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11월 6~11일

[가정예배]11월 6~11일

[ 가정예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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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03일(금) 18:07

월-하나님과 함께하는 가정
본문 : 사 38:1~8
찬송 : 446장

자녀를 보면 부모를 알 수 있다. 자녀는 부모의 외모뿐만 아니라 걸음걸이, 성품까지도 닮아간다. 한층 더 나아가 영적인 DNA까지 닮아간다. 그렇기에 부모의 신앙과 삶의 모범은 자신뿐 아니라 자녀를 하나님과 은혜의 강가로 이끄는 기초가 된다. 믿음의 부모는 자녀에게 어떤 모범과 영적유산을 남겨야 할까?
첫째,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순종이다. 오늘 본문은 위기에 처한 히스기야 왕에게 선지자 이사야가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유다는 앗수르의 공격으로 초토화 되었고 예루살렘 성은 포위되었다. 설상가상으로 히스기야 왕은 심각한 병으로 죽음의 위기 가운데 있다.
이사야 선지자는 나라와 왕의 회복을 위하여 기도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응답은 기대와 전혀 달랐다. 회복이 아니라 왕이 죽게 되리라는 내용이었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메시지에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가감하지 않았다. 그대로 전하고 순종했다.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최고의 권위로 삼아야 한다. 가정에서도 부모는 말씀을 듣고 묵상하며 순종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그것을 가르치고 양육해야 한다. 자녀에게 좋은 음식을 먹이려 노력하는 것처럼 순수 복음을 먹여야 한다. 상황 때문에, 어리니까 하는 생각으로 왜곡된 메시지를 전달하면 안 된다. 지혜로우신 하나님을 믿고, 성령의 도우심을 믿고 듣고 배우고 확신하는 말씀을 가르치고 양육해야 한다. 그러면 자녀는 부모의 모범을 따라 말씀의 권위 앞에 순종하는 자로 자라게 될 것이다.
둘째, 상황을 초월하는 기도이다. 히스기야 왕은 인생에서 가장 큰 위기 앞에 서 있다. 국가는 전쟁으로 패망의 위기 앞에 있다. 자신은 죽음의 질병에 사로 잡혀 있다. 그런데 히스기야는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는다. 메시지를 전한 이사야에게 화를 내지 않는다. 그는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한다. 왕으로서 자신의 권위와 무기와 의료시스템을 다 내려놓고 전능하신 하나님만 의지하는 믿음의 표현이다.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마음을 살피셨고 믿음을 보셨다.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 조금 전과는 전혀 다른 메시지를 전하신다. 왕의 생명 연장과 나라의 회복의 메시지이다. 말씀을 전하는 이사야도 듣는 히스기야도, 백성들도 얼마나 기뻤을까?
기도하는 자는 반드시 하나님을 만난다. 상황을 초월하는 하나님을 만난다. 하나님이 때로 우리를 광야 가운데 던져 놓는 것은 믿음을 단련하기 위함이다. 더 큰 은혜를 주시기 위함이다. 하나님이 예비한 은혜를 누리는 열쇠는 믿음의 기도이다. 믿음의 기도는 본인뿐 아니라 공동체 전체에게 하나님을 경험하게 한다. 가정에서 부모는 기도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 위기 앞에서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찾는 모법을 보여야 한다. 그러면 가족 전체가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순종과 기도가 가정의 DNA가 되기를 바란다.

오늘의 기도
위기 앞에서 상황보다 크신 하나님을 믿고 기도함으로 가정과 공동체가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황성은 목사
제주한빛교회


화-좋은 교회
본문 : 행 17:11
찬송 : 187장

'가나안 신자' 라는 신조어가 있다. 교회를 안 나가는 신자를 일컫는 말이다. 이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우선은 좋은 교회를 만나지 못해서이다. 좋은 교회는 어떤 교회일까? 교회에 나오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인격이 고상하고 좋은 사람이어야 좋은 교회이다. 좋은 교회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만들어 가야 한다. 어떻게 좋은 교회를 만들어 갈 수 있을까?
첫째, 좋은 나무가 돼라. 사람들은 훌륭한 사람을 노송이나 영적 거목 등 나무에 비유한다. 예수를 잘 믿는다는 것은 좋은 나무가 되는 것이다. 좋은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기 때문이다. 나무가 좋으면 새들이 깃들고 축제가 벌어진다. 좋은 나무가 버티고 있으면 공기가 신선하고 경치가 아름답고 환경이 쾌적하다. 그러면 삶에 지친 사람들이 찾아오게 된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좋은 나무가 되어 열매를 가득 맺는 것이다.
둘째, 좋은 이웃이 돼라. 좋은 이웃을 만나는 것은 큰 축복이다. 그러나 보다 더 큰 축복은 우리가 좋은 이웃이 되는 것이다. 한 사람의 축복 받은 생애를 살펴보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필연적으로 만나게 해 주셨던 좋은 만남이 있기 마련이다. 우리는 이러한 만남을 통해서 신앙이 성숙해지며, 하나님과의 관계를 튼튼히 할 수 있다. 좋은 이웃이 되어 살맛나는 세상을 만드는 것은 우리의 사명이다.
 판단하고 비판하기보다 부족한 점을 채워주고 기도로 동역해 주고, 좋은 이웃이 되어 주면, 좋은 교회가 되어 가나안 신자들이 돌아오지 않을까?
셋째, 신사적인 교인이 돼라.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행 17:18)"라는 재미있는 표현이 나온다. '신사적'이라는 말은 태어날 때부터 고상하게 태어난 귀족적 신분을 지칭하는 말이다. 영어로는 '노블맨'이다. 너그럽고 넉넉한, 사람됨이 착하고 고상한 사람을 말한다. 긍정적으로 생각할 줄 알고, 상대를 인정할 줄 알고, 다듬어져 거칠지 않는 사람을 뜻한다. 겉멋이 아닌 속멋이 든 사람이다. '노블리안'은 함께 하기에 너무 좋은 사람을 뜻한다. 이 '신사적'이라는 말을, 다른 영어성경에는 '오픈 마인드(open mind)'라고 표현했다. 열려 있는 마음, 옥토와 같은 마음을 말한다. 마음이 열린 사람과 함께 하는 것만큼 행복한 일은 없다. 데살로니가에 있는 유대인들은 자신이 가진 편견 때문에 복음과 사도 바울을 거절했다. 불행한 일이다. 그러나 베뢰아 교인들은 신사적이었다. 마음이 열린 사람들이었다. 그 결과 성경을 상고하여 복음과 사도바울을 받아들였다. 그래서 복이 되었다. 이 신사적인 성품이 신앙의 옷을 입으니 더없이 고상하고 아름다운 노블리안 교인이 된 것이다. 모든 성도가 좋은 나무가 되고, 좋은 이웃이 되고, 노블리안 교인이 되어 주님이 꿈꾸시는 좋은 교회가 되자.

오늘의 기도
모든 성도가 좋은 나무가 되고, 좋은 이웃이 되고, 노블리안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채영희 목사
사랑나눔교회


수-알곡과 쭉정이
본문 : 마 3:8~12
찬송 : 589장

가을을 맞아 한 장로님의 농장에서 고구마를 캔 적이 있다. 줄기를 걷고 땅을 파고 고구마를 캐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땅을 뒤집을 때마다 고구마가 주렁주렁 달려 나오는걸 보니 힘들기는커녕 기쁘고 즐거웠다. 필자는 동네의 뒷산에서 꿀벌을 키우고 있다. 가끔씩 벌침에 쏘여 아프기도 하지만 꿀을 딸 때는 정말 기쁘고 즐겁다.
우리를 바라보시는 하나님께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십자가의 고통이 얼마나 힘드셨겠는가? 하나님께서 죽을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신 것은 구원과 더불어 열매 맺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열매가 있으면 알곡이고, 열매가 없으면 쭉정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열매 맺는 알곡신자가 되기를 원하신다.
그러면 알곡신자의 모습은 어떨까?
알곡신자는 속이 차지만 쭉정이 신자는 속이 비었다. 하나님은 우리의 속이 든든하게 차기를 원하신다.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엡 3:14-16) 어떤 알곡이 되기를 원하실까? 8절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라고 했다. 회개할 줄 아는 알곡신자가 되기를 원하신다. 이유가 무엇일까?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회개는 헬라어로는 '메타노이아'라고 하는데 '돌아서다'라는 뜻이고, 한자로는 '돌이킬 회(悔), 고칠 개(改)'자를 쓴다. '돌이키고 고친다'는 뜻이다. 믿음은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잘못된 우리의 모습을 고치는 것이다. 어떤 모습을 고쳐야 할까? 거만한 모습을 고쳐야 한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속담처럼 속이 꽉 찬 알곡신자는 자기를 낮출 줄 아는 겸손한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내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라고 하셨고, 베드로도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고 말씀을 전해주셨다. 이스라엘에 성지순례를 갔을 때 베들레헴에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는 교회에 들렀다. 고개를 숙여야 들어가도록 낮게 지어져 있었다. 일명 '겸손의 문'이라고 불린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미워하신다. 겸손한 자를 기뻐하신다. 7절에서 교만한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에게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꾸지람을 하셨다. 결실의 계절인 이 가을에 쭉정이 상태임에도 깨닫지 못하고 거만하고 교만한 모습으로 살지는 않는가? 은혜의 하나님은 우리를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알곡신자로 세워 가길 원하신다. 허황되고 교만한 쭉정이 신자가 아니라 알차고도 겸손한 알곡신자가 되어 모두에게 존귀함을 받으시길 바란다.

오늘의 기도
쭉정이로 살아가는 모습을 겸손한 모습으로 회개하게 하시고, 알곡성도로 살아 우리의 주인되시는 하나님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는 아름다운 성도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신세신 목사
부광교회


목-부스러기의 은총
본문 : 막 7:24~30
찬송 : 370장

요즘 젊은 부부들은 둘만의 사랑을 위해 자녀출산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에 오늘 본문에서는 아주 강한 모성애를 볼 수 있다.
첫째, 목표를 이루기 위한 도전하는 신앙이다. 25~26절에서 귀신들린 어린 딸을 둔 어머니가 그 딸을 고치기 위하여 예수님에게로 왔다. 예수님의 신유 은사의 탁월함에 대한 소문을 듣고 예수님에게로 나온 이 여인의 위대함의 첫 번째는 겸손과 신뢰였다. 이 여인은 딸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예수님 발 앞에 엎드렸다. 민족적인 반감이나 개인적인 자존심을 모두 버릴 수 있는 자세다. 딸의 병을 고치기 위한 어머니의 마음은 그것을 이루기 위하여 도전하는 신앙의 자세를 나타내고 있다.
둘째, 극복하는 신앙이다. 역사의 위대한 성공자의 공통점은 목표를 이루기 위해 온갖 고난과 역경을 극복한 것이다. 딸의 귀신들림으로 인해 고통 가운데서도 예수님에게서는 치유함을 얻을 수 있다는 확신으로 예수님 발 앞에 엎드린 이 수로보니게 여인에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참으로 가혹하다.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이 말씀은 '개 같은 여자여, 네 딸을 치료할 수 없다'는 말씀인데 이 여인의 입에서 고백되는 다음 말씀이 무엇인가?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이 말씀은 가히 혁명적인 언어구사이다. 여기서 자아수용의 원리가 나타난다. 유대인의 우선권과 특수한 권리를 정직하게 인정함과 동시에 자신은 비천한 존재, 곧 개와 다를 바 없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셋째, 부스러기의 은총이다. 여인의 고백을 들으신 예수님은 깜짝 놀라셨고 곧 축복의 선언을 하였다.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이 여인은 자아수용을 통해 육체적, 정신적, 가정의 회복을 이루게 되었다. 즉 자존심을 버리고, 겸손하게 자기를 낮추고, 자기의 현실을 정직하게 수용하고 상대방을 존중함으로써 행복을 얻을 수 있었다. 영적인 상황에서는 한 여인의 믿음이 가족 구원, 가정 구원을 이루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부스러기의 은총이다. 부스러기는 하찮은 존재나 물건을 뜻하는 말이다. 내게 있는 것은 비록 작지만 나보다 작은 자에게 내게 있는 것을 나눌 때 그것은 거룩한 부스러기가 될 수 있다. 사소한 것, 지나치기 쉬운 것,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일 등은 부스러기 같지만 사실 그것들이 모여 크고 위대한 역사를 이루는 것이다.
내게 있는 것들이 비록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것을 존중할 줄 아는 마음, 힘들고 어려운 가운데서도 결코 좌절하지 않고 믿음으로 극복하는 마음, 그 마음에 주님은 은총을 베풀어 주실 것이다.

오늘의 기도
깊어가는 가을에 목표를 이루기 위한 신앙으로, 극복하는 신앙으로, 부스러기와 같은 은총을 기다리며 기도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상동 목사
동고교회


금-말씀 편식을 하지 말라
본문 : 사 28:9~22
찬송 : 200장

편식이 무서운 이유는 균형 잡힌 영양소를 섭취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나의 입은 즐겁게 하지만 서서히 병들게 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편식하면 즉, 내가 읽고 싶은 부분만 읽고, 듣고 싶은 말씀만 듣는다면 신앙이 바르게 성장할 수 없을 뿐더러 병에 대한 저항력을 키울 수 없다. 그러면 인생의 고난이 닥쳤을 때 견뎌내지 못하고 넘어지게 된다. 말씀을 편식했던 유다 백성들을 통해 몇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첫째, 말씀의 편식은 건강한 신앙을 가질 수 없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죄를 지적하고, 회개를 촉구하며, 순종과 헌신을 요구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부담스러워하고 제대로 듣지 않으려 한다. 가능하면 부담 없는 말씀을 듣고자 한다. 그 마음을 알아서일까? 유다의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하게 전하지 않았다. 자기들이 방탕하게 사는데다가 구태여 사람들의 마음을 상하게 할지도 모르는 말씀을 전할 까닭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다 선지자들은 축복의 메시지만 들려주었다. 그 결과 유다 사람들은 말씀을 들으면서도 자신들이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를 몰랐다. 오히려 스스로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말씀을 들으면서도 자신들이 변화되어야 하는 이유를 찾지 못했던 것이다. 편식된 말씀을 들으면 건강한 신앙을 가질 수 없다.
둘째, 말씀을 더 많이, 더 폭넓게 공부해야 한다. 신앙은 고난의 길이다. 축복을 강조하는 말씀만 듣고 신앙생활을 한 성도는 고난을 감당하지 못한다. 고난이 닥쳤을 때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고, 하나님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기도 한다. 편식된 말씀만 듣는 것은 성경 전체의 영양분을 골고루 섭취하지 못한 것이기에 자주 넘어지고 또한 넘어질 때 크게 다치게 된다. 말씀을 똑바로 공부하고, 말씀 전체를 이해한 성도라면 능히 이겨 낼 수 있는 고난도, 말씀을 편식한 성도는 시험에 들고, 더 큰 상처를 받게 된다.
셋째, 말씀 앞에 울어야 한다. 하나님은 온 땅을 멸하기로 작정하셨다. 이미 수많은 회개의 기회가 지나갔고, 하나님은 오래 참으셨다. 하지만 유다는 반항하는 어린아이와 같았다. 듣고 싶은 것만 들었다. 하나님이 매를 드시면 그 앞에서 울어야 한다. 맞기 전에도 울어야 하고, 맞으면서도 울어야 한다. 말씀을 잘 듣겠다고 사정해야 한다. 하지만 유다는 말씀 앞에서 우는 법을 잊어버렸다. 거짓 선지자들로부터 "하나님은 절대로 때리지 않으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선민들이 어떤 짓을 해도 지키신다"라는 말씀만 들은 결과이다. 결국 하나님은 유다가 도망치지 못하고, 하나님께 반항하지 못하도록 더 단단하게 그들을 묶으실 수밖에 없었다.
성경을 전체적으로 아는 것이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만들고, 지혜롭게 함을 기억하자.

오늘의 기도
편협한 신앙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성경 전체에 귀를 기울여, 말씀이 나를 살리고 생명의 길로 인도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성기 목사
성계교회


토-하나님의 의
본문 : 롬 1:17
찬송 : 287장

종교개혁 5백주년을 맞으면서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은 우리의 신앙이 종교개혁자들이 발견하고 전해준 그 진리를 믿고, 그 진리 위에 바로 서 있는가를 다시 한번 점검해 보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마틴 루터를 그토록 힘들게  했던 것이 무엇이었는가? 성경과 동떨어진 부패한 로마 천주교회의 잘못된 신학과 관습과 제도와 규범들이었다. 그 속에서 루터는 자신의 죄악된 모습과 공의로우신 하나님 앞에서 느끼는 두려움으로 하루도 평안할 날이 없었다. 그것을 극복해 보려고 모든 계율을 지키고 수행자로서 완벽할 정도로 생활했지만 구원의 기쁨을 누리지 못했다. 그러다가 성경을 연구하면서 복음을 발견하고 그 복음 안에서 자유와 평안을 얻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로마서 1장 17절의 말씀이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그전까지 루터가 생각한 하나님의 의란 하나님 앞에서 겉으로 드러난 행동뿐만 아니라 내면의 숨겨진 부분에서조차 깨끗하고 흠이 없는 것으로 이해했다. 그 의에 도달하기 위하여 그는 철저한 수도생활과 계율 준수, 심지어 로마 스칼라 산타 성당의 28계단을 무릎으로 오르는 고행까지도 마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로마서를 연구하면서 하나님의 의란 죄인을 심판하시고 형벌하시는 의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십자가에서 이루어주신 하나님의 의요,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을 믿는 자는 값없이 의롭다 해주시는 의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로마서 1장 17절의 하나님의 의가 지금까지 자신이 생각한 것과 전혀 다른 것임을 새롭게 알게 된 것이다. 루터는 이 말씀을 깨달은 후 이렇게 고백했다. "이 점을 깨닫게 되자 나는 다시 태어났으며 천국으로 통하는 활짝 열린 문으로 들어선 느낌이었습니다. 바울의 이 본문 말씀은 내게 하늘 나라로 이르는 통로가 되었습니다." 여기서 루터의 그 유명한 '오직 믿음, 오직 은혜'의 신학이 나오게 된 것이다. 오늘 우리도 십자가에서 이루신 하나님의 의를 의지하고 그 의를 힘입어 하나님 앞에 나가야 한다. 나의 의와 공로와 업적이 아닌 오직 십자가의 의만 의지하고 나가야 한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후 자신들의 부끄러움을 가리려고 무화과 나무 잎으로 옷 입었지만 하나님은 가죽옷을 만들어 입혀주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의 은혜, 이것만이 우리를 죄악의 부끄러움에서 영원히 자유케 해주는 우리가 입어야 할 생명과 구원의 옷이다.

오늘의 기도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완성하신 하나님의 의를 옷 입고 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철희 목사
제자교회