 찬양할 때 온전한 믿음 공동체가 되었다. 동아시아 선교사로 사역할 때의 일이다. 일 년에 한 번씩 태국에서 선교사대회를 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찬양 시간이었다. 피부가 다르고 언어가 다르며 문화가 달랐지만 동일한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동일한 능력, 동일한 구원, 동일한 은혜를 찬양하는 동안 우리는 진정 그리스도의 한 몸이 되었다. 마치 오래전부터 함께한 사람들처럼 느껴졌다. 찬양은 성도를 하나 되게 한다. 찬양은 교회를 하나 되게 한다. 가정마다 교회마다 찬양과 감사를 회복하여 하나됨을 경험하기를 바란다.

오늘의 기도
오늘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며 찬양하는 가정이 되게 하소서. 찬양함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하나님과 하나됨을 경험하게 하소서. 찬양과 감사가 회복됨으로 우리의 가정이 주 안에서 하나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황성은 목사
제주한빛교회


수-빈 들의 은총
본문 : 막 6:35~44
찬송 : 304장

하루하루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에 어느 날이고 평안한 날이 없는 요새 세상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안해 보이는 사람들도 내면에 흐르는 광야 같은 마음의 허전함이 있다. 그것이 육체적 질병으로 인한 것이든, 물질적 가난 때문이든, 아니면 이웃관계이든 마음에 상처 하나정도는 누구나 갖고 살아가는 세상이다.
최근 몇 주간 혹시 다양한 빈들의 시간을 보내신 적이 있는가?
제자들은 "때가 저물어가매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여짜오되 이 곳은 빈 들이요 날도 저물어가니"라고 묻고 있다. 빈 들은 광야, 한적한 곳을 말하는데 영어성경에서는 일반적으로 인간의 삶의 내용과 관련된 의미로 다양하게 번역되고 있다.
이것은 단순히 지명으로서의 광야가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인간의 삶과 마음의 한 분기점이기도 한 뜻있는 단어다. 즉 더불어 살아야 하는 사람이 없는 곳, 인생의 여정에 필요한 것들이 채워지지 않는 곳, 의지할 데 없는 곳이 바로 '빈 들'이다. 날은 저물고 사람들은 수만 명이 모였고, 먹을 것은 없는 상황, 이보다 더 절박한 상황이 어디 있겠는가? 제자들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에 주님에게 질문하기 시작한다. 인간의 의식주 문제는 그 누구도 해결할 수 없는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것이다. 이에 주님의 말씀과 행동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의 문제의 본질적인 해답을 주시고 있다. 수요와 분배, 곧 나눔의 원리를 일깨워주시고 있다. 주님은 분명히 제자들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하셨다. 주님은 그들이 돈이 없었던 것을 아셨고, 그럼에도 제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하신 것이다.
오늘날도 빈 들과 같은 상황에서 외롭고 쓸쓸하게 살아가는 백성들에게 생명양식을 공급할 수 있는 사역은 그리스도인의 몫일 것이다. 그것이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영적이든 그리스도인은 고난 받는 백성들에게 생명양식을 공급해야 할 사명이 있는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이와 같이 주님이 말씀하시는 그리스도인의 사명 수행에 대하여 우리는 핑계하는 존재들이다. 그러나 주님은 계속 말씀하시기를 "너희에게 떡이 몇 개나 있느냐. 가서 보라." 그리고 제자들은 비로소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 떡 다섯 개가 있음을 보고하고 주님은 축사하신 후 무리들에게 나누어주라고 하여 그 말씀대로 순종함으로써 그 많은 백성들이 배불리 먹고도 12광주리가 남았다고 결론을 맺는다.
우리가 소유한 것은 내 것이 아니라 다 주님의 것이다. 누구 손에 있든, 누가 소유하고 있든, 그 모든 것의 주인은 주님이다. 주님은 주님의 것으로 모든 백성들을 먹이고 입히시는 것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으로 주님은 역사하신다. 그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은 주님의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의 기도
빈 들과 같은 우리의 삶 가운데 친히 찾아오셔서 우리로 하여금 빈 들의 은총을 입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상동 목사
동고교회


목-감사를 회복하라
본문 : 눅 17:11~19
찬송 : 589장

대학교와 요양보호사교육원에서 사회복지학 강의를 했었다. 학생들 중에서 복지시설을 운영하고자 하면 컨설팅을 해주고 힘이 닿는 만큼 도와주었다. 그렇게 도움을 받은 학생들은 시설을 운영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들 중에는 본인이 사회복지 공부를 하고 자격을 갖추었기 때문에 시설장이 된 것으로 생각하고 도움을 받은 것에 대하여 감사하지 못하고 잊어버리는 것이 아쉬웠다.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에 있는 한 마을에 열 사람의 나병환자가 있었다. 아홉 사람은 유대 사람이고 한 사람은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들과 격리되어 살아갈 희망마저 잃어버리고 살아가던 어느 날, 예수님께서 그들이 사는 마을로 들어오시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들은 예수님이 치료의 능력자임을 알았지만 예수님께 감히 가까이 갈 수 없었다. 그러나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생각에 멀리서서 용기를 내어 큰 소리로 외쳤다.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예수님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고 하셨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제사장을 만나기 위해 길을 떠났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그들이 길을 가는 도중에 고침을 받고 깨끗해졌다. 고침 받은 열 명 중에서 이방인이었던 사마리아 사람은 가던 길을 돌이켰다.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서 예수님께로 돌아와서 발아래 엎드려 감사를 했다.
18절에서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고 물었다. 본문에서는 아홉 명의 유대인들이 어디에 있는지 기록되지 않았지만 여기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병을 고침 받은 그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감사를 드린 사마리아 사람에게 축복하셨다.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감사를 드린 사마리아인은 육체의 질병 뿐 아니라 영적인 구원까지 덤으로 얻게 되었다.
예수님께서 원하신 것이 무엇이었을까? 감사를 원하셨던 것이다. 우리는 마땅히 감사하여야 함에도 감사하지 못할 때가 있다. 본문에 나온 아홉 명의 유대인들이 그랬다. 그러면 왜 그들은 감사하지 못했을까? 예수님의 은혜로 고침을 받았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자신들의 행위로 고침 받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의 타락성 때문이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라고 했다. 그러므로 매사에 은혜를 기억하며 그 은혜에 감사할 줄 아는 행복한 삶을 살아가시기 바란다.

오늘의 기도
어려운 시국에도 불구하고 감사할 일은 많음을 고백하오며, 감사해야 할 때에 감사할 줄 아는 성도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 생명의 주인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신세신 목사
부광교회


금-생명을 살리고 교회를 살리다
본문 : 행 9:23~31
찬송 : 500장

성경은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말씀한다. 그 말씀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선을 이루기 위해서 협력하는 관계이다. 오늘 말씀을 보면 그 사실을 더욱 확인할 수 있다.
첫째, 제자들의 도움. 사울은 원래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는 사람이었다. 그 열심이 얼마나 특별했던지 대제사장의 허락을 받아 다메섹까지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러 갈 정도였다. 그리고 그 도상에서 예수를 만난 후 그의 삶이 변한다. 핍박자에서 전도자가 된 것이다. 이런 사울의 변화에 당혹해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유대인들이다. 유대인들은 사울을 죽이려고 결정하고 밤낮으로 성문을 지키기 시작했다. 사울이 이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다메섹의 이름 없는 제자들의 도움 때문이었다. 그들이 어둠을 틈타 사울을 광주리에 담아 성벽에서 달아내려 주었던 것이다. 이후 사울이 이방인을 위한 위대한 사도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이렇게 다메섹에서 활동했던 이름 없는 성도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여러분들이 오늘 이 자리에 오기까지 누구로부터 어떤 도움을 받았는가? 오늘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나 때문이 아니다. 내가 잘나서, 내가 예수를 선택한 것이 아니란 말이다. 누군가가 나에게 복음을 전해주고 나를 위해서 기도해 주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는 주님께서 나를 선택하시고 구원의 은혜를 더해 주셨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늘 기억하며 나 또한 누군가를 섬기고 돕는 자가 되어야 한다.
둘째, 바나바의 변호. 한 번 결정된 이미지를 바꾼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사울이 그랬다. 사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를 만나 변화되었다. 그리고 예수를 전하다가 겨우 도망쳐 예루살렘으로 와서 제자들과 사귀고자 했지만 제자들이 거부했다. 사울이라는 사람이 그렇게 변할 수가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때 사울의 이미지를 바꿔준 사람이 바나바이다. 바나바는 사울을 데리고 제자들에게 와서 그간에 있었던 과정을 설명하며 예루살렘 교회에 사울을 소개하고 기꺼이 사울의 보증인이 되어 주었다. 그리고 사울이 예루살렘에서 복음 사역자가 되는 길을 열어 주었다. 이후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질적으로 양적으로 성장하게 된다.
한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비난과 고소가 아니라 사랑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변화시키시기 위해 오래 참으셨다. 내가 맡은 생명들이 지금은 모자라 보여도 앞으로 그들이 변화될 모습을 기대하며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분별의 지혜이다.

오늘의 기도
언제나 사람으로 환경으로 말씀으로 도우시는 주님의 의지하며 담대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성기 목사
성계교회


토-경건의 훈련
본문 : 딤전 4:7~8
찬송 : 455장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어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 사람은 날마다 그 믿음이 자라가야 한다.
신앙의 상태가 어린 아이수준이면 말하는 것도 어린 아이 같고 깨닫는 것도 어린 아이 같고 생각하는 것도 어린 아이 같다. 그러나 믿음이 자라가면 어린 아이의 미숙함을 벗어나 성숙한 면모를 보이게 된다. 
선데이 크리스찬으로 교회를 다니며 거듭남의 도리가 무언지 알지 못하다가 십자가 복음을 깨닫고 거듭남을 체험하면 그것이 대단한 것처럼 생각하고 기뻐한다. 오늘 죽어도 하늘 나라에 갈 수 있다는 구원의 확신을 갖게 된다. 그러나 거기에 머물러 있으면 안된다.
거듭남은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난 출발이요 새생명의 시작이다. 계속 자라가야 한다.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그 상태로 머물러 있고 계속 자라지 못한 채로 어린 아이 모습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자들이 있다. 어린 아이 상태에서 벗어나 계속 자라가야 한다.
어떻게 자라갈 수 있을까? 본문의 말씀에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고 한다. 로마제국 시대에 검투사들은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체육관에서 날마다 자신의 몸을 쳐서 복종시키며 훈련했다. 부지런히 훈련하여 싸움에서 승리하면 생명을 건지고 상도 받는다. 이와같이 많은 사람들이 부지런히 헬스장에 다니고 등산, 탁구, 수영 등의 운동을 하여 건강한 몸을 만들려고 한다. 건강을 위해 땀 흘리는 훈련도 유익이 있지만, 경건 훈련은 건강한 몸을 만들기 위한 훈련보다 모든 면에서  유익하다고 말씀한다. 경건훈련을 지속적으로 하는 삶은 현재는 물론이고 영원토록 우리를 건강하게 해준다고 한다. 여기에 승리하는 신앙생활의 비결이 있다. 경건에 이르도록 부단히 자신을 연단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로 성숙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모두가 한결같이 경건훈련을 해온 사람들이다. 위대한 신앙의 인물들은 모두가 다 어떤 형태로든지 훈련이 불가결하다는 것을 증언해 준다.
기도훈련, 말씀 묵상 훈련, 예배 훈련, 섬김 훈련, 정직 훈련, 교제 훈련. 누가 성숙하고 균형 잡힌 신앙생활을 한다면 그것은 날 때부터 특별한 은혜나 재능이나 믿음이 있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다. 훈련으로 된 것이다. 영적 훈련이 우리를 경건한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한다.
어떤 사람은 신앙생활은 성령을 받으면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되고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성령은 한 순간만 받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 계속적으로 받아야 한다. 그래서 리차드 포스터는 이렇게 말했다. "영적 훈련은 성령을 위하여 씨를 뿌리는 일과 같다. 영적 훈련은 하나님의 은혜의 통로이다."
하나님 안에서 날마다 자신을 훈련하라. 많은 유익을 얻을 것이다.

오늘의 기도
주여 날마다 하나님 안에서 경건에 이르는 훈련을 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철희 목사
제자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